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윤리
2010-09-09
전창훈 : cjun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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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연구비를 따내거나 학회를 열려면 녹색을 내세우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입니다.
언제는 전부 '퍼지'라고 해서 밥통부터 모든 전자제품에 퍼지가 붙었고,
그 다음에는 '인공지능', 또 그 다음에는 '바이오' 그리고 최근까지는 '나노'였는데,
이제는 전부 '그린'으로 수식어가 바뀌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직 바이오와 나노의 명줄이 완전히 떨어진 시절은 아니니까,
어쩌다보면 나노-바이오-그린이 다 들어간 슈퍼 과장광고 제품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과학기술이 유행을 너무 타는 것이야 좀 창피한 일이긴 하지만, 근간의 '그린'이나 '지속가능 기술'은 '만세지탄'이라고 할 수 있겠죠.
더욱이 인구가 엄청난 중국과 인도, 브라질이 급속히 산업화에 매진하고 있는데,
공해나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적다면 정말 큰 재앙이 올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지속가능 성장이니 Green Technology가 사실 그렇게 마땅한 대안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새로운 기술개발에 계속 노력은 하면서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에너지 절약이죠?
제가 2년전 유럽 학회에서 발표를 하면서, "현재 가장 확실한 대체 에너지 기술은 에너지 절약 기술"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거의 모든 지속가능 기술들은 태동기에 있어서 가능성만 보여줬고, 시장성에까지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도 에너지 절약을 많이 실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에너지 절약과는 방법이 좀 달라야 할 터인데, 여전히 구시대적 형태로 가나봅니다.
예를 들면 관공서나 연구소의 에어콘 사용은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서 업무시간에 부채질해대느라 집중이 어려울 정도인데,
경쟁이 치열한 식당가에 밥먹으러 가면 이제는 추워서 긴소매 옷을 준비해가야 하는 지경 말입니다.
게다가 에너지 절약시책의 대부분은 결국 정부 세수를 늘여주는 벌금형이나 징계형 제도가 많습니다.
큰 차를 타면 탄소세를 내게 한다든지, 전기를 많이 사용하면 누진세를 적용한다든지 하는 정책들 말입니다.
이런 벌금형이나 징계형 정책을 많이 사용하면 정부는 주머니에 돈이 많이 생기니 정작 에너지 절약에 적극적이지 않고,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부자들이나 큰 기업들은 그 정도의 돈이야 별 것 아니니까, 역시 신경안씁니다.
결국은 에너지 소비나 공해는 안 줄어들고 물가만 오르는 꼴이죠.
공장에서 계속 찍어낼 수 없는 제품이나 서비스에는 자본주의적 정책을 들이대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제한된 토지를 필요로 하는 주택정책도 대표적입니다.
에너지도 역시 이 범주에 듭니다. 공장에서 정신 없이 찍어낼 수 있는 물건이야 수요공급을 가격정책으로 조절가능하지만,
생산이 제한적인 품목은 시장경제로 풀려면 답이 안나오죠. 오히려 사재기나 투기가 기승을 부려 시장이 더 쉽게 교란됩니다.
이제는 에너지 문제에 윤리를 부여해야 할 싯점입니다.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를 하면 벌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된장녀가 되는 그런 분위기 말입니다.
물론 윤리가 지나치게 적용되면 사회가 너무 건조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적어도 현대사회의 교양시민이면 에너지 절약도 중요한 윤리에 포함된다는 교육이 필요하죠.
그래야 타인이 안보는 곳에서도 에너지를 절약하고, 벌금이나 과태료 유무에 관계없이 자발적으로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게 되겠죠.
윤리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돈으로만 해결하려는 정책으로는 어렵습니다.
미국에서 나온 통계를 보고 놀란 적이 있는데, 호텔 투숙객들의 물 사용량은 평소 자기 집에서의 사용양보다 훨씬 많다고 합니다.
숙박비에 샤워용 물값을 따로 받지 않으니, 출장이나 여행 가서 투숙한 호텔에서 하루에도 여러 번 샤워하신 적이 있으시죠?
가격으로 접근하면 여러 번 샤워하는 것이 남는 장사죠. 하지만 윤리적으로 접근하면 자제가능합니다.
강제력이 없는데, 윤리로 접근해서 에너지 절약에 성공하겠냐구요? 사회의 수준이죠.
율곡이 말한, 신독에 힘쓰라는 이야기.
공자가 말한, 나이 70에는 자기 욕심대로 행하여도 부끄럽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을 자주 생각하는 사회가 되면 가능하겠죠.
온고지신인가요? 좌우간 이제 에너지는 돈을 넘어서 윤리에까지 닿아있는 인간 세상 존재의 근본구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못느낀다면 문명이 더 일찍 사라지겠죠.
이래서 과학기술이 다른 분야, 철학이나 사회와도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좌우간, 이제 '에너지 윤리 전도사'가 한 번 되어보시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