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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계의 역사적 사기-사고 사건들

요즘 북한 미사일 문제와 중력파 발견이 이슈입니다. 중력파 발견에 한국과학자들의 기여가 지대했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그 우수한 과학자들을 데리고도 아직 자주국방이 어려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요? 그리고 뜨거운 관심으로 그들의 노이즈 마켓팅에 적극 동참해 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대북정책이 당근과 채찍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동안, 북한은 아주 일관되게 움직였다는 점에서 반성이 필요합니다. 민주정치는 짧은 정권 수명때문에 갈지자 행보가 되기 쉽습니다. 국가안보와 장기발전계획은 독립적으로 수행해야 하지만, 어느쪽이 정권을 잡아도 잘 안되는군요.

이제 우리가 잊어버린 재미있는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과학기술분야에서는Front Runner, Leading-Edge등 앞서가려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니, ‘온고이지신’ 같은 말은 구닥다리 취급을 받습니다. 과거란 무지와 동치되기 쉽습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역사는 반복됩니다. 똑같지 않아서 그 반복을 알아차리기 어렵기 때문에, 과학기술에서도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치 연속극 시작 전에 질질 끄는 광고같아서 미안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최근에 있었던 희대의 과학기술 사기사건들을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너무 최근은 아니고, 또 몇 사람이 아니라 온 세계가 속았던 일들 중 세가지를 기억해보았습니다.

첫번째는 2000년에 도래한다고 했던 컴퓨터 재앙입니다. 아래에 1998년 ‘한겨레 21 (과학과 지성)’에 실렸던 기사를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2000년 컴퓨터 내부에서는 1999년 다음이 2000년이 아니라 0년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연도인식의 오류로 인해 날짜계산을 하지 못해 상상을 뛰어넘는 혼란을 야기할 것이며 경제주체 상호간의 연도표시 정보에 관한 약속이 어긋나 데이터통신망도 무용지물이 될 판국이다. 이런 우려는 오래 전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되었으며 미국의 가트너그룹은 전세계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드는 비용만 5천억달러에서 최고 1조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작업은 새로운 업무를 창출하는 것도 아니며 기획성 프로젝트도 아닌 관계로 담당책임자들은 막대한 비용과 인력의 투입을 선뜻 상부에 건의하지 못하는 어려움도 따른다.”
이제 이 문제 기억나시죠?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아시나요? 저는 2000년 1월 1일 오후에 겸연쩍게 지인들과 인사를 나눈 기억이 있습니다. 컴퓨터 정보교란으로 미국과 구소련의 핵무기들이 날아다닐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으니까, 살아있다는 것이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두번째 사건은 HD TV입니다. 고화질 TV가 실현되면 엄청난 변화가 예상된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있었습니다. 과거 흑백 TV가 컬러로 바뀌면서 패션이나 화장품 같은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이제 HD가 되면 이보다 훨씬 큰 변화가 온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앞으로 영화산업은 망할 것이라고 했지만, 천만관객 돌파 영화들은 HD TV가 나온 후입니다. 그러다가 HD TV도 디지털 방식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많이 달라진 것은 없었고, 채널수가 엄청 늘었다는 것, 그래서 홈쇼핑이라는 새산업으로 우리 지갑이 너무 쉽게 열린다는 것, 땀구멍까지 보이는 선명도 때문에 연예계에서 시작된 성형수술이 일반화되었다는 것 정도입니다. TV와 컴퓨터와의 경계가 점점 섞이고 있다는 것도 변화입니다만, 하드웨어가 어느 정도 개발된 후에는 컨텐츠가 중요합니다. 그동안 한국 TV는 드라마에서 놀라운 발전을 보이며 한류라는 국제적 신문화조류를 견인했습니다만, 전국민이 십 년 넘게 연속극 앞에 마주앉으면 너무 몰개성, 몰현실 사회가 되지는 않을까요?

세번째는 인터넷입니다. 다른 것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인터넷이 활발해지면 재택근무가 늘어나 교통체증이 해소되고, 도시인구가 줄어 부동산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하지만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인터넷으로 일하는 직업은 거의 없고, 도시는 세월이 갈수록 더 북적대고 중심지 아파트 값은 내려올 줄 모릅니다. 왜 이럴까요?
근본적으로 인간은 외로움이 두렵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약할 때는 외로움이 두렵고 강할 때는 자랑하고 싶습니다. 감정상태가 어느 쪽이든지, 인간은 인간을 통해 상처도 받고 치료도 받는 존재, 동질성을 더 사랑하게 되는 태생적 기호를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남극으로 향했던 영국탐험가 스코트(Scott 1868-1912)도 남극의 펭귄과 눈보라가 좋았던 것이 아니라, 그 업적으로 받게 될 명예가 더 좋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문센(Amundsen; 1872-1928) 이 남극에 먼저 도착해서 꽂은 노르웨이 깃발이 눈보라만큼이나 돌아오는 길의 그를 괴롭혔고, 결국 팀원 전체가 남극에서 최후를 맞습니다.

이야기를 이제 정리해야 하는데 너무 멀리 왔군요. 최근에 로봇 기술에 대한 기사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노인들을 간호하는 로봇에게 사별한 배우자의 목소리를 심어서…’ 어쩌고 하는 대목까지 읽고는 소름이 끼쳤습니다. 죽은 사람을 보내지 못해 몇 년간 사체를 집에 보관했다는 괴담같은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슬프지만 이별이 오면 받아들여야 하고, 지난 것은 잊어야 하는 것, 그럼에도 아픈 역사로부터는 배워야 하는 것 등등은 우리 인간을 구성하는 관념체계의 중추입니다. 결국 인문학과 과학이 너무 멀리 떨어져 소 닭보듯 하면서 건설된 현대 문명의 한계때문에 정확한 인식인 과학과 유용한 기구인 기술이 엉뚱한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게다가 언론은 과학기술을 모르니 핵심을 못짚어 여론을 표류하게 하고, 정치는 과학기술 성과를 정권의 업적으로 포장하려는 것이 현시대입니다. 이 코너의 제목처럼 과학기술과 인문학 그리고 정책이 같이 다루어지는 르네상스적 지성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과학기술이라는 칼이 더 날카로워질수록, 휘두르는 검술사와 후견인 그리고 관객들의 더 높은 인식수준과 윤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나저나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바둑대결이 봄소식만큼이나 궁금합니다. 다음 달에는 여기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을런지, 아니면 싱겁게 끝날런지 필자도 감이 안오는군요. 하지만 괜한 불안감이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인간 편이기 때문입니다. 고국과 전세계 코세니아들간에, 봄꽃 소식이 자주 오가는 희망찬 3월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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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라는 칼이 더 날카로워질수록, 휘두르는 검술사와 후견인 그리고 관객들의 더 높은 인식수준과 윤리가 필요한 것이라는 박사님 의견에 무척 공감합니다. 스마트워크가 실현되지 않는 이유는 인간의 근본적인 외로움과 더불어 결여된 윤리의식(믿지못해 감시해야만하는, 혹은 속이려 드는)에서 오는 신뢰감 상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드디어 바둑대결의 첫 시합이네요~:-) 이세돌 9단 화이팅!

방금 알파고가 이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씁슬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앞서네요..

알파고가 2연승! 매우 충격적이고 많은 생각을 하겠끔 판을 벌이고 있습니다.이러한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공지능과 로봇의 융합은 갈수록 매마른 인성의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매우 궁금하고도 슬픈 생각이 많이들게하는 요즈음의 과학계입니다. 하지만 저는 인간 편이라는 말씀에 위안을 받습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