과학문화가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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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알기 쉬운 푸리에 급수'라는 책을 산 적이 있습니다.
책의 내용은 좀 빈약했지만, 상당히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한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책이 좀 이상해서 자세히 들여다 봤더니, 일본 책을 영어로 번역한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저자는 일본의 어떤 아마추어 지식클럽 회원들이었습니다.
클럽은 아줌마들까지 포함된 일반인 동아리였습니다.
푸리에 급수는 현대 전자공학 탄생을 가능하게 해준 수학이죠?
푸리에 급수 같은 수준을 일반인들이 공부한다는 것은 마치 중1 학생이 '수학의 정석'을 놓고 씨름하는 정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수준도 문제지만, 몰라도 일상생활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고등수학을 붙들고 왜 일부러 머리를 고문하는지 신기한 일입니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과학기술에 투자한 돈과 정부의 관심을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정부의 과학기술 마인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다른 분야와 비교한다면 정부는 오히려 할만큼 한 것 같습니다.
정부지원에 관해서라면 인문학 쪽이 느끼는 소외감은 훨씬 더 큽니다.
한국사회에 아쉬운 점은 정부의 지원이나 기업의 마인드보다는, 과학기술 문화가 빈약하다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과학기술을 꼭 알아야 할 교양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먹고 사는 직업적 도구로만 생각한다는 것이죠. 아마도 유교문화 탓이 아닌가 합니다.
과학기술의 문화가 빈약하다보니, 수학은 입시를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그래서 수학-과학 학습지 시장은 큰데, 대학생 이상의 책 시장은 빈약합니다.
영어는 학교다닐 때까지만 수학과 위상이 비슷하지만, 졸업후에는 천양지차입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영어시장도 엄청나죠. 영어 단어는 모르면 무식하다는 취급을 받지만, 수학-과학 지식에 무지한 것에는 별로 창피함을 느끼지 않는 문화입니다.
우리 문화는 사람을 너무 좋아하지만, 사람만 좋아하고 그 관심이 자연에까지 확대되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정치에는 관심이 크지만, 과학기술은 전공자들만의 영역이 되어버리죠.
물론 과학기술 문화가 빈약한 이유는 전공자들의 잘못도 아주 크죠.
자체 경쟁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대중들 '전도'에는 소홀했습니다.
저는 영국 BBC나 미국 National Geography가 제작한 동물의 왕국이나 자연탐구 TV 프로그램을 볼 ?마다 제작진이 위대해 보입니다.
오지에서 외롭게 자연을 관찰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인간세상이 그리울까요?
그래서 그들의 구도적이고도 넓은 마음이 부럽습니다.
물론, 그들 중에는 '생계형' 관찰자도 있겠지만, 정말 싫다면 못하겠죠.
그런 관찰의 결과를 높게 사주는 사회의 과학기술 문화도 대단한 것입니다.
사람하고만 살 수 있으면 자연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은 선택입니다만, 우리가 숨쉬는 대기와 붙어 사는 지면과 바다 등등, 자연과 교류 없이 살 수가 없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일 뿐이잖아요? 그러니 자연탐구는 인간의 필수적 운명입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과학기술이 공부하기에 재미있고도 유용한 분야가 되도록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은데, 현재는 분야가 더욱 더 나눠지고 있어, 우리끼리도 소통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문화가 만들어지려면 우선 소통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 5월에 제가 회장으로 있는 재불과학기술자 협회는 프랑스 리용에서 컨퍼런스를 개최했는데, 테마를 '학제간 연구'로 정하고 목표를 '분야별 소통'으로 했었습니다.
보통 학회처럼 자기 연구를 발표하는데, 자기 분야 전문가가 아닌 일반 과학기술인에게 발표하는 것으로 자료를 만들어서 발표하고, 모든 약자나 생소한 전문 용어들은 일반 용어로 대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컨퍼런스는 전문가들이 다른 전문가들에게 전하는 과학기술 교양 강좌가 되게 촛점을 맞춘 것이죠.
결과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질문들도 많았고, 자리를 뜨는 사람이 없어서 괜히 대회장을 챙긴답시고 자주 일어섰던 제가 아주 창피할 정도였습니다.
여러분들 주위에서도 가능하시면 이런 시도를 한 번 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우선은 우리끼리 잘 소통하고, 그 다음에 비로소 바깥세상과 소통해야겠죠?
그래서 일반인이 과학을 너무 모르는 것도 창피한 일이고, 과학도 문학처럼, 예술처럼 아무나 논할 수 있는 가볍고 즐거운, 문화적 이슈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