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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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은 정치의 시녀일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럽대륙에서는 로마제국이 몰락한 이후 국가형태가 모호했지만, 17세기에 들어오면서 스페인과 영국, 프랑스 등으로 나뉘어 강력한 단일국가들이 형성되었습니다. 독일은 후발주자였지만 더욱 강력한 제국을 건설합니다. 그런데 국가와 과학기술이 연결되면 자연스럽게 무기산업이 커집니다. 그래서 정부는 적국의 군사능력을 과대선전하여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애국심 넘치는 과학기술자들은 고성능 무기개발에 총력을 다합니다. 세계대전 두번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한참 후 냉전이 끝나갈 때, 미국과 소련이 보유한 전체 핵무기 숫자는 지구전체를 몇 번 파괴하고도 남을 분량이었습니다. 하지만 세계대전을 체험한 강대국들은 자기들 끼리의 극단적 대결은 일단 피했습니다. 냉전 이후에도 아랍과 아프리카에서 국지적 충돌은 그치지 않았지만, 전 세계가 둘로 나뉘어 싸우는 대전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든 우리는 침략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은 내려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 가능성은 현실입니다. 모든 국가가 전부 상식을 가진 정부를 가진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 복잡한 와중에 다행하게도 한반도는 휴전상태로 반세기를 넘겼지만, 전면전은 없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이 최소한의 양식을 보여준 덕이고, 우리가 그들의 이익계산에 변수가 될만큼 자력을 키운 덕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국제정세는 마치 제2차 대전 직전, 히틀러 시절로 돌아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영국의 브렉시트 그리고 프랑스에서 극우정당의 약진 같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도 일본은 중국과 북한을 핑계로 군사력을 키우고, 중국은 동북아 맹주로서의 위엄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작금의 대한민국 정세는 감히 평하기도 머쓱합니다. 내부문제로 바깥 변화에 속수무책이니 나중에는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간주될 확률이 큽니다.
최근의 국제정세는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에 따른 저소득층들의 반란입니다. (요즘 너무 “~같습니다” 체가 만연하여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표현이 단정적이어도 개인의견일 뿐입니다.) 미국대선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이런 결과를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우리는 세계화가 진전되어 종국에는 여행비자나 취업비자가 사라지는 세상을 꿈꿔왔습니다. 그렇게 종착역에 거의 다 이르렀는데, 갑자기 기차는 기관실에서 요란한 기계소리를 내며 멈춰버렸고, 이제는 역주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추해보면 세계화는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켰습니다. 공정한 기회가 더 많아지면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 돈이 많은 사람 그리고 외국어에 능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부여됩니다. 아웃소싱으로 외국의 저렴한 노동력을 쉽게 살 수 있으니, 저학력자들은 협상테이블에 앉아보지도 못한 채 해고통보를 받습니다. 그래서 그런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들, 즉 최소 생계보장이나 교육비 지원 등 소외된 사람들과 그 자녀들에게 좀 더 진입장벽을 낮춰주어야 공정한 경쟁이 가능합니다. 입만 열면 약자의 편에 선다고 떠드는 언론도 드라마틱한 비리 고발에나 예민할 뿐, 소외계층 문제는 슬쩍 넘깁니다. 왜냐하면 언론도 기득권층이니까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입니다. 우리는 항상 그 사실은 총론으로 인정하면서도 아직은 내리막이 아니라는, 그러니까 각론에서는 다른 믿음을 가집니다. 그래서 증권을 어깨높이 가격까지 왔을 때 못 팔고 정수리에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망하는 어리석은 투자자들의 행태를 역사도 반복하고 있습니다. 내리막 경사에서 방향과 속도조절에 실패한 탓에 로마도 망했고 미국도 저물고 있습니다. 이제는 특정국가가 아닌 디지털 문명 전체가 붕괴할 지 모릅니다. 세계는 지금 하나로 물려서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결국 이 모든 것이 돈문제입니다. 황태자 암살 사건이 도화선이 되었다는 제1차 세계대전의 실제 원인은 상당히 복잡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학설은 영국과 프랑스에게 해외 식민지를 선점 당한 독일의 소외감과 위기의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제2차대전은 제1차대전 전쟁피해보상금을 갚지 못한 독일의 판깨기 전략도 중요한 원인이었습니다. 그후에 시작된 냉전은 돈이 아닌 ‘순수한 이데올로기 경쟁’이어서 큰 전쟁없이 기간을 넘겼습니다. 즉, 돈만 안걸리면 큰 전쟁은 안터진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걸프전이나 아프리카의 국지전들도 석유와 다이아몬드에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자주 보도되었습니다. 그렇게 쉽게 빨대로 빨아들이기만 하여 돈을 번 나라들도 내부적으로는 빈부격차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유한 자신들의 조국이 동시에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저소득 백인들의 반란이 미국-영국의 선거결과였습니다. 이제 투표권을 가진 저소득층의 반란은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 진도 10의 지진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일자리를 잃었거나 위기를 느끼는 사람들의 분노를 듣고 어떻게든 해결해주지 않으면 발전은 고사하고 평화가 위협받을 것입니다.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야 돈이 신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터져서 총알이 날아다니면, 지갑의 금장 크레딧 카드는 가을 낙엽 한 장보다 못하고, 도시의 오만한 고층 아파트는 대포의 표적이 될 뿐입니다.
그래서 최근에 나온 담론인, 로봇에게도 세금을 물리자는 의견이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론 안심이 되었습니다. 로봇이 낸 세금으로 로봇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정부가 아닌 과학기술관련 경영인들에게서 나온 것도 다행입니다. 정치의 시녀로서의 역할만 충실해서야 어찌 온전한 과학기술인이겠습니까? 능력고하를 막론하고,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최소한의 삶은 누리게 해줘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당사자의 게으름을 묻지 말고 말입니다. 게을러서 겨우 밥만 축낸다면 다행이지만, 나쁜 방향으로 부지런해서 범죄에 열심이라면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늘어나겠습니까?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평화입니다. 그래야 법치도 가능하고 경쟁도 보장됩니다. 너무 오랫동안 평화로운 시절에 살아와서 그 의미를 잊고 있는 시대입니다. 복지라는 말만 꺼내면 공산주의라고 입에 거품무는 사람들이 많아서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최소한의 복지정책은 국가 내부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평화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하고도 경제적인 방법이라는 주장을 해봅니다. 그래서 과학기술의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인’ 목적도 강력한 살상무기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튼튼하게 평화를 구축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든 로봇이 결국 사람을 벼랑으로 내모는 살상용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꽃 소식과 평화의 소식이 전해지는 3월을 바라며…
지구촌 곳곳에서 꽃 소식과 평화의 소식이 전해지는 3월을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