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양서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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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자세히 보니 인간은 고래나 양서류 같습니다. 물이 너무 많으면 홍수나서 문제, 없으면 가뭄으로 난리가 나니 말입니다. 어릴 때는 큰 물고기로만 알았던 고래가 그물에 걸려 죽었다는 신문보도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활동성이 큰 고래가 그물에 걸려 홧병으로 죽는 줄 알았습니다. 포유류인 고래는 잠수시간만 길 뿐", 물고기처럼 계속 물안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몰랐죠. 양서류 개구리도 물이 없어 피부가 바짝 말라도 죽지만, 물 속에 아예 길게 잠수를 시켜도 죽겠죠? 사람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 집에 보일러가 고장나서, 수리하는 며칠간 온가족이 샤워를 못한 적이 있습니다. 인근 호텔에 가서 사정이 여차저차하니 샤워만 좀 하자고 그랬더니, 웰컴이랍니다. 그런데 하룻밤 자는 방값을 내야 한다고 해서 “노 탱큐!”라고 하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상황은 이틀만에 종료되었지만, 며칠 더 지났으면 온가족이 서로를 째려보다가 스트레스 폭발로 뭔가 사단이 날 것 같았습니다.
첼로를 좋아하다 보니, 우연히 현재 활동하는 몇몇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연주를 듣고는 그들의 사생활이 궁금해졌습니다. 어떻게 저기까지 갔을까? 어떻게 저렇게 완성된 소리를 낼까? 저들의 사생활도 음악만큼 우아할까? 하는 저급한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저들이 들려주는 음악이 저들의 인생(이상)이라고 생각하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들춰보면 다 추한 곳이 있고, 이해할 수 없는 편력이나 약점들이 있게 마련이죠.
외국에 살면서 한국사람들의 인생을 보면, 지나치게 관계중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관계중심인 것은 문제가 없는데, 너무 가까이 들어가려고 한다는 생각입니다. 약간의 간격을 두면 추한 것은 가려지고 배울 점은 두드러질 터인데, 거리 두는 것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타인에 대한 독점력이나 호기심이 지나친 탓이며, 자신의 노력보다는 개인적 관계로 문제를 좀 해결해보려는, “끈”에 대한 집착이 아닌가 합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과 상대의 일치됨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겠죠. 이런 유치한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될 지 모르겠는데, 필자는 젊을 때 연애할 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나를 못지키고 너무 상대에게 다가가려고만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상대는 더 부담을 느끼고 나는 더 집요해져서 더욱 더 정떨어지는 상황으로 갔던 것이죠. 그러고는 상대가 배신했다고 세상에 믿을 사람 없더라는 마음을 가졌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민망합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줄곧 필자는 복서 모하마드 알리의 팬입니다. 전설 같은 그의 복싱과 인생을 이야기하라면, 밤을 새울 것같습니다. 그는 아웃복서입니다. 좁은 링에서도 거리를 두고 치고 빠지는 스타일이죠. 나비 같은 경쾌한 스텝으로 빙빙 돌다가, 벌 같은 속사포 펀치를 날립니다. 그의 복싱은 싸움이 아니라, 예술이고 춤이죠. 그런데 상대에게 파고드는 인파이팅 복서의 경기를 보면 이전투구입니다. 피가 튀고 서로의 머리가 부딪치고, 심지어는 귀를 물어뜯는 사건까지 있었죠. 복싱도 이렇게 인파이팅이 되면 춤이 드잡이로 변질되고, 예술이 투견으로 전락하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의 관계에서도 승리만을 위해, 자기가 얻고 싶은 것만을 위해 너무 가까이에서 ‘너죽고 나죽자’는 접근전을 펼치면, 승부에 관계 없이 전장이 너무 처참해지겠죠. 좋았던 관계도 실망과 배신으로 얼룩질 것입니다.
민감한 상대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자는 처세술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고상하고 우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내가 좀 더 노력하고, 관계로부터 뭔가를 적은 노력으로 얻으려는 욕심을 약간 자제하자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나 스스로만으로도 충분히 당당한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멋있을까요? 양서류가 물 속에 완전 잠겨서 생활하지도 않고, 물을 떠나지도 않는 것처럼, 우리도 사람들과의 관계를 그렇게 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엉뚱하긴 하지만, 새해설계에 도움이 좀 되셨는지요?
요즘 드라마나 오락프로의 대세가 누군가의 사생활을 너무 노출시키는 쪽으로 흐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인간관계에서도 너무 가까이 다가가려고만 하진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여자의 얼굴도 가까이에서 보면 주름이나 모공만 눈에 들어오지만 조금만 거리를 두고 보면 총명한 눈빛 예쁜 미소가 보이게 되는것 같습니다. 어쩌면 거리를 두는 미덕이 우리의 삶에 필요한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을 읽는 내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걸까?' 이번처럼 궁금했던 적은 없었던거 같네요. 전박사님 글 같지가 않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