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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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후 상황이 바뀌어 공약을 지키지 못한 정치인이 “정치는 생물이다”라는 말로 비난을 비켜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비겁한 행위입니다만, 사실 한참 전에 한 약속은 상황에 따라 안지키는 것이 더 타당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에는 거짓말을 안할 수 없는 딜레마가 있을 것 같습니다. 판단하고 비판하기는 쉽지만, 직접 실행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니까요. 정치인들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고, 저는 요즈음 정치뿐만 아니라, 많은 것이 생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상황은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정조준하고 있던 타겟은 슬며시 위치를 바꾸어 멀어진 경우는 아주 많습니다. 위치만 바뀐 것이 아니라 타겟이 커지거나 작아지기도 하고, 어떨 때는 위장막을 치고 숨어버리거나 아예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설정한 목표는 마치 생물처럼 자라거나 시들기도 하고, 죽었다가 차세대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변화를 겪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생물 같은 목표중에 지식도 포함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독자들 중에는 아마 왕년에 천재소리를 들었던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이 것 하나만큼은 자신있다!” 는 것 하나쯤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그런지요? 더 노력해서 그 분야에서 대가가 된 사람도 있겠지만, 이제는 모두 흘러간 왕년의 추억일뿐인 사람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제 경험을 간단히 이야기해봅니다. 대학졸업 후 첫직장에 다닐때 저는 영어단어를 엄청 열심히 외웠습니다. 혹시 유학을 가더라도 영어 부담만은 덜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자랑질 같아서 좀 민망합니다만, 그때 별명이 ‘걸어다니는 사전’이었습니다. (제가 쓴 영어 학습서도 몇 권 출판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어려운 단어들을 보면 가물가물 합니다. 제가 하는 전공분야에서도, 도저히 잊어버릴 수 없는 기초 수식들이 막상 노트에 쓰려면 오락가락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식은 돌에 새겨둔 영원한 문구들이 아니라, 반복하지 않으면 휘발하고 마는 향수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름하여 지식 생물설입니다. 지식도 생물처럼 생로병사의 싸이클을 겪는 것이죠. 처음으로 귀한 지식을 알게 될 때는 자식 귀한 집에 태어난 옥동자처럼 기쁨을 줍니다.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던 ‘지식 옥동자’는 크게 자라서 부모의 든든한 자부심이 되지만, 계속 잘 키우지 않으면 병들고 결국 조로해집니다. 지식 노쇠의 증거는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입니다. 늘 붙들고 고민할 때는 누가 물으면 바로 핵심을 찌르는 답변을 합니다. 마치 질문을 기다렸던 것처럼 신속하고도 절제된 언어로 대답합니다. 아니, 훌륭한 질문이 대견하다고 상대를 오히려 칭찬해줄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그러나 지식이 병들고 노쇄해지면, 대답이 복잡해집니다. 당연히 나는 잘 아는데, 듣는 당신 머리가 나빠서 이해를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자신도 긴가민가 헷갈리고 있습니다. 길어지는 답변은 핵심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료 저장 장애가 있습니다. 요즈음은 조금 증세가 완화되었습니다만, 한 때는 복사기 옆에 아예 살다시피 했습니다. 수많은 자료의 지식이 전부 본인의 것인양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읽지 않은 자료는 베개로 베고 자도 전혀 머리로 이관되지 않음에도, 언젠가 보겠지 하는 마음만으로 뿌듯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많던 자료는 이제 손가락 하나만한 USB 칩에 다 들어갔습니다만, 여전히 공부해야 할 분량이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요즘처럼 기술의 진보가 빠른 세상에서는 고급제품을 구입해도 3년만 지나면 구식으로 전락합니다. 그래서 제품의 빠른 템포만큼이나 지식도 업데이트 되어야죠. 지식의 기본은 항상 동일할 것입니다. 기본적인 물리방정식들이 바뀔리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에 적용하면 해석은 항상 새로워집니다. 그래서 노쇄한 생물처럼 이미 낡은 지식이 죽고나면, 그 지식을 바탕으로 다음 세대의 지식이 태어납니다. 그런데 지식을 자연사 박물관의 박제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왕년에 한 번 열심히 해서 기초가 마련된 지식은 영원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산다면, 결국 자신의 지식세계는 몇 개의 소장품만 지닌 확장되지 않는박물관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안중근 의사께서 붓글씨로 남긴,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서 가시가 돋는다.”는 구절을 생각해보면 이 문구 역시 ‘지식 생물론’에 연결됩니다. 지식은 그 자체가 바위처럼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생물처럼 자라고 병들고 죽은 후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병든다는 말은 아마도 새로운 지식이 추앙받다가 그 약점이 노출되어 수정되는 과정이겠죠. 마치 뉴턴의 운동방정식이 아인슈타인에 의해 보완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싸이클을 통해 신지식이 다시 태어납니다.
지식이 꾸준히 업데이트되지 않으면, 많은 지식이 오히려 머리를 딱딱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항상 이전 세대는 “요즘 애들은 왜 이 모양이냐?”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익숙한 것으로만 세상을 판단하려니 많은 지식이 오히려 생각의 유연성을 해합니다. 정작 지성이 추구하는 덕목은 유연한 사고인데 말입니다. 더 이상 거창한 논의를 할 필요 없이, 왕년에 가졌던 보검을 꺼내서 다시 잘 갈아보는 것이 어떨까요? 지식의 날을 세우는 과정에서 젊은 시절의 낭만도 함께 살아나지 않을까요? 입시지옥을 탈출한 기성세대에게도 여전히 공부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공감가는 내용입니다.
지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