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민낯으로 삽시다.
- 2526
- 4
세월호 참사로 모두에게 비통한 세월이 가고 있습니다. 외국에 거주하는 동포들도 국내 국민들 못지 않게 트라우마를 겪고 있습니다. 과거 유사한 사고에 대해서는 ‘후진국 병’이라고 치부했습니다만, 이번 일에는 거리를 둘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고 죄책감마저 들었습니다.
더딘 구조작업으로 인해 괜히 혼자서 허공에다 쌍스런 욕도 자주 했습니다. 이성으로는 더딘 속도가 이해가 갈 듯 하다가도, 감정이 용납을 못하고 있습니다. 속도에 강하다고 늘 자부심에 충만하던 대한민국인데, 정작 속도를 내야 할 때는 일부로 브레이크를 밟는 것인지… 이제 한국은 “빨리빨리의 나라”라는 간판도 내려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품질은 좀 떨어져도 필요에 신속히 응답한다는, “빨리빨리”가 이번에는 일단 물리적으로 먹히지 않았으니까요. 화재를 비롯한 모든 재난에는 상황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바로 대응해야 하는 것은 기본인데, 그 소중한 초기시간들을 이리저리 간만 보다가 보내버렸으니 누구나 울화통이 터졌을 것입니다. 특별히 아이들이 희생되었기에 국민들이 이렇게 흥분하게 되나봅니다. 그동안의 역사에서 우리 국가나 사회가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으니, 부모들의 자식사랑도 좀 과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높은 경제성장과 최고의 IT 공화국을 건설하려는 이유는, 결국 인권과 인명을 더욱 중시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임을 다시 한 번, 머리와 가슴에 새겨야 할 때입니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상황이 그대로 굳어지기보다는 열 명의 구조원들이 희생되더라도 열 명이 구조되는 상황이었다면 더 바람직했습니다. 그렇다고 위험한 상황에 강제로 다이버들을 내려보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할 수 있겠다고, 해보겠다고 나서는 민간잠수부들에게 무조건 기회를 줬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열 명의 전문 다이버들이 희생되어 단 한 명만이라도 구할 수 있었다면, 아마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했을 것이며, 살신성인한 구조원들 본인뿐 아니라 그 가족까지도 우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명예를 기꺼이 드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전문인력 열 명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나 하나를 살리려는 나라가 내 조국이구나!”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9-11테러 당시 미국사회 전체가 패닉에 빠졌지만, 그래도 미국민들이 위로를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적지않은 소방대원들이 자기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구조에 힘썼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효과 대비 위험부담으로 계산해본다면, 그들의 행동은 무모한 시도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책임의식은 경제성이나 구조 가능성보다 한층 더 높은 차원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라이언 일병이라도 한 명 구하려는 “깡다구”를 못보여주었으며, 이런 강단을 보여줄 가능성마저 미연에 차단한 것인지 너무 아쉽기만 합니다.
다른 아쉬운 점은, 문학-정치-사회 전공 교수들이나 전문가들의 온통 넘쳐나는 감성팔이 칼럼과 기고문은 무수한데, 신속한 실질적 구조 방법론을 논하는 이공계 교수들의 기고는 전무했다는 것입니다. 겨우 방송국에서 섭외하여 인터뷰에 응한 소극적 참여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공계 전문가는 대한민국의 주체적 참여자가 아닌 방관자인지, 아니면 뭐가 그리 무서운지 아쉬움이 컸습니다. 세계 최고의 로봇기술이니 조선기술이니 하는 광고들이 다 가짜는 아니겠지요? 과학기술자들의 적극적 참여가 없으니, 비전문가들이 대책팀을 꾸리고 그 대책이라는 것이 대국민홍보나 언론몰이일 뿐, 실제 구조행위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가 된 것이죠. 이 참에 공무원들 전체 구성을, 공고 출신 포함하여 이공계를 최소한 ¼ 이상으로 늘리는 법안을 만들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마쳐야겠습니다. 많은 세월호 관련 기사들과 칼럼에 ‘민낯’이라는 말이 자주, 그것도 아주 부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등의 기사 말입니다. 성형을 하거나 가면을 쓰거나 아니면 화장이라도 해야 할 정도로 우리의 민낯이 흉측스럽다는 이야기입니다. 말하고 싶은 의도는 알겠으나, 우리는 분장술을 더 익히기보다 우리의 민낯을 더 잘 가꾸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가 연극배우도 아닌데, 화장으로 떡칠한 얼굴로만 살아야 한다면 끔찍한 일이죠. 화장빨로 민낯을 가리기보다는 “나이 40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링컨의 말을 새겨야 하겠습니다. 가부끼 화장 같은 부자연스러운 얼굴이 아니라, 햇빛에 거무스레 그을린 믿을만한 민낯을 가진 어른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의 민낯을 가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얼굴에 책임지는 사회가 되길 희망해봅니다.
- 어둠 속에서 추위와 공포에 떨었을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그리고 평생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할 부모님들에게 삼가 죄송할 따름입니다.
특별히 언급하신 이공계 전문가들의 활동미약에 대해서는 대형 재난일수록 희귀 빈도에 따른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무척) 필요한데 그러려면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즐길 정도의 경지에 가야만(이런 분들은 남들을 돕는 상황을 기쁘게 생각하지요) 대비할 수 있는데, 죄송스럽게도 제 주변에 그런 분들을 거의 찾을 수 없더군요. 거기다가 조그마한 남들의 실수도 꼬투리 잡기를 좋아하는 또 다른 적당한 지적 역량을 갖춘 경쟁자가 언제든 있는 사회에서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체제가 가능할는지도 한번 생각해봐야 할 일인것 같습니다.
댓글을 포함해 말씀하신 대의로 나가는 사회에 대해서는 무척 공감하지만, 자신의 일을 사랑하지 않고 감사함이 생활 속에 체득되지 않는 사회에서 저라도 제가 생각하는 삶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주변에 그런 분들이 더 많았으면 싶습니다. 글이 길어져 죄송하고 사회에 기여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우리 아들딸들에게 너무 너무 미안해 요즈음 생활이 무척 힘들지만, 그들의 희생이 한국 선진화의 계기로 승화되어 희생자들을 가슴에 묻으신 분들께 조그만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한국이 이런 패턴이 고착된 또 다른 이유는 너무나 잘 아시다시피 50년전만 해도 무척 가난했고 경쟁적 입시체제 속에서 청년기를 보낸 탓으로 남들과의 협업에 취약한 문화적 배경이 근원적 배경일 것이고 이번에 크게 각성해 제도를 잘 만든다고 해도 그를 운용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재량권을 운용 직책에 계신 분들이 앞서 언급한 가치체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진정한 해결책이 되지 않아 보여 마음이 답답합니다. (죄송스럽게도 현재 언론 및 방송에서 언급되는 좋은 제도를 만드는 방식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졸견입니다)
세월호 참사 발생 후 드러난 초기 골든타임 대응미숙에서부터 아직도 진실이 확실하게 파악되지 않아 보이는 초기 재난대응체계까지 대한민국호의 모습은 총체적으로 부실/무능력 그 자체였습니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나 자신이 이번 일을 방조한 측면이 (명백히) 있을 수 있고, 아니 평소 그러한 문제점에 대해 언론이나 (사정)기관에 지적을 해도 그러한 문제점이 전혀 다루지 않거나 대충 넘어가는 일이 너무 흔해왔다는 게 사실입니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대부분의 한국인 각 개개인들이 (노후나 자녀들을 위해) 돈을 편법과 불법으로라도 축적해야 만 안심할 수 있다는 무의식적/소아적 강박증을 가지며 이런 분일 수록 상대적으로 가난하게 (거지처럼) 살고 있음을 비관하는 성향이 강해 끝없이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양상이 계속되며 이런 특성이 정부부처나 기관/기업간 업무특성에도 그대로 전이되어 있더군요.
저자의 의견에 정말 공감합니다.
앞으로는 나만을 위하지 않고, 서로를 위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인간미와 융통성이 있는 FM대로 하는 코센인 되었으면 합니다.
나만이라도 이제는 편법과 불법과 이기주의는 버리고 대의로 함께가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