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스타일과 노벨상 [전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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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예인들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지나친 과장이라고 생각했었다. 필자는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사는 와중에 당연히 현지 TV와 라디오를 자주 접한다. 적어도 유럽이나 미국의 라디오나 TV에 종종 나오는 한국 연예인들은 여태껏 없었다. 교민들을 대상으로 한 일회성 공연을 하고 돌아가서는 세계적 스타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약간 심상찮은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빠리에서 K팝 공연이 있었을 때 현지분위기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를 넘어섰다. 그런데 이번에 싸이가 노래한 ‘강남 스타일’은 이런 모든 인지도를 뛰어넘는 대 히트다. 아마도 한민족 역사상 한국이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해진 사건이 아닌가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일개 연예인이 막춤으로 유명해진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라고 질문할 수 있다. 망가지는 동양인의 모습을 보며, ‘너희들 수준에 딱 맞는 춤이네!’라는 조소를 담아서 서양인들이 막춤(말춤)을 같이 춰주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고상하고 수준있는 성취가 아니란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를 다르게 보고 있다.
우리의 정서가 서구인들과도 교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영화와 책을 통해서 서양의 정서와 언어에 상당히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서양인들이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은 무엇일까? 이때 서양인이란 우리 사정을 알고 비판하거나 칭찬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일상을 사는 보통 미국-유럽인들 이야기다. 일반 서양인들의 한국에 대한 데이터는 부정적이다. 예를 들면, 냉전이 아직 존재하는 곳이다. 다시 말해, 언제 다시 총구에 불이 붙을 지 모르는 휴전지역이다. 그들이 한국여행을 계획한다면, 봉우리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휴화산 주위를 관광하는 상상을 할 것이다. 그리고 정의에 대해서는 어떨까? 우리는 북한을 세습국가라고 비난하지만, 외국의 시각은 아마도 남북한이 오십보-백보일 것 같다. 남한은 정치 대신 경제를 세습하고 있다. 그리고 종교세력인 기독교도 재벌세습에 뒤지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필자를 비난하고 싶을 것이다. 북한과 남한을 비슷하게 보다니! 그러나 한발자국만 물러서서 냉정하게 보면 남북한의 세습문제는 호형호제 수준으로 보일 수도 있다.
지금부터 우리의 데이터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세계인들은 매일 일상을 삼성 휴대폰과 함께 살고 있다. 미국법원도 특허소송에서 애플의 손을 들어주길 주저한다. 애플이 이기면 당장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부터, 삼성 대신 훨씬 비싼 가격으로 애플을 사야 한다. ‘품질도 좋으면서 가격도 합리적인 회사에 부담을 주는 것이 과연 인류를 위해 유익한 일인가?’ 재판장은 고민할 것이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요즘 현대차의 가격이 만만치 않아 좀 염려되긴 하지만, 여전히 가격 대비 품질에서 아주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들여다 보면 어두운 구석들이 금방 눈에 들어온다. 최고 자살률, 최저 출산율 같은 불편한 진실 말이다.
서양인들에게 아직 한반도는 블랙박스다. Input이 들어가면 뭔가 Output이 나오는데, 도대체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친 결과 인지 그들에게는 여전히 어렵다. 그리고 우리의 눈짓과 제스처가 어떤 의미인지, 우리의 언어가 무얼 말하는지... 하지만 ‘강남 스타일’은 이런 정서적 거리감을 상당히 좁히는데 기여했다. 싸이의 외모는 그들이 미국과 유럽 거리에서 흔히 봐왔던 한국(동양) 관광객의 모습과도 유사하다. ‘ 그룹으로 몰려가는 저 배나온 동양인 관광객 아저씨들이 말춤 원조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아마도 거리감이 좁혀지고 친근감이 들 지 않을까? 정서적 상호이해는 모든 교류의 출발점이다. 아마도 말춤은 일회성일 것이다. 하지만 일회성이어도 좋다. (여담이지만, 경험적 데이터에 의한 필자의 국적은 다음과 같다. 비싸 보이는 옷을 입었거나 용모가 단정한 날, 거리의 서양인들은 나에게 일본인이냐고 묻는다. 그러나 용모가 지저분한 날, 머리를 잘 안감고 돌아다니는 날, 많은 사람들은 나를 중국인이냐고 묻는다. 아직 한국은 그들의 '객관식 국적문항'에 잘 안들어가지만, 싸이의 말춤이 나온 후 달라진 느낌이 있다.)
'과학칼럼'이라고 분류해둔 탓에, 방향을 완전히 틀어서 이야기를 요즘 말많은 노벨상으로 옮겨보자. 최근 설립된 기초과학연구원이라는 기관은 출발부터 요란했고, 예산도 엄청 많이 투입되는 모양이다. 이 기관은 누가 봐도 노벨상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일본이 황우석 박사 연구와 비슷해보이는 것으로 생리의학상을 받게 되자 일제히 자괴감을 쏟아내고 있는 시점이다. 상이 뭘 그리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몇 개 정도는 받고나서야 할 수 있는 말이다. 여태껏 한국형 밀어붙이기로 우리가 못 이룬 것이 없는데, 유독 노벨상만 아직 못받았으니 그 아쉬움과 허탈감이 극에 달해 있다. 그런데 최근에 아주 재미있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고려대 교수와 카이스트 교수가 언급한 말에 의하면, 노벨상은 수상 10년 전부터 그 징후가 관측된다고 한다. 영향력이 큰 논문을 발표하고, 인용지수가 올라가고, 관련분야 유명상을 수상하고 등등으로 이어지다가 노벨상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가끔 돌발상황도 생기지만, 노벨상의 권위를 유지하려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이런 수순에 맞추어 볼 때, 국내에는 10년 내 가능한 수상후보자가 없으며,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인과학자를 포함하면 콜롬비아 대학의 김필립 교수가 거의 유일하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노벨상은 ‘강남 스타일’ 같은 ‘끼’로만 안된다. 명석한 엘리트들이 아주 장기간 매진해야 가능하다. 특히 장비와 동종 연구인력이 턱없이 모자란 약소국에서는 더욱 어렵다. 그런데 우수 연구인력이나 교수들이 훌륭한 순서로 높은 자리를 맡아서 ‘연구 경영’이나 ‘프로젝트 관리’에 인생을 거는 풍토로는 정말 하세월이다. 아마 누가 한국에서 노벨상을 받기라도 한다면 그의 연구자로서의 인생은 끝날 것 같다. 장관은 당연하고 국무총리 등의 자리를 제공하며 당장 정치권이 수상자를 이용하려 들 것이다. 대권에 나서서 대한민국호를 구출해달라고 아우성을 듣게 될 확률도 크다. 강남 스타일처럼 한 번 뜨는 일은 미분값이 중요하다. 하지만 노벨상 같은 프로젝트는 적분값이 중요하다. 한 번 반짝해서는 어렵고 계속 꾸준하게 정진해야 가능한 일이다. 요즘 한민족이 한류로 동남아를 누비는 ‘끼’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재주 위에 옛날에 우리가 가졌다던 은근과 끈기를 섞지 않으면 본질적 점프가 어려울 것같다. 그나저나, 언론에서 ‘세계적 학자’라고 치켜세우는 과학계 교수님들이 그렇게나 많더니, 10년내 가능성으로 봐도 사정권 안에 드는 학자가 없다니 입맛이 정말 떨떨하고도 텁텁하다.
박사님 글 너무 잘 보고 있습니다.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시기 때문에 재미가 더 한것 같아요. 한류는 한번에 터진것은 아닌것 같아요. 정말 많은 아이돌 스타들과 기획자들이 준비되고 그만큼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기에 싸이같은 가수도 나온것 같습니다. 한국 과학계도 그러한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겠죠. 코센에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될 분들이 계신것 같습니다. 그분들께 더 힘을 드리고 싶어요. 한민족과학기술자 화이팅!!
문화계와 과학계에서 나타난 현상에 대해 시사하는 점이 크네요. 각 분야마다의 특성에 따라 우리 사회의 인식과 외국인들이 바라보는 시각까지... 문화의 힘은 끼를 바탕으로 한 남다른 재주(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가 세계를 흔들 수 있다면, 학문(과학을 포함한)은 은근과 끈기를 바탕으로 꾸준히 정진해야 이루어진다는 것을 되새기에 되었습니다.
과학자이시면서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을 느낄 수 있는 글에 감사를 드립니다. 싸이, 막걸리, 김기덕감독~의 공통점은 외국에서 유명해지고 나서야 역 수입되었다는 거랍니다.
우리 사회에는 스스로 가진 귀중한 것을 혜안으로 구별하는 능력 - 통찰력- 이 부족한것 같습니다. 굳이 정보통신부를 없앤 정부의 무능함을 꼽지 않더라도 과학이나 IT 분야의 많은 성과들을 제대로 갈고 닦지 않고, 또한 글로발 환경에 들고 나갈 도전정신도 좀 약하기 때문이겠죠.
요즘 인문학 공부니 해가며 많이 떠드는데 우리나라 이공계 학도들에게 가장 필요한것이 아닌가 합니다. 코드 잘 짜고, 연구 개발 잘 한다고 노벨상을 타거나 인류에 봉사할 수 있는건 아닌데 말이지요.
인문학적 소양을 키워야 그 안에서 창의력이나 혁신이나, 인류에 대한 애정이 나오는게 아닌가란 생각을 해봅니다. 박사님 말씀이 마음에 담아둔 생각과 많이 같아서 두서 없이 적어 봅니다. 늘 건강하세요. 추운 날에 따뜻한 사람을 만나든가, 두툼한 옷 한벌 준비해야겠습니다. 이만 총총~~^_*}
과학자이시면서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을 느낄 수 있는 글에 감사를 드립니다. 싸이, 막걸리, 김기덕감독~의 공통점은 외국에서 유명해지고 나서야 역 수입되었다는 거랍니다.
우리 사회에는 스스로 가진 귀중한 것을 혜안으로 구별하는 능력 - 통찰력- 이 부족한것 같습니다. 굳이 정보통신부를 없앤 정부의 무능함을 꼽지 않더라도 과학이나 IT 분야의 많은 성과들을 제대로 갈고 닦지 않고, 또한 글로발 환경에 들고 나갈 도전정신도 좀 약하기 때문이겠죠.
요즘 인문학 공부니 해가며 많이 떠드는데 우리나라 이공계 학도들에게 가장 필요한것이 아닌가 합니다. 코드 잘 짜고, 연구 개발 잘 한다고 노벨상을 타거나 인류에 봉사할 수 있는건 아닌데 말이지요.
인문학적 소양을 키워야 그 안에서 창의력이나 혁신이나, 인류에 대한 애정이 나오는게 아닌가란 생각을 해봅니다. 박사님 말씀이 마음에 담아둔 생각과 많이 같아서 두서 없이 적어 봅니다. 늘 건강하세요. 추운 날에 따뜻한 사람을 만나든가, 두툼한 옷 한벌 준비해야겠습니다. 이만 총총~~^_*}
언제나 명쾌한 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현지 TV만 보시는 전박사님께도 싸이의 말춤이 노출되었다니 대단한 효과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