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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 지구 변덕화!


필자가 사는 남불은 날씨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언제나 태양이 빛나고 온도는 따뜻하지만 겨울에 추울 때는 눈물 쏙 빼게 춥다.

그래도 가장 춥다는 정월에 주말 한 두 차례 아파트 테라스에서

식구들과 옥외 점심을 먹을 수 있을 때가 있으니, 이때는 정말 행복하다.

여름에는 30도 이상 올라가지만, 습도가 낮다보니 그늘에만 들어오면 그런대로

덥지 않다. 하지만 태양이 너무 빛나서 눈이 작은 나도 썬글래스를 쓰지 않고는

운전이 힘들 정도다.

건조한 지역이지만, 비가 올 때는 듬뿍 오는데, 주로 늦은 밤에 왔다가 아침에 말끔히

개는 날이 많아서 출근길은 마치 미리 물청소차가 지나간 것 같이 촉촉하게 젖어 있을 때가 많다.

아직 언제인지 시기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만,

미스트랄이라는 바람이 불 때가 있다. 허리케인 정도로 강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차갑고도 거센 바람이 불어서 사람들을 움추리게 한다. 이 바람은

공해에 찌든 도심 공기를 바꾸어주는 환풍기처럼 그때그때 불어준다.

미스트랄의 청소 덕분인지 도심의 밤에도 별들이 쏟아질 것 같이 밤하늘이 맑다.

필자 또래는 고교때 국어교과서에 나온 알퐁스 도데의 '별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늦은 시간 산책길에 가끔 하늘을 올려다 보면 별이야기의 그날 밤처럼 오리온 자리와 북두칠성이 깜박거린다.

이 즈음 필자는 어느덧 양치기 소년이 되어 풀밭 언덕 위에 들어누워 별을 헤아리는 환상에 빠진다.



그런데 불과 몇 해 전부터 이 모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구라'처럼 잘못 흘러가고 있다.

지난호에 필자는 '모자 이야기'라는 글을 코센에 올렸다.

머리로 먹고 사는 우리들은 추울 때는 모자를 써서 물리적으로도 머리를 잘 보호하자는 이야기다.

좀 일찍 쓴 글이기에 너무 계절감각에 안맞아보여 내심 마음이 불편했다. '에어콘 손질을 해야 할

시즌에 썰렁하게 무슨 모자 이야기야!'라고 생각할 코세니아들의 눈총이 떠올라서였다.

그런데 입이 방정이었을까? 아니면 글이 방정이었을까? 이곳은 5월초에 너무 추웠다.

중앙난방은 이미 시즌을 접고 난방할 생각을 안하니 실제로는 가장 추울 때보다 더 추었다.

마누라를 부둥켜 앉고 자면서 표면적을 줄이는 융합작전도 별무신통이어서 결국 지하광 구석을

뒤져 난방기를 찾았다. 며칠 부산을 떨고 났더니 이제는 거꾸로 차를 타면 에너콘을 틀어야 할 지경!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말은, "어느 X이 지구 온난화를 주장한거야?"

그리고 미국과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연락을 하여 확인해보니, 사정들이 비슷한 모양이다.

도대체 지구온난화는 어떻게 나온 말일까? 그 주장은 과학적으로 타당한가?

나는 지구온난화 문제는, 일전에 의학이 과학인지를 논하는 글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과학이 아니라 초과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본다.

필자가 정의하는 초과학이란 비과학과 구별된다.

초과학도 과학이지만, 비과학은 과학이 아니다.

그러면 과학과 초과학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둘 다 과학인 것은 맞지만, 초과학은 우리의 과학적 능력과 이해 그리고 실험의 재현을

넘는, 즉 현재 인간의 인지능력을 넘는 과학이라는 이야기다.

과학의 어떤 영역이 초과학에 속하는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생체를 이해해야하는 것처럼 너무 변수가 많을 때다.

순서가 중요한 변수라면 그 변수들이 모여서 하나의 현상을 만들 경우의 수는 팩토리얼로 되는데,

12!만 되어도 금방 남한 인구에 해당하는 4천8백만 정도가 된다. 열두가지 변수만 사용하여

경우를 나열해도 한국사람 전체에게 각자 전부 다른 현상이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열두가지 변수가 다 사용되지 않거나 중복까지 허락된다면 경우의 수는 훨씬 더 많아진다.

가령 설탕, 담배, 술, 커피, 운동, 남녀, 직업, 나이 정도만 고려해도 벌써 수백만 사람의 다른 건강상태를

말할 수 있다.

두번째 초과학이 될 조건은 현상의 스케일이 너무 클 경우다. 가령 은하계 정도만 대상으로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별로 없다.

세번째 초과학이 될 조건은 현상이 반복되는 세대가 너무 긴 경우다. 가령 지구의 나이라든지

진화를 이야기할 경우다. 실험실에서 그 과정이 다시 일어나는지를 앉아서 지켜볼 수가 없다.

(빨리 마무리 해야 하는데, 너무 멀리까지 가고 있다. 체면불구하고 여기서 유턴을 해야 겠다.

딱지 떼여도 할 수 없고... )



필자는 지구온난화를 논하는 것은 현재의 수준에서 초과학의 영역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 지구변덕화가 맞는 것 같다.

영어로도 Global warming이라는 말도 많이 하지만,

점잖게 표현할 때는 Climate change라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지구는 점점 비열이 작아지고 있는 것같다.

열관성이 작아지니, 속좁은 노인네처럼 마음의 변덕이 조석간에 너무 다른 것이다.

남들의 작은 행동에도 쉽게 열받고, 쉽게 기분이 좋아지는 조울증 증세다.

결코 노인폄하발언은 아니다. 나이들어가는 나 자신의 변화를 반성하는 말이다.

하지만 공해를 줄이고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가려는 시도는 적극 찬동해야 할 것같다.

환경을 망가뜨리기는 너무 쉽지만, 회복은 최소한 열 배 이상의 시간과 경비가 들기 때문이다.

지구가 삐쳤는지 미쳤는지 너무 따지지 말고, 무조건 지구와 사이좋게 지내려고 노력하자.

어설픈 과학이 어설픈 분석을 내어놓는 것에 너무 핏대 올리지 말고 말이다.

몇 십년 후면 우리도 지구 어느 구석 한 줌 흙으로 돌아갈 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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