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v.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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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뽑고 나니 갑자기 남녀가 데이트한다는 말의 ‘데이트’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지는군요. 그래서 시작부터 약간 옆으로 새야겠습니다. 데이트(date)는 날짜라는 단어가 동사로 쓰여 ‘날을 잡다’에서 온 것 같습니다. 만날 약속을 잡는다는 말이죠. 아마도 오래전 우리 관습처럼, 영국에서도 남녀가 누구의 소개로 서로 맞선을 보던 일에서 온 것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남녀문제에 있어 서양사회가 개방적인데 반해 동양사회가 아주 보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서양이 개방적으로 변한 것이 얼마 오래지 않습니다. 프랑스만 해도 여자에게 선거권이 부여된 것이 제2차대전 후였으니까요. 지금은 동거가 법적인 결혼으로 인정되고 동성결혼까지 허락되는 정도로까지 변했습니다. 개방이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점점 판단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억압에서 벗어난 다음에는 그 자유가 방종으로 이어지니까요. 요즘 세대 어쩌고 하면서 혀를 차는 것은 나이 들었다는 물증이니 피합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개인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는 것이 법적으로는 올바른 방향이겠습니다. 법만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은 철학이 책임져야 하는데, 종교까지도 돈만 좇느라 철학과 윤리가 설 자리는 너무 좁아 보이니 걱정입니다. 이쯤에서 본론으로 돌아가 봅시다.
컴퓨터 관련기기에서 몇 년 전만 해도 업그레이드라는 말이 많았습니다. 주로 하드웨어의 일정 부분을 바꾸는 것을 말했습니다. 요즈음 업그레이드는 줄었고, 대신 소프트웨어를 다시 장착하는 업데이트라는 말이 흔히 사용됩니다. 예측하지 못했던 컴퓨터 산업의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가구나 옷, 그릇을 구매한 후 업그레이드나 업데이트하라는 요청을 받을 일은 없습니다. 주방기기를 포함한 모든 전자기기와 심지어 자동차까지도 업그레이드나 업데이트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장 났을 시 고칠 뿐이고, 고치러 갔을 때 필요하다면 부장품을 하나 더 설치할 수는 있겠죠. 예를 들면 블랙박스 카메라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데 컴퓨터 주변의 신호기기들은 유독 업데이트를 요구합니다. 그것도 아주 자주 요구합니다.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살기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사람들이 너무 외국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중 하나가 업데이트입니다. 데이트도 생소한 말인데, 업데이트는 뭐냐는 것이죠. 아마도 엄청나게 좋은 조건의 이성과 데이트하는 것이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 말을 번역하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새롭게 하기’가 될까요? 인터넷을 찾아봐도 번역된 용어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소프트웨어라는 새로운 영역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인가요?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재래식 기술을 기준으로 단순-무식하게 본다면, 업데이트가 자주 있다는 말은 완성도가 낮은 상품을 미리 팔았다는 것입니다. 자동차로 비유해볼까요? 성능에 문제가 있거나 환경법이 바뀌어서 자동차 구매 후 다시 고쳐야 하는 것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면 공해배출량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법이 통과된 후, 배출되는 중금속량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필터를 장착하거나 아니면 아예 엔진을 새로 장착하는 것, 다른 연료를 사용하는 경우 등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환경법이 바뀌면 새로 출시되는 자동차부터 적용하게 됩니다. 헌법은 소급입법을 금지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컴퓨터 프로그램은 사용환경이 바뀌었거나 사용환경을 더 확장하기 위해, 그리고 버그를 고치기 위해 계속 업데이트를 요구합니다. 완성도가 충분하지 않은 제품을 판매하고는 고쳐주면서 이름을 ‘수리’가 아니라 업데이트라고 부르는 것이죠. 절망스러운 일은, 업데이트 후에 오히려 더 나빠진 경우도 많습니다. 버전에 세 네 개 올라가면 당연히 좋아지지만, 바로 위 버전은 기존 것보다 못한 적이 많습니다.
문제는 제품을 구매한 후에도 제작회사에 계속 의존해서 뭔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자동차 회사들이 자기네 직영 수리점에서 엔진오일을 교환해야만 보증기간 끝까지 보장할 수 있다는 점잖은 협박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업데이트의 빈도는 너무 잦고, 예전 버전을 계속 고집할 자유가 고객들에게 보장되지 않습니다.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업데이트 주기를 법으로 제한할 필요는 없을까요? 아니면 뭔가 다른 법적 장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금 사람들은 이런 트랜드를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상당히 많이 기만당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진보가 빠르다 보니 어쩔 수 없다구요? 빠른 속도 자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조건 앞으로 나가기보다는, 기존의 문화와 새로운 기술이 좀 더 조화되도록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소비자들만 기만당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 차이가 계속 더 벌어집니다. 젊은 세대들은 새로움을 쉽게 쫓고 기성세대들은 신기술에 늦거나 거부감이 크니까요. 좌우간 업데이트는 멋지거나 뛰어난(Up) 이성과의 데이트(Date)가 아니라, 우리 시대 새로운 기술의 업보에 가깝습니다.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하루라도 빨리 상품을 출시해야 하니까요. 이런 생태계 변화는 산업계 자체가 할 수 없습니다. 기술과 문화를 동시에 고민하는 NGO와 정부가 합력해서 답을 찾아봐야죠. 전 세계적으로 공감대가 있어야 하니까 상당히 어렵겠군요. 어쨌든 저는 한 번 구입한 기계나 프로그램의 성능에 하자가 없다면 상품수명 끝까지 업데이트를 안 하고 싶습니다.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면 일 년에 한 번 정도라면 동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생각은 어떤지요?
업데이트의 명목하에 툴바나 기본페이지 등록을 덤으로 설치하려는 시도도 하더라구요. 이제는 당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몇 번 당했어요. 업데이트할때는 체크박스를 유심히 봐야 합니다. 업데이트를 안하면 계속 업데이트 하라는 안내창이 떠서 어쩔수 없이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