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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팩이 무거운 게으름뱅이들에게

먼저, 제목을 예의 없게 붙여서 송구합니다. 요즘 글들이 너무 품위를 상실해서 탈이지만, 지나치게 폼잡는 글들을 읽고는 시원함 대신 답답함을 느꼈던 경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솔직담백한 구어체로 써봤습니다. Disclaimer는 이 정도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자주 떠올리는 속담이 “게으른 놈, 짐 많이 진다”는 것입니다. 주변의 서양 동료들에게 설명해주었더니, 아주 재미있어 하더군요. 애들에게도 가끔 잔소리를 애둘러 이 속담으로 대신할 때가 있습니다. 이 속담은 참 역설적입니다. 게으른데 오히려 짐을 많이 지다니요? 밀렸던 일이나 공부를 한 방에 끝내고 싶은 것이죠. 그래서 자기 키보다 더 높게 짐을 쌓은 지게를 지고 다리를 후둘거리면서 언덕을 넘다가, 급기야 짐을 엎어버리게 됩니다. 자신은 넘어져 허리를 다치고 앓아누운 시간동안 일이 더 쌓이는, 오기의 악순환 말입니다. 직장인이라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개인사업 하는 사람이라면 다친 허리 때문에 누워지내는 동안 고객들이 떠나버려서 일이 아예 없어지겠죠. 그런데 이 속담을 늘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남들 인생에 적용해보려 애썼는데, 정작 나에게 가장 맞는 말이라는 것을 최근에야 느꼈습니다. 오호! 통재라! 애재라! 이 일을 어찌할꼬?

석고대죄까지는 아니고 잠시 고해성사를 한다면, 저는 아주 늦게 잡니다. 왜냐구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요. 그리고 할 일이 너무 많아서요. 그런데 무슨 일이 그렇게 많냐구요? 잘 할 수 있는 일만 선택해서 집중해야 하는데, 온갖 일을 다 참견하려니 늘 바쁩니다. 시간은 왜 아깝냐구요? 낮시간을 많이 낭비했으니까요. 대부분 시덥잖은 이메일에 답장도 해야죠, 이리저리 걸린 SNS에 최소한의 반응은 보여야죠. 그리고 사무실로 찾아온 사람들에게 예의도 갖추어야죠. 다음에 또 커피방문을 Home and away방식으로 하기로 약속하고… 그러니 시간이 늘 모자라고 아깝습니다. 그래도 하루분량의 공부와 일은 그날 그날 다 해야 한다는 신념은 충만한지라, 잠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여 수면시간을 가불받는 것입니다. 그리고도 그 다음날 거뜬하게 일어나지냐구요? 그럴리가 있나요? 남들은 나이들어가면서 잠이 준다는데, 저는 점점 더 느는 것 같습니다. 아직 뇌세포가 너무 젊은 탓이라는 긍정적 진단을 스스로에게 내려주었습니다. 잠이 밀리니 주말에는 푹 자야죠. 늦게 일어납니다. 직업이 늘 앉아있는 일이니 주말에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나가서 몇 시간을 보내면 금방 저녁입니다. 그렇게 보내는 주말 이틀은 겨우 평일 반나절처럼 가버립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부시시한 얼굴로, 그리고 상당히 방어적인 정신자세로 출근합니다. 에너지 넘치는 걸음으로, 그리고 적극적인 마음으로 시작해야 할 월요일의 근무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고 퇴근시간까지 시계는 너무 천천히 돌아요. 배터리를 바꾼 지도 얼마 안되었는데, 시계가 섰나?... 휴대전화의 정확한 디지털 시계로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여기까지의 고해성사가 정말 정확하게 사실이냐고 묻는다면, “확인해줄 수 없습니다!”라는 외교적 답변으로 대신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생활도 혹시 비슷한 것은 아니죠? 꼭 답변하실 필요는 없구요… 기성세대들은 정말 행운아였습니다. 자유와 개성이 충분하게 용납되지 않던 억압적 시대를 거쳐왔지만, 정치든 경제든 뒷걸음 친 적 없이 계속 전진하는 선두행렬에 섰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과정을 통해서 너무 허파에 바람이 많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차분하지가 않아요. 비현실적 욕망을 꿈꾸고, 드라마가 그 꿈을 자극하고, 그래서 과다한 꿈과 비교해서 현실은 더욱 누추해지는 악순환이 보입니다. “당신만 본 헛 것을 실체라고 우기지 맙시다!”라고 주장하면 할 말 없구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오히려 멀리 보는 것이며, 현실에 충실한 것이 꿈꾸는 것보다 오히려 미래적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무모한 도전을 절제하고 짐을 자기 힘에 맞게 지는 것이 성실한 사람의 자세라는 속담처럼 말입니다. 생각해보니, Rome was not built in a day 라는 경구나 Step by step goes a long way라는 서양 속담이 다 짐꾼 속담과 동일한 뜻이네요. 진리는 지역과 인종, 종교와 문화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위의 두번 째 영어속담은, ‘한걸음 한걸음이 결국 멀리 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속담의 ‘천리길도 한걸음부터’와 비슷하죠? 우리 속담은 출발을 강조한 것인데, 살짝 바꾸어서 ‘천리길도 한걸음 씩’으로 바꾸어보면 완벽하게 같아집니다. 이 속담에 미분과 적분 개념이 다 들어있는 것 보이시죠? 이미 정월은 가버렸으니, 봄이 오기 전에 가던 길을 부지런히 그리고 아주 행복한 마음으로 걸어보면 어떨까요? 누워서 꿈으로 천리를 가는 몽상은 접구요. 눈 떠 보니, 천리는 고사하고 한 치도 못나갔으면 우울해지니까요. 모두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Let’s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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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박사 지난 주 유럽출장 중에 만나지는 못했지만 돌아오는 2.26 오후에 벨기에에서 통화로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서 좋았소. 가끔씩 거의 30년 전의 젊은 날의 추억을 떠올린다오. 구글 검색을 통해 이 사이트를 예전에 잠깐 알았는데, 지금 다시 찾아 댓글을 남기오. 비록 문돌이고 인문분야에서도 전 박사의 내공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 나도 은퇴를 앞둔 지금 2막을 준비하고자 여러 생각이 교차하오. 올해도 건승하시고 좋은 글 많이 쓰시고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