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불평등-비진실 시대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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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터넷 신문 보기를 자제하고 있지만, 글을 쓰다보니 세상소식을 외면할 수 없어 가끔씩 들여다 봅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신문기사는 항상 비슷합니다. 위에서 제목으로 뽑은 두 개의 불(不)과 하나의 비(非)가 비벼진 비빔밥 같습니다. 언론들이 부추기는 면은 있지만, 현대 삶의 속성자체가 ‘불’과 ‘비’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이런 글까지 두려움을 조장해서 미안합니다만, 피할 수 없으니 같이 생각해봐야죠. 서론은 이 정도로 하고 어느 날 접해본 인터넷 신문 기사들 중 몇 개를 봅시다.
북한의 수중 미사일 발사시험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북한군 제2인자가 고사총이라는 것으로 처형되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며칠 후 첩보에 불과하다는 수정기사가 났습니다.) 국내소식으로는 정치자금 수사가 진행중입니다. 남의 돈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아내의 비자금에서 1억 넘는 돈을 수혈받았다고 하네요. 경제면에서는 청년실업이 처음으로 10%가 넘었다고 합니다. 최저임금 이하를 받으며 군생활하는 젊은이들까지 포함된다면 10%가 훨씬 넘겠지요. 그래도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성적이 양호한 편입니다. 부산에서 일가족이 자살한 사건도 보도되었습니다. 가족들을 목졸라 죽인 후 당사자는 투신한 것 같다고 합니다. 서울대학교 부속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 어깨에 계급장을 달아준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서울대 로고가 새겨진 견장을 단 어떤 학급회장의 어깨가 사진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도장 한 번 찍어주고 8천만원 받았다는 전법관 이야기도 실렸습니다. (견장 단 아이의 할아버지일까요? 일류대학 진학 조건중 하나라는 ‘할아버지의 재력’이 생각났습니다.) 연예가 뉴스로는 욘사마께서 조만간 결혼한다는 보도가 있었고, 저에게 생소한 연예인 누구는 9년 교제후 갈라섰다는 뉴스도 있네요. 예비군 훈련장의 어처구니 없고도 안타까운 사고소식도 몇 일간 지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제 외신으로 잠깐 가봅시다. 뉴욕에서는 네일가게의 임금착취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당국이 단속의 칼을 빼들었다고 합니다. 낮은 임금도 문제지만, 매일 아세톤을 코앞에 들이대고 일하는 환경이니 몇 년 후 건강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유럽에서는 북아프리카에서 출발한 보트피플들이 이태리 해안에 상륙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풍랑에 수장된 자들은 시체도 없고, 건너편에 상륙한 자들은 전쟁포로들처럼 울타리 안에 갇힌 사진을 보았습니다. 자유와 평화를 구현하려고 쫓아낸 가다피가 있을 때보다 리비아의 상태가 않좋은 것은 과도기적 문제일지, 아니면 지속될 지 모르겠습니다. 서방은 리비아 국민들 고통보다, 석유 드럼통 숫자에 더 관심이 있지 않을까요? 환상적인 소식도 있습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에 영감을 얻어 암스텔담 도시 전체의 밤을 파란색 빛으로 장식한 예술가 이야기가 있고,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는 피카소가 그린 ‘알제의 여인들’이라는 그림이 2억 달러 정도에 팔렸다고 합니다. 경매 최고가는 이 그림이 맞지만, 직거래까지 포함하면 고갱의 ‘언제 결혼할거니?’라는 그림이 3억달러의 팔려 최고라는군요. 백불짜리로 비타 박스 몇 개에 담아야 할 지 계산이 안됩니다.
위의 뉴스들을 분석해보면 뉴스는 모두 극단적인 경우들이 소개됩니다. 대부분은 민밋한 삶을 살지만, 뉴스 등장인물은 소위 뜨거나 가라앉는 상황속 주인공들입니다. 그래서 가장 빈번한 출연자는 정치인, 연예인 그리고 범죄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아주 혼란스럽습니다. 예전의 삶도 잘나가는 사람에게는 장미빛이었지만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고통이었는데, IT기술 때문에 우리가 너무 많이 알게 된 탓인지 아니면 삶이 정말 더 팍팍해진 것인지 판단을 못하겠습니다. 마치 예전에는 암에 적었지만 지금은 증가한 것인지, 아니면 예전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진단기술 덕에 암발생률이 높아진 것인지 헷갈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최소한 더 좋아졌다는 증거는 없는 것같습니다. 물리적인 배고픔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정치는 불안정하고 경제는 불평등한데, 과학기술은 천진난만하게도 희망찬 미래만 이야기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과학기술이 더 행복한 삶을 만든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과학기술자들은 열심히 노력했는데, 정치인들 경제학자들이 다 말아먹어서 세상이 이런 것인가요? 아마 그들에게 물어보면 자기들은 열심히 했는데, 과학기술이 너무 오버해서 세상이 더 복잡해지고 힘들어졌다고 말하지 않을까요?
최근에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철 지난 이야기를 해서 미안합니다만, 힘들게 살았던 덕수의 삶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봤더니, 그의 인생이 험한 팔자였는지 행복한 삶이었는지 혼동스러웠습니다. 비록 상황이 어렵지만 자신이 헤쳐나갈 수 있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세월은 기회마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고 젊은이들이 좌절합니다. 이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가 휴대폰과 자동차 많이 수출해서 4만불 시대로 성큼 올라서야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에 성찰을 더해서, 귀농을 돕고 적정기술을 개발하고 환경과 친화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개발해야 할 전환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듯 위협적으로 다가오는군요. 기존의 개발 패러다임을 탈피하고 우리 자신의 행복과 철학을 결합한 과학이 지금의 시대정신이 아니겠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정부에서 그런 주제로 프로젝트가 나와야만 지원해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서생들의 비웃음이 들리는 것같아 괜히 혼자 욕을 했습니다. 나자신을 향한 욕이기도 합니다만, 보고 배워서 익숙한 것들을 이제는 넘어서야 할 어려운 숙제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늦기 전에 깨닫고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자식들 시대에는 과도한 경쟁과 불안이 조금이나마 더 해소되고 진정한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세상을 만들어야지 않을까요? 우리의 과학기술이 그 도구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