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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과 역사

  어릴 때,뉴톤이 사과를 들고 중력을 생각하며 사색에 잠긴 그림을 본 적이 있죠? 그리고 수염이 덥수룩한 아인슈타인의 머리 위로 별들이 돌아다니던 만화도 본적이 있으시죠? 과학사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나오는 두 인물이 뉴톤과 아인슈타인입니다. 나머지 인물들은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죠? 여기에 굳이 한 명을 더 추가한다면 퀴리 부인이 되겠군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약소국 폴란드로부터 유학온 과학자라는 이유로 자주 아동용 책에 나오던 인물입니다. 저희 세대의 국어책에는 퀴리부인의 자서전이 나왔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어릴 때 읽었던 과학사는 과학이라는 사실을 다루었다가보다, 한 인간을 거의 신격화하는 위인전의 성격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까지 이런 한국과학사회의 전통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줄기세포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황우석 교수가 진짜 사기꾼인지, 아니면 왕따 당한 과학자인지에 대한 논란이 훨씬 더 뜨거웠죠. 사실보다 사람에 더 천착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과학기술자들인데, 그 어떤 분야보다 우리가 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역사에 가장 약한 것 같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전쟁 역사에는 어느 정도 밝으나, 과학기술 역사에 대해서는 디테일을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구미의 경우는 많이 다른 것 같지만, 사실 별반 차이 없어 보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과학기술 역사는 (과학기술자들에게도) 별로 인기가 없어요. 어떨 때는 경제사의 한 분야로 묻어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최근에, 왜 과학기술 역사는 별 인기가 없을까? 이공계 홀대현상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드라마틱한 반전이 모자라서인가? 등등을 혼자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다른 (문과) 분야에서는 특별히 맞고 틀린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과학에 있어서는 맞고 틀린 것이 확실히 있죠. 그러다 보니 과거의 이론들은 많이 틀린 것들이어서 오늘날에 보면 좀 창피하기도 하고, 재고의 가치도 없는 것들이 많죠. 그래서 과학사가 홀대받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술의 역사가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좀 다르게 봤습니다. 기술은 상품에 이용해서 돈을 버는 것이다보니,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대중들의 주머니를 열려고만 하지, 어떤 고민과 땀이 얼룩져 이 제품이 나왔는지 알려주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카피가 두렵다 보니 그저 블랙박스인 채로 잘 사용하기만을 바랄 뿐이죠. 이런 배타성과 폐쇄성이 기술의 역사를 잘 접근하기 어렵게 만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너무나 보편적인 전파장치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 대중들의 지식은 정말 낮은 수준이죠. 전파라는 과학은 좀 쉽게 이해가 되겠지만, 그 전파를 이용한 통신장치들은 정말 블랙박스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충전이 오래가는지, 앱이 좋은 지 등등을 따질 뿐, 그 제품이 나오기 까지의 역사 또는 그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본질적으로 가려져 있다보니, 흥미가 없죠. 다른 이유도 있어보입니다. 우리 업계에는 ‘이야기꾼’이 너무 없어요. 묵묵히 실험만 하거나 공부만 하는 사람들을 높게 쳐주는 ‘풍습’이 구라꾼의 탄생을 방해합니다. 정치로 비유하면, 대변인 없이 정치하는 것이고, 벽보 없이 선거치루는 것이죠. 이런 보수성은 언제 좋아지려나요? 나 같은 사람도 연구논문보다 책을 쓰거나 코센 같은 곳에 이런 ‘잡글’ 써서 얻은 칭찬보다, 되받은 묘한 웃음이 더 많습니다. 할 일을 안하고 엉뚱한 곳에 왜 에너지를 사용하냐는 웃음으로 해석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대변인, 기자, 작가들은 다 엉뚱한 짓하는 사람들이 되는데…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네요. 다시 돌아갑시다.)


  역사에 약하다는 것은 인간이 생을 살아온 기본적 속성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뉴톤의 중력법칙은 아리스토 텔레스가 그 옛날에 고민해온, 물과 불은 위로 당기고 공기는 아래로 당긴다는 ‘미신’을 과학화한 것인데, 그 미신은 분명 뉴톤에게 영감을 준 ‘신화’인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체계화한 상대성 이론은 이미 네덜란드 물리학자 로렌츠나 프랑스 수학자 포엥까레가 속도가 커지면 길이가 짧아진다는 것을 발표한 다음에, 그것을 집대성한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에 대한 공적이 아니라, 광전자 현상을 발견하여 노벨물리학상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과학기술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리스토 텔레스의 원시적 고민이 세월과 더불어 신화를 과학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과학기술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뉴톤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들에 대한 우상화가 심해지는 것이죠. 어느 드라마처럼 ‘김박사’ 한 명만 업어온다고 모든 문제가 풀리지 않는,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한 분야가 과학기술이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역사의 교훈은 간단한 것입니다. 누구나 완벽할 수 없지만, 인간은 같이 모여 서로의 약점을 극복하며 고난과 무지를 헤쳐나간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역사를 통해 배우고 만든 가장 위대한 작품인 민주주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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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기는 하겠지만, 그런 정도로는 과학자가 새로운 과학이론을 내놓을 준비로 부족할 것입니다. 뉴턴이 자신의 학문에 대한 어떤 철학함을 하였는지 한국의 과학자들은 돌아보지 못하는 것같습니다. 뉴턴이 데카르트를 공부하면서, 유클리드 기하학을 공부하고, 따라서 자신의 과학에 대한 체계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탄생된 것이 바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이지요. 한국 과학자들은 유독 과학지식을 암기하는 것에 집중하는 듯합니다. 자신의 학문에 대한 비판적이며 반성적인 철학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그러니 새로운 이론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기껏 기존의 이론을 응용하는 것에 머물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과학에 대한 철학함이 없이 과학노벨상 깜이 나올 것이라 기대합니다. 모두들 노벨상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실험비를 투입해야 하는지 말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그것을 내놓을 소양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 과학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