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교육을 위한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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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제간 연구나 융합, 통섭 같은 단어들이 나오기 시작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진정 융합을 하려는 시도보다는 ‘또 다른 (분리된) 학제’로써 융합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여러 분야로 잘게 나뉜 학문들이 포화시점에 이르렀기에, 이제 융합은 과학의 시대정신이다. 새로운 발명을 출시하여 경제에 기여하는 면에서도 융합이 중요하지만, 원래 과학정신인 ‘자연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도 융합은 필수다. 왜냐하면 자연은 전자공학이니 화학이니 하는 말을 모른 채, 전체과학이 섞여서 조화롭게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이런 시대의 요구에 맞춰 무학년 무학과 제도를 운영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영역구분이 아예 없이 전체를 공부한다는 것은 천재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수식보다 경험과 실험이 필요한 분야는 더욱 그러하다. 정해진 길이의 끈으로 사각형을 만들 때, 정사각형을 만들어야 면적이 최대가 된다. 높이와 폭이 조화를 이루어야 면적이 커지는 것이다. 무학년 무학과로는 폭을 너무 넓게 잡아서 높이를 키우지 못할 수 있다. 그 반대로, 세밀한 학과분화는 높이만 키우다 폭에 기여할 끈이 모자란 경우다. 둘 다 면적이 커지지 않는 기형적 형태다.
그래서 오늘은 좀 더 구체적으로 융합 연구를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논해보려고 한다. 융합도 다른 교육처럼 일찍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만 범위를 너무 넓게 잡으면 곤란하다. 그래서 이과-문과 구분에 논란이 많은 고교 과정도, 선택과목만 서로 약간 다르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워낙 입시가 자주 바뀌어서 이미 시행중인 지 필자는 알 길이 없지만 말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기회는 석사과정이다. 한국에서는 석사과정을 박사준비반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석사는, 일반대학원이라고 부르는 ‘박사준비반’과 전문대학원이라고 부르는 ‘실무준비반’으로 나뉜다. 미국 학제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진학하는 로스쿨-MBA-의대가 전문대학원이다. 의대나 법대의 영어 학위이름에는 ‘Doctor’라는 칭호가 붙지만, 지나친 과장이고 사실은 실무를 공부하는 석사과정이다. 그 구체적 사례로는 위의 세가지 과정 졸업생들의 90% 이상이 박사과정에 진학하지 않고 실무로 직행한다는 점, 위의 세가지 과정에서는 새로운 학문을 연구하기보다, 이미 확증된 내용을 위주로 공부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대다수의 학부졸업생들은 직업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일반석사과정(GRE시험을 봐서 입학하는) 보다는 전문석사과정 중 하나로 진학하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 유학생들은 일반석사과정으로 많이 지원하고 있다. 전문석사과정은 학비가 비싸고, 높은 수준의 영어실력을 요구한다는 점이 어렵고, 그리고 돌아와서 전공분야의 교수가 되려면 일반석사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서양사회에서는 대학이나 아주 전문적인 연구소를 제외하고는 박사학위는 그 기간에 해당하는 3~4년의 경력으로만 간주된다. 심지어 기업들은 박사학위소지자들을 꺼리는 경향마저 있다. 연구에 너무 습관이 들어 추진력이나 유연성이 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서양사회의 주류는 결코 PhD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주류가 고시 출신과 박사들이라면, 서양사회의 주류는 전문석사과정 출신들이다. 영미권과 학제가 다른 프랑스의 엘리트 교육과정인 그랑제꼴도 결국 전문석사과정이다. 우리나라에서 박사가 특별히 필요한 이유가 있기는 하다. 학교를 떠나면 공부도 떠나는 분위기 때문에 그나마 학교에 다닐 때에 공부를 해야 하기에 박사학위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재미있게도, 박사학위과정을 마쳤다는 말을 다르게, “공부를 끝냈다”고 표현한다. 초월자 아니면 바보가 되었다는 표현 같아서, 들을 때마다 혼자 실소하게 된다.)
자 그럼, 지금 논의하려는 석사과정만 생각해보자. 석사과정에서 논문은 폐지되어야 한다. 석사논문은 창의적일 수 없고, 수준도 높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박사논문의 연습이니 ‘표절’이 대다수다. 그래서 석사논문에 표절시비를 거는 것은 아무래도 과해보인다. 논문이 없다면, 4학기동안 12과목에서 16과목까지 수강할 수 있다. 이때 절반은 전공과목을, 나머지 절반은 타학과 과목(학부과목도 좋다)을 듣는다면 정말 좋은 교육과정이 될 것이다. 논문을 폐지하기 싫다면, 선택으로 남겨둘 수 있다. 그리고 대학은 다른 준비를 추가적으로 할 필요도 없다. 이미 개설된 다른 학과 과목에 수강생이 몇 명 더 늘 뿐이다. 쉽게 말해서, 밥상에 숫가락만 하나 더 얹으면 되는 것이다. 박사과정을 계속하더라도, 필자라면 논문 대신 추가수강을 택하거나 권할 것이다. 필자가 학생이든지, 아니면 지도교수이든지 동일하게 말이다. 기계공학과 석사과정 학생이라면, 6과목을 전자-컴퓨터-재료 등의 학부과목을 들을 수 있고, 물리학과 석사학생이 공학 과목을 수강하면 실험이나 취업을 위해서 금상첨화다. 그리고 공학도들이 석사과정에서 경영-회계과목을 듣는다면, 추상명사였던 창업이 고유명사로 느껴질 것이다. 국내 거의 모든 대학들의 홈페이지에는 ‘세계 속의 대학’이라는 문구를 사용하고 있는데, 필자의 조언은 융합과 국제화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연구환경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대학들이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공계 석사과정 학생들이 교수들 연구를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연구에서도 진짜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 가르치는 입장보다 학생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융합연구라는 것, 그렇게 먼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융합이 상생의 길이다. 복잡한 학과별, 교수별 손익계산은 덮어두고, 나이키 선전처럼 그냥 한 번 해보라.
석사논문 폐지 정말 좋은 말씀이네요.. 더불어 석박사 통합 과정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석사 논문이 없다고 석박사통합과정 중간에 그만 둘 경우 박사수료도 아닌 석사수료가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