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Computer, Big Science and Big Uncertainty
- 3241
- 4
컴퓨터가 좋아지면서 여러 가지 흥미로운 현상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컴퓨터 분야자체와 주변 분야(주로 공학과 과학) 그리고 사회전반에 대한 여러 가지 현상들이 컴퓨터의 발달과 맞물려 상당히 밀접하게 변화되고 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는 메모리를 아껴 쓰는 알고리즘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 사용한 메모리 위에 변수를 덮어쓰고 다시 지우기를 반복하는 알고리즘들이 프로그래머들을 아주 골탕 먹였습니다. 조금 실수하면 이미 변수가 지워졌거나 엉뚱한 것이 들어있는 값을 불러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프로그래밍에서는 이런 궁색한 짓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메모리와 계산 용량을 사용하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옛날에는 노트에 필기를 하여 공부하고, 시험이 끝나면 이미 사용했던 노트에서 내용들을 연필로 지우고 다시 그 위에 필기를 반복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돈이 많아진 요즈음은 노트 따위는 얼마안하니, 빈 곳이 많이 남은 노트들을 다 안 쓰고 그냥 버리는 것이죠.
공학에서는 향상된 컴퓨터를 사용하여 비주얼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화려한 그래픽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 계산결과를 발표할 때 많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과거에 시뮬레이션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실력차이는 얼마나 적절히 단순화하느냐에 달려있었습니다. 어떤 부분은 좀 복잡해도 타협할 수 없이 그대로 계산에 넣어야 하지만, 어떤 부분들은 아주 간단하게 바꾸는 것을 전문가가 판단하는 것이죠. 그런데 요즘은 컴퓨터 용량이 커지다보니 모든 데이터, 모든 형상을 거의 원형 그대로 다 고려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고객들 입장에서는 훨씬 마음이 편하죠. 시뮬레이션이 좀 더 실제상황에 가까워졌으니까요. 하지만 결과가 사실에 더 가까운지는 보장이 없습니다. 혹시 결과가 더 가깝다고 해도 너무 변수가 많아져 그것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죠. 그래서 답을 다 얻고도 마치 숨은그림찾기 같은 정답을 다시 해석해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떨까요? 대용량의 동영상 데이터가 바로 보내지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양의 국내-국제소식들이 실시간으로 우리 생활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검색을 통해 아주 사소한 정보들까지도 다 확인할 수 있기에 해외여행하시는 분들의 계획은 아주 빈틈없이 잡히더군요. 사실 여행은 우연성을 만나기 위해 집을 떠나는 것인데, 필연성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탈바꿈해버렸습니다.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분들도 있겠지만, 필자 입장에서는 이것만큼 슬픈 일도 없습니다. 요즘 GPS가 길을 잘 안내해줘 낯선 곳에 가게 되어도 운전이 크게 두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GPS를 사용했더니 다음에 와도 여전히, 아니 다섯 번이나 같은 지역을 방문해도 여전히 기계에게 길을 묻는 일이 생기더군요. 지리공부가 전혀 안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즈음 오히려 지도를 더 많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일반사회에서 정보가 많아지면서 생긴 현상은 시시껄렁한 정보에 묻혀 진짜 정보가 많이 가려진다는 점, 그리고 알아야 할 것들보다 알고 싶은 것들에 집착하여 오히려 더 편협해지기 쉽다는 점 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결과들의 화려한 비주얼에 현혹되다보니 기본적인 것들을 못 짚어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단 그래픽이 좋으면 결과의 품질도 높은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생긴 것이죠. 심지어 그래픽이 너무 단순하면 고객들에 대한 실례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이렇게 그래픽에 치중하다보니, 왜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하나? 등의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당위성이 약합니다. 더욱이 지금은 트렌드의 시대이기에, 누가 하면 왜 해야 하는 지를 생각하지 않고 다 그리로 가는 시대죠. 그래서 한국이 이제는 따라만 가는 것이 아니라, 앞서서 리드해야 할 국가라는 듣기 좋은 명제를 내세우면서도, 여전히 남들을 따라가기에 바쁜 것이죠.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이 무엇인지 기억할 수 있으신지요? 만약 기억하신다면, 그것은 혹시 흑백사진이 아닌지요? 컬러가 담을 수 없는 3차원적 깊이를 담은 흑백사진 말입니다. 흑백사진처럼 좀 더 담백한 진실을 담아내는 필터가 과학계에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워낙 많은 기관들이 저마다 중요한 사명을 수행한다고 떠드는 것으로는 난잡하고 의미 없는 컬러사진들의 홍수 속에서 머리만 산란해집니다.
당연히 트렌드를 따라가고 화려한 컬러사진을 뽑는 경쟁을 해야겠지만,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의 빠른 발걸음을 못 따라간다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흑백사진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영감을 젊은이들에게 줄 수 있는 내공을 쌓아야 하지 않을까요? 배가 얼마나 빨리 가는지는 젊은이들의 몫이라면, 배가 어디로 가는 지 방향을 잡는 것은 기성세대의 몫일 터이니까요. 좌우간, 이제는 정보습득보다 그 해석과 의미를 아주 단순화하여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바야흐로 ‘정보화 시대’가 지나고 ‘개념화 시대’가 오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서서히, 여태껏 잃어버리기도 했고 잊어버리기도 했던 본질을 찾는 노력을 해보십시다.
같은 마음입니다. 과학을 하면서 혹시나 기본이나 개념보다는 보여지는 비주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것이 아닌가 돌아보게 됩니다. 좋은 글로 스크랩하고 두고 두고 마음에 지니고 싶은 글입니다. 좋은 생각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르네상스 공돌이는 과학칼럼이라기보다 인문학 칼럼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과학뿐 아니라 전분야에 걸친 통찰력이 느껴지는 칼럼인 것 같습니다^^요즘 같은 시대에 꼭 필요한 말씀 깊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주옥같은 글입니다:^) 기본이 되어야 할 생각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안타까운 이 현실! 개개인이 말그대로 개념있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