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확신과 의심





 다 되어 가는 한국의 유명 여류 디자이너 한 분이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트랜드를 따라잡아야 하기에 젊어야 할 터인데, 그 연세에도 아직 현역에서 잘나가시는 비결은 무엇인지요?” 라는 질문에 답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내가 혹시 틀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설퍼보이는 젊은 친구들의 의견도 귀담아듣곤 했습니다. 그게 비결이라면 비결이겠죠.”



 고참 디자이너의 의견과 다르게, 한동안 폭퐁처럼 우리 주위를 몰아쳤던 자기개발서들은 한결같이 확신을 말했습니다. 자신을 확실히 믿고 ‘긍정의 힘’으로 밀어부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방정식이  난무했습니다. 이런 확신과 긍정을 증명하는 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일화도 증거로 제시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안된다고 할 때, 역으로 나만은 그 가능성을 봤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직장에서도 확신이 있고 긍정적인 사람들이 더 많이 성취(진급)한다고 합니다. 그런 공식에 아주 익숙한 우리에게, 한 베테랑 디자이너는 자신의 직관을 자주 의심해본다는 역발상의  메세지를 주었습니다. 사실 필자도 이런 문제로 오랫동안 생각해봤습니다. 실체란 실체인데, 보는 관점만 긍정적으로 달리 한다고 진실이나 사실이 바뀔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많이 해본 것입니다. 한참을 생각해봤더니, 결론은 의외로 쉬웠습니다. 현재 우리가 하는 많은 일들은 객관성이나 진리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무척 많습니다. 과학적 사실이라는 ‘팩트’를 제대로 알기보다는, 사람간의 관계와 계약성사 같은 ‘설득’, 즉 감성과 더 가까운  문제들을 잘 해결해야 우리 삶이 좋아지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긍정적인 사람에게 더 많이 신뢰가 가고, 같은 일을 해도 확신에 차있는 사람은 뭔가 철학이 있다고 사람들이 착각하게 되는 것이죠. 확신을 가지는 것을 , ‘자세가 되어 있다’는 말로 우리는 표현하기도 합니다. 상사들이 좋아하는 부하사원, 교수님들이 좋아하는 제자, 딸가진 부모님들이 좋아하는 사윗감 스타일입니다.  사실 결혼할 때도, 많은 여성들이 솔직한 자기 처지를 이야기하는 남자보다는, 뭔가 엄청나게 큰 그림을 그리는 ‘뻥쟁이’ 남자를 더 선호합니다. 우선 듣기도 좋고 뭐 그렇게 안되어도 꿈이라도 크게 가지면 나쁠 것 없다는 논리입니다.



 낮을수록, 나이가 어릴수록, 그리고 경력이 일천하여 어설플수록 자기확신이 많고, 자기가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인식을 가지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잔소리하는 고참들만 가득한 환경에서, 자기확신이나 긍정적 마인드마저 없으면, 스트레스와 열등감에 하루하루가 아주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위가 오를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경험이 많을수록 내가 선택한 결정이 틀릴 수도 있다는 의심을 가져보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너무 의지와 확신이 강한 지도자 밑에서는 소신있는 담당자가 나올 수 없습니다. 나중에는 피곤해지고 자괴감이 늘어나, “명령만 내리시죠. 제가 뭘 압니까?” 라는 생각으로 일하는 직원, 후배, 제자들이 늘어납니다. 일이나 연구에는 언제나 양면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합리적 의심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 채, 주어진 조건 내에서 최선이나 차악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일을 합니다. 그러나 자기 결정을 너무 믿는 리더 아래에서는 최악의 경우에 대한 시나리오를 발설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회의는 언제나 토론보다는 지시로 마무리되고, 나쁜 결과가 생기면 지도자를 손가락질할 뿐,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과학계에서도, 큰 프로젝트에 많은 예산을 따내느라 과도한 확신으로 자기최면술을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불쌍한 연구원들, 가난한 제자들 먹여살리려는 고육지책이면 다행이고, 어차피 정치권이 엉뚱한데 쓸 돈을 과학에 투자하는 것은 분명히 남는 장사라는 계산이라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뛰어다니다가 결국 스스로가 본인마저 속여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청사진이 지나가고 몇 년 후, 백서를 쓸 즈음에는 괴로워지는 것이죠. 결국 실패한 프로젝트는 하나도 없는, 10할10푼10리의 타율을 자랑하는 연구환경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화는 정말 얼굴이 화끈거리는 창피한 일입니다. 돈보다 먼저 진실이 있는 것이고, 프로젝트보다 훨씬 상위에 과학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존심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해야 하는 과학이라는 모자를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과학을 정치의 업적으로 포장하려는 공무원들의 근시안을 더 비판해야겠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선은 반드시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지성은 의심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은, “나는 의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바꾸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의심에 대한 답을 얻으려고 정진하는 것이 진정한 과학의 길입니다. 부정적 의심은, 확고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을 믿는 오만으로 결국 남과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하지만 합리적 의심은 호기심과 맞닿아 있습니다. 형사 콜롬보가 담배를 물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끝없이 질문하던 그 의심 없이는 어떻게 진범을 가려내고 정의를 세우며 억울한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줄 수 있겠습니까? 답이 없어보이는 일을 해야 하는 괴로움을 이겨가면서, 의심이 들 때마다 잠을 설칠 때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진리는 그렇게 의심 속에 비벼져 있는 것이 아닐까요? 황금이 모래 속에 섞여 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지나친 확신은 그 자체가 바로 무지라고 말하면 지나친 표현이 되려는지요? 어쨌든 자신이 하는 일과 이론에 의심이 많아 괴로운 분들에게 위로를 드리고 싶습니다. 확실하지 않아보이는  길을 묵묵히 가라고, 그리고 그렇게 의심하는 당신이 진정한 과학자임을 ‘확신’하라고 말입니다.



  • 좋아요

소중한 글, 감사합니다.

항상 그렇지만 이번글도 참 좋습니다. '긍정의 배신'이란 책이 생각나네요.
연세가 많으신 분들 중에 자기확신이 과한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 분들 앞에서는 뭔가 반론을 제기하기가 참으로 어렵지요. 나이가 들수록 유연함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렵고도 중요한지 새삼 깨닫습니다.

느낌 아니까..참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