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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시대에 과학기술을 다시 생각하자

머리 털나고부터 늘 들어오던 말이 ‘요즘은 불경기’라는 말이다. 이 말은 변하지 않았다. 인간은 모든 것을 너무 조심스럽게 그리고 부정적으로 보거나 아니면 자신이 가진 것을 감추려 한다. 그래서 잘되는 가게 주인도 “겨우 밥이나 먹는다”고 엄살을 부린다. 그런데 요즘 불경기와 과거의 것을 비교하면 좀 차이가 있다. “작년만 해도…”, 아니면 “3년전만 해도…” 처럼 바로 전 과거에 대한 좋은 추억과 비교하길 좋아했었다. 얼마전만 해도 물가는 이렇게 안올랐고, 장사는 훨씬 잘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맞이한 금융위기에는 이런 과거추억현상이 줄었다.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으니 좋았던 기억을 다 잊었나 보다.

경기회복
가능할까

몇 년 전에 “이제는 경기회복가능성이 보인다”고 많은 신문들이 호들갑을 떨 때, 노벨경제학 수장자인 프린스턴 대학 Krugman 교수는 일갈했다. 이번 경제위기는 V 자형이 아니라, L 자형 위기, 즉 잠시 주저앉았다가 다시 뜨는 것이 아니라, 장기침체로 간다는 것이다. 아마 발전된 사회에서 다시는 활기찼던 경제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같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성장기인 10대-20대가 지나고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를 우울하게 합창하는 분위기인 것이다. 한국경제가 서른 즈음이라면, 일본과 유럽은 환갑 즈음이고, 미국은 쉰 즈음이다. 인도는 한참 전부터 학교간다고 부산을 떨었는데 아직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것 같고, 중국은 에너지 넘치는 십대 같더니, 너무 놀았는지 아니면 지나치게 공부했는지 벌써 상당히 피곤하단다. 어찌되었든, 이제 10% 근방까지 가는 경제성장률은 주위에서 보기 어려울 것이다.

성장에서
성숙으로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계몽주의니 르네상스니 하던 시대에 한줄기 빛으로 사회를 비춘 철학기반적 과학이 아니라, 보릿고개를 넘게 해주고 집집마다 My Car 시대를 열어준, ‘생계형 과학’이다. 그래서 우리 과학기술은 고도성장의 도구였고, 고도성장과 수출 드라이브 환경의 패러다임에 익숙하다. 그런데 이제 저성장 시대가 왔고, 계속적 저성장 시대를 앞두고 있다. 사실 저성장이란, 성장은 안되지만 성숙기라는 면에서 그 의미가 아주 큰 시간이다. 즉, 외형보다 내적 풍요를 도모하고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철든 인격체가 되어가는 길목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 벽에 새겨진 눈금에 키를 재보고 2~3년 동안 고작 1센치미터도 자라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느끼는 중이다. 성장에 익숙한데 성숙은 아주 낯 선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성숙이라는 단어로 눈을 돌리지 못하고 정지된 성장을 채근하기만 한다. 겨우 그동안 우리가 힘써 해온 일은 “생계형 과학”을 “경쟁형 과학”으로 바꾼 것이다. 하지만 성장에서 성숙으로 넘어가는 시기를 인문학 전공자들은 제대로 읽어냈다. 이제야말로 그들의 세상이라는 듯, 봇물 터지듯 인문학 담론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계는 어떤가? 경쟁형 과학이 한계에 다다른 것을 느꼈는지, 이제는 “창조형 과학”을 만들었다. 조어에 신을 상징하는 ‘창조’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꿈보다 해몽이 중요해진다. 이제 어떤 해몽을 내어놓아야 할까? 과연 우리 과학기술계가 “창조경제”에 이바지할 것은 무엇일까?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성장에서 성숙으로 가면 생기는 현상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일을 적게 하고 많이 논다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노는 음주, 도박, 스포츠도 증가하지만, 좀 더 고상하게 예술과 인문학을 즐기며 노는 사람도 생긴다. 그래서 노는 것과 친한 사람들이 놀면서 돈버는 일을 하고, 빡세게 일하는 사람들보다 돈을 더 잘 번다. “ㅍㅍ, ㅋㅋ, ㅎㅎ”로 연결되는 쓸데 없는 문자나 보내는 판을 만든 카카오톡을 보라. 노는 일, 시간보내는 일 같은 ‘쓸 데 없는 일’을 지원하고 돈도 벌고 시장의 권력도 누린다. 성숙의 시대에는 레저와 문화가 기술과 어우러져야 하는데, 우리 과학기술계 권력자들은 옛날부터 천재적으로 공부만 해온 사람들이다. 공부벌레 대학 교수님들, 일벌레 대기업 중역님들, 멸사봉공으로 프로젝트를 끌어온 연구소 팀장님들, 국가와 민족만 생각하는 고위 공무원님들 전부가 다 노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우리사회의 엘리트상이 너무 과거 프레임에 갖혀있다. 우리 스스로가 집집마다 좋은대학보내는 것, 그 후에는 고시 붙거나 빨리 유학하고 오는 것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노는 세대를
위한 과학

전산 엘리트들이 대거 게임업체로 간다고 하고, 게임중독에 망가진 아이들의 부모가 원망하는 이야기를 동일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대학에서부터 게임프로그램을 지원했더라면, 윤리나 아동심리, 폭력성 등에 대한 기본교육도 같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학교와 사회는 전혀 다르게 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많은 공과대학에 악기구조나 제조를 연구한다는 실험실은 아직 못들어봤다. 우리가 주변에서 가지고 노는 것들이 이제는 연구주제가 되어야 할 시점이다. 로봇 기술이 앞섰다는데, 왜 드라이브 샷을 멋지게 날리는 골프천재 로봇을 선보이지 못하나? 타이거 우즈를 한 번 초청해서, 우즈와 박인비가 한 조이고, 최경주와 로봇이 한 조인 골프경기를 치뤄볼 수는 없을까? 어설픈 기계장치 때문에 져도 좋다. 로봇 입에서 “골프는 승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것이다!”라고 영어로 한 번 말해주면 우리 시대의 전설이 될 것이다. 바하의 악보가 수학적으로 쉽게 분석될 필요가 있고, 다빈치의 미술이 공학적으로 점검될 필요가 있다. 왜냐면 이제 자동차는 흔하고, 가전제품은 넘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스마트폰으로 먹고살 수 있을지 모른다. 특유의 카피감각으로 언제든 베끼면 거리를 좁힐 수 있다고 생각하다가는 영원히 시장에서 머슴신세다. 모범생 과학기술 권력자들이 성숙시대, 노는 시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판을 좀 흔들어 현실을 보여주자. 천박하고 가볍기만 해서는 안되기에 고민을 엄청 많이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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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뇌와 좌뇌를 같이 긁어주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ㅋㅋ ㅎㅎ
전박사님은 이제 한국으로 오셔서 중요한 정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범생 과학기술 권력자들 집단에 새바람이 필요한거 같습니다.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오랜만에 로그인했네요. 전박사님들 같은 분들이 우리나라 과학정책 당국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 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