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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나체촌이 되어 가는 중

최근 인터넷 사이트인 아마존닷컴에 방문해서 몇 가지 물건을 찾아보고는 그냥 나온 적이 있습니다. 며칠 후 인터넷을 열었는데, 아마존 근처도 가기 전에 필자가 이미 찾아보았던 그 물건을 광고로 띄워주는 친절함을 배풀더군요. 이제는 내 컴퓨터가 주인이 방문한 사이트를 기억해두었다가 남에게 자동으로 고자질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빅데이터?
Big brother!

컴퓨터가 고장나 수리하려고 전화합니다. 몇 번 이야기했는데, 서로 소통이 안되면 고치는 저쪽에서 (아마도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은 후) 지금 아래에 뜨는 창에 ‘예’라고 답하라고 합니다. 그러고나면 커서가 마음대로 움직이면서 ‘보이지 않는 손’이 내컴퓨터를 뒤지기 시작합니다. 나의 설명 필요없이 이곳저곳을 다녀보며 친절하게도 다 고쳐놓는 것이죠. ‘예’라고 대답해야 컨트롤 권한이 넘어가는 것을 무력화시킨다면, 남의 집을 제 집처럼 들락거릴 수 있습니다. 마치 아파트 출입문의 코드를 남이 알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죠. 그렇게 들어와서 냉장고에서 과일 정도나 꺼내 먹는다면 애교수준이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릅니다.
한국에는 이제 하나의 교통카드로 전국 어디서나 사용가능하게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편리하겠지만, 시간대별 행적 추적이 너무 쉽습니다. ‘중앙’에 앉아서 Big Brother가 한 사람의 ‘인생’을 관찰해보려면 상당히 간단해졌습니다. 우선 휴대전화 통화를 추적합니다. 그러면 친구관계에서부터 불륜관계까지 모든 관계가 전부 나옵니다. 그 다음으로는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보면, 소득이 얼마쯤인지 취향은 어떤지가 나오고, 심지어 가족들 생일날자까지 추측가능합니다. 케이크를 샀을 경우 통화시간 조회와 맞춰보면, 친구 생일파티를 위한 케이크인지 식구들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있겠죠. 휴대전화 위치추적까지 안해도, 파킹장 출입과 고속도로 톨게이트 이용사실만 알아도 큰 동선은 다 파악됩니다. 오고가는 이메일을 추적하거나 방문한 사이트까지 챙겨보고, 마트 영수증 내역을 더해본다면, 그야말로 삶의 패턴과 취향과 관계까지, 벗은 모습이 전부 나옵니다. 여기에 병원진료 기록까지 더해볼까요? 정보를 가진 측은 족집게 점쟁이가 되고, 개인은 거의 알몸이 되는 것이죠.

정보를 가진
자들의 횡포

누구나 다 알만한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면, 듣기 싫은 상대방은 한 마디 합니다. “그러니까 깨끗하고 투명하게, 윤동주 시인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게 살라니까?” 공자님 같은 이야기에 할 말이 없어지죠. 그런데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정보를 공평하게 알리거나, 공평하게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필요한 측이, 필요에 따라, 필요한 사람에게만 적용하는 것입니다. 개인과 정보를 쥔 쪽 간에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무한대에 이릅니다. 예를 들면, 내 차만 누가 추적합니다. 그리고 불법주차, 신호위반, 속도위반을 할 때마다 즉시 티켓을 발부합니다. 다른 차도 위반했는데 왜 내차만 단속하느냐고 항의한다고 무고함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행정력의 한계로 모조리 단속할 수는 없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워낙 희한한 세상이니,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의 사생활이 알려져서 유명해지길 바랄 수도 있습니다. 거물 정치인의 보온병 사건이 오히려 그의 이름을 더 알리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부고소식만 제외하고, 내용에 관계 없이 자기 이름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권력있는 정치인이 아닌 평범한 개인이라면, 정보를 쥔 측에 엄청 약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샐러리맨 한 명을 상대로 집중추궁한다면 약간이라도 탈세가 없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그 외 잡다한 행위들이 폭로되면 형사처벌대상까지는 아니라도 명예나 품위에 타격을 입히기는 너무 쉬울 것입니다. 사람들은 알려진 사실과 숨겨진 사실에 대해 굉장히 다른 잣대를 들이댑니다. 안알려지면 그냥 웃고 넘어갈 정도나 오히려 자랑거리마저 될 수도 있지만, 알려지면 몹쓸 인간으로 손가락질 받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언론이 팩트라는 맨 얼굴위에 잔뜩 분장을 해서 뉴스로 내어놓으면 상황은 더욱 악화됩니다.

벗기는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글을 쓰다보니 요즘 시국과 관련있는 이슈가 되어버렸습니다만, 정보의 선택적 폭로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정보가 통합되어 가는 IT 사회의 특징입니다. 이런 ‘벗기는 사회’에서 속옷이라도 안빼았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마땅한 대책이 없어서 필자도 답변이 궁합니다. 사회적 합의에 이르러도 한쪽이 안지키면 소용없는 일이기에 참 난감합니다. 불법도청을 해도 내용이 엄청나면, 불법여부보다 내용에 관심이 모아지고 법원에 가기 전에 인민재판으로 끝납니다. 방법은 단 하나,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알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죠. 그래서 율곡이 그 옛날 말씀하신 ‘신독(愼獨)’에 정진하는 것입니다. 남이 안볼 때마저 도리에 어긋나는 허투른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죠. 시계를 거꾸로 돌려 IT 시대에 생각해보는 ‘온고지신’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도적 대책은 없습니다. 또 다른 방법은, 덜 유명하고 덜 중요한 인간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소한 자유는 보장되겠죠. 이래서 인생은 공평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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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지성 자끄 아탈리가 예견했듯이 이미 세계는 하이퍼 노마드의 세상입니다. 미국 정보기관에서는 개인별 보고서가 16페이지 정도로 정리되어 나올 수 있다고 하더군요...그게 싫으면 모두 정리하고 사막이나 산속 한가운데에 가야 될 겁니다.

컬럼을 읽다보니 자유를 박탈 당한듯 가슴이 답답해지네요. 누군가 나의 모든 행적을 꿰고 있다는 것이 유쾌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