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일까, 천재일까?
- 3814
- 0
아마 이 글이 코센 웹진에 실려나갈 때 즈음이면 다 잊고 지난 일이 될 터이지만, 서울 불바다설을 흘렸던 북한의 주장과 다르게 7월 말 현재 서울은 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당일 프랑스 현지에서 아침부터 바쁘게 준비할 보고서가 있어 하루 이상 지나고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생명과 재산을 잃었다고 하니 어떻게 안타까움을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필자도 어린 시절에 홍수에 다 젖은 책과 가재도구들을 햇볕에 말려본 처량한 기억들이 있다. 불나고나면 건질 것이 있지만, 수해후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고 한다. 불은 위로 올라가니 그냥 통과해버린 것들이 숨어있을 수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불에 탄 흔적들이 훨씬 흉측하지만, 속을 뒤지면 그래도 제법 건질 것이 있다. 이 것 역시 어릴 때 세탁소 하는 친구집에 난 불을 꺼준답시고 달려들어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수해후에는 형체가 이그러진 것들은 별로 없으되, 물건들이 제기능을 다 잃어버린다. 대표적인 것이 가전제품과 책들…
인재인지 천재인지 말도 많은 모양이다. 이것 역시 한국사회에서 회자되는 10만명을 먹인다는 국보급 인재(뛰어난 능력보유자)나 천재(Genius)와 혼동되어 온통 말의 홍수를 이루는 듯 하다. 어려운 일을 당한 처지를 위로하는 척하면서 필자의 말투가 꽈배기처럼 꼬이는 이유가 있다. 인구가 극단적으로 몰린 괴물같은 도시에서 이런 재앙은 당연히 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정녕 몰랐단 말인가? 설사 천재라고 할지라도, 분산이 적절히 되고 지나친 개발이 자제되었더라면 훨씬 피해는 적을 것이다. 편리함과 효율성만을 추구하다 직격탄을 맞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우선은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이 도리일 터이지만, 이런 기회가 지나가면 또 다 잊을 것이니, 악역을 자처해야겠다.
과학기술을 포함하여, 거의 전분야에서 한국사회가 극복해야 할 국가적 최고의 과제를 필자는 두가지로 본다. 그것은 남북분단 해소와 지역 균형발전이다. 그리고 국가적 과제라기 보다 사회적 과제라고 할만한 것은 교육문제와 소득격차문제다. 그런데 후에 언급한 사회적 문제도 앞에 언급한 국가적 문제와 같이 묶여있다. 분단해소와 지역균형을 달성하면 교육과 소득분배가 좋아질 기회가 제공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분단과 지역불균형 문제는 이미 너무 오래된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그냥 넘어가거나, 거기에 자신을 맞추는 쪽으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즉, 당장 해결이 안되보이는 분단은 무시하고, 서울집중은 내가 서울로 입성하거나 서울을 수성하는 것으로 해결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분단은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이고, 타국과의 관계가 동반되기에 우리만 열심히 노력한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지역균형은 우리 자신과 정치권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해결가능한 문제다. 그러나 안해왔고 못해왔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한국과 서울을 동일시해왔다. 다시 말하면, 서울 이외에는 안중에 없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 중에 서울출신은 없었지만, 반세기 동안 서울은 계속 비대해져 왔으니,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과거에 창원, 울산, 여수 공단에 최근의 대덕단지, 세종시까지 또 미래의 과학벨트 정책이 모두 지역개발 정책이지만, 솔직하게 내용을 들여다보면 서울로 가는 교통비만 더 드는 정책들이었다. 가장만 혼자 지방에 내려와 살면서 공연히 시간과 돈만 도로에 뿌리는 꼴이다. 지방에서는 일만 하고 문화적 향유와 좋은 교육은 서울에서만 누리게 해둔 결과다. 이런 정책은 지방육성이 아니라 오히려 서울을 위해 지방을 이용한 꼴이다.
우리 사회 보수주의자들은 북한을 주적이라고 한다. 중도를 자처하는 필자가 보기에도 현실적 주적은 북한이다. 왜냐하면 총부리가 남쪽을 겨누고 있으며, 가장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주적이 코 앞에 있고, 성급한 통일은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는 보수주의 서울옹호론자들이 서울을 더 가꾸어왔다. 통일 후 수도로서의 역할을 위해 서울에 더 투자해야 한다는 논리다. 통일을 준비하지는 않으면서… 주적 북한이 겨냥하는 재래식 대포의 사정권 안에 있는 도시에 국부의 대부분을 들여서 키우는 보수가 참 보수인지 묻고 싶다.
한국사회가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성역처럼 건드릴 수 없는 우리 사회 두가지 논리는 집값은 올라야 하고, 학벌은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두가지 논리를 떠받치는 것이 서울사수론이다. 하지만 서울사수론은 길게 보면 효율적이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다. 6.25 전쟁 때 이승만 대통령도 서울 사수론을 부르짖다가, 결국 백성들을 속이고 자신이 빠져나가고나서 한강다리를 폭파시킨 것처럼, 계속 서울 사수론을 고집하는 것은 불가할 것이다.
괜히 물난리에 흥분하여 이야기가 길어졌다. 읽는 이들의 지겨움을 고려하여 여기에서 접어야겠다. 이런 글을 쓸 때, “그래서, 당장 대책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제일 무섭다. 지식인이면 무조건 비판만 해서야 되겠냐는 질책은 무서운 것이다. 필자가 추천하는 우선 대책은 최소한 지방에도 서울에 준하는 종합병원-대학병원들을 만들어서 지방에서 아픈 사람들이 서울로만 몰려들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지방 의대도 많이 육성될 것이다. 이미 의대는 어디가나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고 있지 않은가? 외국이야기가 참고가 될 지 모르겠다. 프랑스의 빠리로 향한 중앙집중은 한국보다 더 심한 부분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종합병원 랭킹에서는 빠리 병원들이 3위 안에 못들고 있다. 빠리에서 600킬로나 멀리 떨어진, 우리나라로 치자면 광주광역시 정도에 위치한 서남쪽 뚤루즈 대학 병원이 몇년 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글이 나갈 쯤이면, 수해의 상처를 씻어낸 생동감 넘치는 여름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