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폐기물의 고고학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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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원전반대그룹에 의해 한수원 자료가 해킹당했다는 뉴스들을 보았습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발전소는 정말 뜨거운 감자입니다. 핵발전을 하지 않을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는 상황에 부닥쳐 있습니다. 건설계획은 보류하면 되겠지만, 이미 가동 중인 낡은 발전소들은 처리가 어렵습니다. 폐기하려면 가동 중단 후 발전소 전체 시설을 뜯어내서 ‘특별 쓰레기장’으로 옮기고, 비워진 발전소 대지도 몇십 년간 출입을 통제해야 하니까요. 한편, 오래된 원전이지만 설비 대부분을 교체했기에 사실은 거의 새것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물론 영원히 바꿀 수 없는 부분도 있죠. 그래서 정부는 단칼에 결정을 못 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핵폐기물과 관련하여 프랑스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L’Express)에 실린 흥미로운 기사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북동쪽, 그러니까 룩셈부르크 인접지역에 핵폐기물 처리장을 건설 중입니다. 지진이나 해일로부터 가장 안전한 지역 중에 선택했을 것입니다만, 독일-벨기에-룩셈부르크가 지척인 곳인데 인접국가들이 항의한다는 뉴스는 못 봤습니다. 아래로 500m를 파 내려간 지하에 1.5 제곱 킬로미터의 ‘핵폐기물 지하 공동묘지’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매장 후에 30 만 년이나 지나야 완전히 방사능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록을 가진 인간의 역사는 아직 1만 년이 안됩니다. 지금부터 10 만 년이 지난 다음에도 여전히 위험이 가시지 않았을 것인데, 후손들이 바로 그곳 아래에 핵폐기물 지하묘지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리느냐가 논쟁의 주제였습니다. 국가기록물 저장소에 디지털과 종이 문서로 남길 터이지만, 디지털 정보들은 500년 이상 못 가고 지워질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파이어 디스크에 기록해두면 상당히 오래간다는군요. 그래서 일단 디지털 기록은 사파이어 디스크에 기록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추천했습니다. 종이는 특수처리하면 더 오래 유지되지만, 디지털 기록물과 다르게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그 많은 문서가 10 만 년 후에도 접근이 용이하게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언어로 핵폐기물 정보를 기록하는 것이 좋을지 언어학자들에게 자문했는데, 지금은 사어가 된 라틴어나 고대 그리스어를 추천했다고 합니다. 이 두 가지 언어는 일상에서 사용되지 않지만, 학자들에게는 계속 전해져 해독 가능할 것이며, 이미 죽은 언어이기에 세월과 더불어 용례가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추천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말 ‘세수’의 원뜻은 분명 손을 씻는 것인데, 지금은 얼굴을 씻는다는 뜻으로 바뀌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기록된 문서에, ‘이 박스를 정리한 후 반드시 세수 할 것!’이라고 적어둔 지침이 있다고 합시다. 용례가 바뀌기 전에 박스를 발견하고 정리했다면 손만 씻을 것이고, 용례가 바뀐 한참 후에 박스를 옮긴 사람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이렇게 세월과 더불어 조치내용이 달라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 라틴어-불어-영어로 서류를 기록하기로 했다는군요. 그리고 그 지침에는 “절대 파보면 안된다!”는 등의 문구는 제외시킨다고 합니다. 도굴꾼들이 이런 문장을 본다면 보물이 있는 줄 알고 필사적으로 달려들 것이고, 학자들이 본다면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여 파볼 것이기 때문이랍니다. 참 재미있는 고민들을 창의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고민이면 소통에 대한 엄청난 연구입니다. 이런 기록과 관련하여 일본 이야기가 잠깐 나옵니다. 일본의 선조들은 쓰나미가 있을 때마다 어디까지 물이 들어왔는지를 비석에다 기록해두었다고 합니다. 고대에 만들어진 거석문화들도 무언가 우리 선조들이 후손들에게 이야기하려고 만들었는데, 우리가 그 속뜻을 모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기록을 남기는 정도로는 오랜 세월을 이기기 어렵다고 보고, 전문가들은 다른 조언도 했습니다. 핵폐기물 지하묘지가 들어설 동네 이름이 Bure 인데, 동네이름을 Bure-on-Atoms로 하자는 주장입니다. ‘원자들 위에 위치한 Bure’라는 뜻으로 동네이름을 늘리는 것입니다. 동네이름은 세월과 더불어 바뀌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10 만 년 후의 후손들도 핵폐기물 지하묘지의 존재를 어느 정도 추론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후손들을 깊이 생각하는 정책토론이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더 신기한 것은 이런 구차해 보이는 논의까지 진행되어도 프랑스에서는 반핵운동이 심각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독일에 쉽게 무너졌던 제2차 대전의 상흔이 아직 프랑스인들 마음에 남아있는 것이 하나의 이유이고, 제1차 석유파동으로 엄청난 타격을 받았던 경험이 다른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르는군요. 인간 심리는 사고를 대비함에서 외부적인 요인에 맡기지 않고 자신이 뭔가를 컨트롤하고 싶어합니다. 비록 확률적으로 더 위험하다고 해도 말입니다. 무슨말이냐고요?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는 열쇠를 가지고 다니면서 문단속을 항상 철저히 합니다. 하지만 확률적으로는 문을 안 잠가서 타인이 침입하기보다, 본인이 열쇠를 잃어버려서 자기 집에 못 들어간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휴대전화나 컴퓨터에도 비밀번호가 타인을 막는 방어역할보다, 내가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로그인을 못 한 경우가 훨씬 흔합니다. 이런 인간 심리가 사회심리로 발전하여 프랑스 원전정책에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유가가 오르지 않기를 바라거나, 평화가 저절로 유지되기를 바라기보다, 스스로 뭔가를 준비하려는 것입니다. 다행히 여태까지는 대과 없이 잘 유지되어온 것이 프랑스의 원진 기술이며 정책입니다. 국민과 정부 그리고 연구소와 기업들의 하모니는 이런 공감대에서 도출되었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는군요. 새해에도 역시 원전문제는 중요한 의제일 것인데, 합리적이고 투명한 결정을 기대해봅니다.
우리나라가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원자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르면, 현재 23기와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원자력발전소를 포함해 5~6기를 더 짓겠다고 합니다. 이대로 간다면 2035년 국내 원자력발전소는 41개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원자력을 줄이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월성과 고리 원전처럼 원전을 다닥다닥 짓게되면 하나가 문제가 생겼을때 연쇄적으로 큰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너무 많은 원자력 발전소는 반대합니다. 독일처럼 급하게 전체를 폐쇄하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늘리지는 말고 노후된 원자력발전소는 미루지 말고 폐쇄하여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합니다. 원자력발전소 관련 업무하시는 모든 과학기술자분들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을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화이팅~!
구체적인 논의들이 진행되어도 프랑스내 반핵운동이 잠잠함은 물론 폐기장이 설치될 지역의 인근 타국가들까지
가만히 있다니 님비현상이 너무도 심한 지금의 대한민국과는 아주 큰 차이를 보이군요 선진국들이! 무엇이 후손들을
위한 실질적인 일들을 해야 하는지를 저 자신도 확신은 없읍니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