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첼리와 실험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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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실험으로 입증되어야 진실입니다. 요즘은 지천에 널린 컴퓨터로 뭔가를 해서 화려한색깔을 입힌 무수한 ‘데이터’들이 쏟아지지만, 자세히 보면 무슨무슨 조건을 깨알 같은 글씨로 달아서 응용을 제한해두었거나, 충분히 잘 이해하지 못하고 남의 연구를 가져다가 그 위에 덧칠한 경우도 흔합니다. 필자는 직업이 시뮬레이션이라 몇 십년째 컴퓨터로 계산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입력에 대응하는 결과를 살피는 일인데, 사람들은 결과에만 집중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고 입력조건을 좀 비틀어주길 은근히 바라기도 합니다. 실제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참고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계시인냥 액면 그대로 무작정 믿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멍청한 사람들이 아니기에 이유가 궁금했는데, 정치적 명분이 필요한 경우가 많더군요. 전문가가 수행한 시뮬레이션이라는 말로 본인은 정당성을 확보하고, 만약 틀리면 전문가 탓이니 안전하니까요. 시뮬레이션은 실험을 위한 가지치기입니다. 무한대의 변수를 줄이고 어느 것이 더 예민한 요소인지를 이해하고 집중하는 것입니다. 정성적인 분석으로는 가치가 있지만, 정량적인 값이 나오면 오차와 조건을 다시 한 번 따져보고 확률적 판단을 해야죠. 바쁜 세상이니 이런 과정들은 생략되고 무조건 Go! 하다가 다시 하는 방식이 일상입니다. 그리고 되돌아온 책임도 일정부분 공유해야 합니다. 내가 잘 설득하지 못했고 좀 더 목소리를 키우지 못한 탓이니까요. 핑계 대지 말고 더 내공을 다져야죠. 그래서 결론은 항상 고해성사처럼 Mea Culpa! (내 탓입니다!)입니다.
직업병 넉두리는 그 정도로 하고 본론으로 가 봅시다. 연구현장에서 그리고 대학에서 실험이 줄어드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입니다. ‘과학은 생각이다!’ 와 쌍벽을 이루어야 할 모토가 ‘과학은 실험이다!’입니다. 그래서 과학정신은 곧바로 실험정신입니다. 합리론과 경험론의 변증법적 통일이 과학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역사상 어떤 실험이 가장 훌륭한 실험이라고 생각하나요? 갈릴레이의 낙하실험은 실제로 없었다고 하니 빼구요. 저는 우리가 잘 아는 과학사에서의 3가지 실험을 꼽고 싶습니다. 1800년 나폴레옹 앞에서 행했다는 볼타 전지 실험은 인류에게 태양 이외의 다른 빛이 생길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1851년 푸코가 파리의 팡테옹에서 진자 하나로 지구 자전을 증명한 실험도 위대합니다. 씨름판처럼 생긴 모래 위에 진자가 계속 돌면서 선을 긋는 광경은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진자의 주기 32시간으로 파리가 북위 48.5도에 위치한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이전에 토리첼리가 한 진공실험에 더 매력이 갑니다.
토리첼리는 갈릴레이의 제자였다고 합니다. 진공실험은 스승이 돌아가신 지 얼마 후인 1643년에 있었다고 하니 푸코보다 200년 이상 앞섭니다. 당시에 벌써 펌프질로 물을 10미터 이상 길어올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군요. 그 이유가 대기압 때문이라는 것을 토리첼리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펌프로 연결된 관 속의 공기를 뽑아내면 바깥의 대기압이 관 안의 물을 밀어올리는 원리가 펌프입니다. 절묘한 것은 10미터의 관을 실험에 사용할 수 없으니, 비중이 13배나 높은 수은으로 높이를 획기적으로 줄인 것입니다. 길이 1미터의 가느다란 유리관을 수은에 담궜다가 거꾸로 살짝 들어올려 수직으로 세우니 유리관 속의 수은이 서서히 내려가다가 금방 멈춥니다. 그리고 수은 760 mm 높이가 바로 물 10미터에 해당된다며 설명을 했겠죠. 그런데 그 당시 어디서 그렇게 많은 수은을 모았을까요? 그는 40세를 못채우고 타계합니다. 그래서 수은 중독이 죽음의 원인이 아닌지 추측해봅니다. 토리첼리의 실험 후에 진공 논쟁이 많았다고 합니다. 수은 기둥 위 유리관 내부 40mm부분은 진공이라는 토리첼리의 설명에 맞서 논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지구상 어디에도 완벽한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을 때였다고 하니, 완벽한 진공이 너무 허무하고도 쉽게 만들어진 것을 믿을 수 없었겠죠.
토리첼리의 실험은 너무 간단하고도 완벽합니다. 군더더기가 없고, 크기도 적당해서 오해나 오차가 끼어들 틈이 없고 이해도 쉽습니다. (인체의 반정도 크기는 아주 적당합니다. 책상주변에 모여서 설명듣기 좋을만큼 아담하고, 뒤에 있는 사람은 못볼 정도로 너무 작지도 않고… ) 거기에 비교해보면 요즘 우리가 하는 일이나 실험은 너무 복잡하다는 생각입니다. 혹시 핵심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닌지요? 적극적으로 알리기 보다 면피용이다 보니 간단하게 구성하기가 두려운 것은 아닌지요? 아니면 욕심스럽게 너무 많이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닌지요? 물론, 토리첼리가 살던 시대에 비할 수 없이 현대과학이 복잡해진 것이 원인일 것입니다. 하지만 복잡함이 요구될수록, 거품을 걷어내고 핵심이 분명한 실험정신을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느껴지는 과학, 만져지는 과학, 그래서 더 재미있고 분명한 과학을 위해서 말입니다.
연구데이터는 실험의 산물입니다. 연구결과는 재현성이 있어야 합니다. 실험과정에서 입력은 연구결과와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과를 정해놓고 입력을 조작하여 연구가 성공했다고 포장하면 재현성을 상실하게됩니다. 창조경제라는 이름으로 성과만을 강조하는 이들의 입맛에 맞추려면 재현성이 없어도 기술이전하여 사업화하는 일이 많습니다. 실험정신과 도전정신을 갖출 수있는 문화를 조성해야 할 시점입니다. 말콤발드리지와 같은 장관이 한국에는 왜 나오지 않는 걸까요?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시뮬레이션과 수많은 실험을 할 생각을 하니 답답한 마음에 본질을 볼 줄 아는 생각을 가지라는 좋은 조언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