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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와 과잉의 시대가 위기를 불렀다

  요즘 경제 위기라는 말이 나온지 오래되었지만, 위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가는 것 같습니다. 지속되는 위기는 더이상 위기가 아니라 위험으로 변하고, 일상이 무력감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창살 속에 갖힌 동물들처럼, 눈에 광채를 잃어버린 채… 현재의 경제상황을 진단하는 학자들에게서 V자나 U 자처럼 최저점을 찍고 다시 반등하리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크루그먼(프린스턴 대학교수, 2008노벨 경제학상)은 이번 위기는 L 자형 장기 침체가 될 확률이 크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워낙에 많은 학자들이 제각각 다른 이야기를 토해 놓으니 당연히 누구나 한 명쯤은 맞추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 분에게 ‘점쟁이’ 칭호를 붙일 필요까지는 없어보입니다.


  경제학자도 아닌 제가 왜 경제 이야기를 하냐구요? 현대사회에서 경제문제는 정치보다 더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을 언어와 돈으로 소통하며 살고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경제 젬병인 필자도 현 경제문제를 깊이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생각한 문제의 원인은 ‘풍부’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과잉’이죠. 그런데 인간이 만든 풍부는 항상 풍부한 곳만 더 풍부하게 만들고 그 풍부를 넓게 펼치는 일에는 미숙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디는 넘쳐서 처치곤란일 때, 다른 곳에서는 빈곤으로 몸부림을 치죠. 마르크스는 오래 전에, 생산기술의 진보는 빠를 것이나 분배기술이 너무 늦어서 자본주의는 결국 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계급투쟁이 일어나서 망한다는 것은 망하는 수순에서 생기는 현상에 불과하겠죠. 그런데 공산주의가 먼저 망해버려서 우리는 그의 말을 무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망한 것은 다른 이유죠. 노력한 자에게 특별한 인센티브가 없는 사회다 보니, 분배에만 관심이 있고 생산을 안한 것입니다. 현 유럽사회도 이 증상과 비슷합니다. 미국을 필두로 한 자본주의는 생산만 많이 하고 분배는 신경안쓰고… 양쪽 다 극단으로 치달은 것이죠. 이미 망한 공산주의 이야기보다, 아직은 버틸만한 우리 쪽 이야기로 와봅시다.


  돈이 남아도니 그 돈으로 투자해서 더 굴리려 하다가 저축은행 같은 곳에 맡겼다가 사단이 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편, 그 돈으로 흥청망청 쓴 사람들은, 그 돈의 주인들이 피땀 흘려 벌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겠죠. 도덕적인 자책감보다는 재수가 없었거나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큽니다. 돈이 많아서 생긴 문제입니다.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들도, 자기가 살 집을 기준으로 골랐다면 가격변화에 큰 문제 없습니다. 집값이 떨어지면 더 큰 집으로 옮겨가기 쉬우니 좋고, 더 오르면 팔아서 돈되니 좋습니다. 어느 쪽이든 상관이 없는데, 뭔가 남겨볼려고 무리수를 두다보니 인생이 꼬이는 것입니다. 즉, 풍부를 더 누리려고 꼼수부리다가 상황이 나빠진 것이죠.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좀 열심히 산다는 나라들은 다 여기에 동참한 것입니다.

 

  그런데 언론이나 인터넷에 이런 반성은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반성이 올라온다고 해도 이미 우리는 그런 시각을 너무 안이하다고 보는 것이죠. 우선 문제부터 해결하고 참회해도 늦지 않다는 시각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해결되면 반성을 할까요? 또 다른 곳을 향해 달려가기 바쁘죠. 폭탄돌리기의 폭약 파우더는 계속 증가하지만, 내 차례가 올 때 더 빨리 폭탄을 돌려버리면 위험순간을 피할 수 있다는 논리로 무장합니다. 속도를 올리면 자기에게 오는 폭탄도 더 빨리 돌아오는 것은 모르고… 그리고 이런 폭탄 돌리기 게임 안에 있으면 개인은 받는 폭탄을 더 빨리 돌리는 방법 밖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정부나 사회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이 해야겠지만, 이런 경제위기 시대에 개인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저도 방법을 모르겠습니다만, 겨우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모든 것을 줄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내 삶이 찌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물질보다는 정신을 찾아 고상하게 사는 것이죠. 현재 많이 가졌든지, 없든지 삶의 덩치를 줄이고 모든 것을 최대한 심플하게 가져가는 것이죠. 사실 우리는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지만, 없으면 죽는 줄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부지기수입니다. 하지만 과잉의 것을 꼭 필요하다는 착각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유가 우리의 정체성 중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사는 집과 내가 타는 차가 나를 말해준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이제는 이런 패턴을 좀 깨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절대적으로 빈곤하지는 않지만, 상대적 빈곤에 (심리적으로) 시달리는 사람들부터 우선 자신이 가진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늘 비교하고 비교받는 사회에서 이런 삶이 가능할까요? 가능여부와 실천할 용기까지 제가 드릴 수는 없습니다. 너무 뻔한 도덕을 이야기해서 죄송스럽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도 자유롭지 못한 부분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잉여소유로부터 해방되어 도덕을 회복하자는 윤리운동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진짜 우리가 (제대로) 살아남기 위한 써바이벌 전략을 이야기한 것 뿐입니다.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꼭 필요한 것 만 있어야 합니다. 없는 것 중에 더하기보다, 있는 것 중 버려야 할 ‘살생부 리스트’가 훨씬 더 절박한 싯점입니다. 꼭 돈에만 촛점을 맞추지 마시고, 내가 쓰는 시간이나 내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까지도 한 번 고려해보시길 권합니다. 다이어트하느라 뱃살 빼는 것에만 신경쓰지 마시고, 우리 생활 자체에 낀 지방분을 제거하는 작업들을 하십시다. 살 빼면 혈압이 내리지만, 생활에 낀 지방분을 빼면 스트레스도 줄고, 경제적 지출도 줄지 않을까요?


  저는 올연말인 12월 16일 대전에서 코센분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게 계획되어 있습니다. 그 때 많은 분들 만나뵈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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