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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변천사

이번 달은 좀 생뚱맞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공계 남자 10명 중 8명은 쓰고 있는 안경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성들 중에는 콘텍트렌즈를 하는 사람도 많고, 점점 레이저 수술을 한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가방끈 긴 집단이 모이는 자리에 가면 안경 쓴 사람들이 최소 절반은 되어 보이더군요. 저도 안경잡이입니다. 중학교 때부터 눈이 잘 안보였는데, 괜히 폼내려 한다고 오해하신 어머니를 설득하는데 몇 년이 걸려 고등학교 다니면서 안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바다에서 수영하다가 파도 한 방에 영원히 이별하게 된 안경도 있고, 축구하면서 헤딩 한 방에 두 동강난 채 날아간 안경, 캠핑 가서 자다가 깔아 죽인 안경도 있습니다. 여름이면 콧잔등에서 땀을 타고 흘러내리고, 겨울에 실내에 들어서면 김이 앞을 가려 넘어질 뻔 했던 다양한 경험을 대부분 가지고 계시죠? 그래도 눈에 뭐가 튀어 들어가는 직격탄을 맞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이 안경이랍니다.

 

렌즈는 상당히 일찍 개발된 것 같습니다. 아마도 피륙이나 종이 위에 떨어진 물방울을 통해 보이는 글씨가 상당히 커지는 것을 관찰한 후 처음으로 렌즈를 이해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투명한 물질이어도 공기와 밀도가 다르고 테두리 형태가 곡선이면 빛의 경로에 뭔가 변화가 생긴다는 감을 잡았겠죠.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는 렌즈 깎는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고 하고, 동일 세기를 살았던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개발했으니, 당연히 안경은 그 훨씬 이전에 나왔겠죠?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13세기경에 이태리에서 안경이 처음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과거 한국에 이태리 안경원이라는 상호가 많았는데, 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안경이 전해진 것도 상당히 오래되어, 1800년에 승하하신 정조임금님도 안경을 사용했다고 하는군요. 콘텍트렌즈 역시 안경에 못지 않은 긴 역사를 가졌지만, 미국 회사 Bausch and Lomb가 FDA에서 최초로 친수성 렌즈를 승인받은 1970년경에 비로소 대중화되었다고 인터넷에서 알려주네요.

 

최근 한국대선이 끝나고 새 대통령의 옛날 사진이 소개되면서 테가 엄청 큰 당시의 안경을 접하고는 잠시 추억에 젖었습니다. 민주화 운동의 불을 당긴 박종철 열사 영정사진 속의, 얼굴 반을 가렸던 큰 안경테도 기억납니다. 당시 젊은이들은 전부 큰 플라스틱테의 안경을 썼고, 아저씨들은 금테 안경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안경테가 전부 금속으로 바뀌면서 플라스틱테는 선글라스용으로만 남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선글라스에는 플라스틱테가 많아요. 좀 더 색깔 디자인을 많이 다룰 수 있어서인지,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랬던 안경테가 언젠가는 전부 무테로 갔던 것 기억하시는지요? 당시에는 테두리 있는 안경쓰는 사람은 촌놈이었습니다. (무테 안경은 렌즈의 바깥이 두꺼워지는 근시교정 안경에만 적합합니다. 바깥이 얇아지는 원시렌즈는 테두리에 홈을 내어 ‘낚시줄’로 동여 매기가 어려워요.) 저도 역시 유행을 따라 뒤늦게 무테 안경을 써 봤습니다. 결론은 테가 너무 약하고 또 반짝이게 깎아 둔 가장자리에서 빛이 반사되어 독서할 때 상당히 성가시더군요. 아마 다른 안경족들의 경험도 동일했는지, 이내 사라져 지금은 거의 흔적기관 정도로 후퇴했습니다. 그 뒤를 잠시 이어오던 디자인은 반테 안경이었습니다. 위 반쪽만 테가 있고 아래는 무테인 안경 말입니다. 이 역시 사라지고 있습니다. 아래 테두리의 눈부심 현상도 무테와 비슷한데다 좀 나이들어 보이는 것이 아마도 유행에서 밀린 이유가 아닐까요? 지금 새로운 스타일은 짙은 색에 동그란 테입니다. 중간에 금속이 들어가고 바깥에 플라스틱이 붙여져 형태가 강하면서도 완전 금속테보다는 따뜻해 보이는 ‘융합형 안경’입니다. 좀 더 젊어보이더군요.

 

말이 나온 김에 선글라스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요? 우리나라에서는 ‘라이방’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미국 브랜드 Ray-ban에서 온 것은 다 아시죠? 상표의 뜻이 ‘광선 차단(금지)’인 이 브랜드는 위에 나온 콘택트렌즈와 인공눈물로 유명한 미국 회사 Bausch and Lomb가 만들었다는데, 지금은 이태리 회사에 브랜드를 팔았다고 하는군요. 선글라스는 몇 천원부터 시작해서 몇 백만원대까지 가격이 엄청 다양한데, 품질은 거의 비슷한 것 같아서 항상 좀 놀라게 하는 품목입니다. 미국사람들은 남녀노소 모두 야구모자를 즐겨 씁니다. 그래서 선글라스를 유럽보다는 덜 사용합니다. 유럽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모자를 잘 안씁니다. 아마도 헤어 스타일에 돈을 많이 들이니 머리가 구겨질까봐 그런 것 같습니다. 모자는 실내에서 벗어야 하는데 땀이라도 좀 나면 머리 스타일이 좀 심하게 망가질 때가 있죠. 그래서 유럽에서는 여름에 거리에 나서면 모자 대신 거의 모두가 선글라스를 쓰고 다닙니다. 아주 멋쟁이들은 창이 큰 밀집모자를 같이 쓰기도 합니다만…

 

레이저 시술이 등장한 후 점점 수술의 안정성이 높아져 가면서 안경은 없어질 줄 알았습니다. 녹음 테이프와 CD가 USB에 밀린 것처럼 말입니다. 불과 몇 년 전 GPS는 엄청난 시장이었습니다만, 지금은 휴대전화에 흡수되어 소프트웨어라는 ‘정신’만 휴대전화로 이식되었고 몸에 해당하는 하드웨어는 전부 매장되었습니다. 그런데 안경시장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외국의 통계는 오히려 조금씩 시장이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동네 안경집은 인터넷보다 테 가격이 거의 10배나 비싼데 여전히 간판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요? 모든 질문에 답할 수는 없습니다만, 안경이냐 레이저냐 하는 고민은 잘사는 나라에서만 가능한 배부른 이야기입니다. 최근 프랑스 주간지 Le Point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습니다. 세계인구 중 46억명이 시력교정용 안경이 필요한데, 절반이 넘는 25억명이 안경을 못쓰는 것으로 추정된다는군요. 물론 사용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경제적 이유나 국가차원의 의료체계 문제 등등 일 것입니다. 안경렌즈 시장에서 세계 1위 기업인 프랑스의 Essilor사가 인도시장을 조사해봤는데, 5억5천만명에게 안경이 필요하고, 교통사고로 초래된 인명살상사고의 60%가 운전자나 보행자의 시력문제라고 합니다. 시력문제란, 제대로 된 안경을 안썼거나 안경을 써야 할 사람인데 없었다는 것입니다. 혹시 새안경을 맞출 때, 헌안경을 기부해달라는 제의를 받으신 적이 있으신지요? '제눈에 안경'이라는 말도 있는데, 남의 안경 가져다가 어쩌려는 것일까요? 아프리카 같은 지역에 그냥 뿌린답니다. 비슷하게 맞는 안경을 찾아서 사용하는 것이죠. 저처럼 왼쪽과 오른쪽 도수가 다른 안경이 걸린 사람은 다행히 자신도 나와 비슷할 지, 아니면 정반대여서 안경을 뒤집어 쓰고 다닐 지 상상이 안갑니다. 사정이 이렇니 안경산업은 인도주의 프로젝트이자 영원한 블루오션입니다.

 

한편 밥먹고 살만한 나라들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이제 안경은 기능만이 아니라 패션 액세서리입니다. 자기를 나타내어 보이기도 하지만, 얼굴이 준비가 안되었을 때는 약간 가려주는 기능까지 아주 다양합니다. 더욱이 레이저 수술 후, 보안경으로 다시 안경을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의료기기이지만, 약품처럼 지나친 통제를 받지는 않고, 외모에 관계되는 것이니 운신의 폭이 아주 넓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이 좀 높다고 해도 무리해서 살만한 명분이 충분한 품목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찾다보니, 한국의 안경시장에서 점점 외국 브랜드 점유률이 커지고 있다는군요. 한국이 제조업에서 가격 대비 품질이 거의 제일 좋은 나라인데 말입니다. 이런 시장은 좀 우스워보여 정부에서도 지원을 잘 안할 것 같습니다. 가만히 보면 한국사람들이 인정하는 명품은 전부 외국 브랜드 밖에 없더군요. 대선 기간 중에 3D프린터니 4차 산업혁명이니 하는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제가 정책 담당자라면 사람들 실업률 높일 인공지능이나 로봇산업으로 4차 산업혁명을 장려하기보다는 국산 명품 브랜드를 키워 명품수입을 자연스럽게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싶습니다. 전통의 일제 코끼리표 밥솥의 아성을 물리치고 지금은 국산 밥솥이 지존의 자리를 차지한 것처럼 말입니다. 한국사회가 IT에 너무 중독되어 다른 것들은 못보는 ‘IT 녹내장’ 증상이 심해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편견의 대명사로 ‘색안경’이라는 단어가 종종 쓰이는데, 이제는 그 반대로 좀 더 넓고 멀리 볼 수 있는 ‘광폭안경’ 을 써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안방의 명품시장도 지키고, 바깥의 인도주의 프로젝트도 견인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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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공감가는 이야기를 창작해 내시는 박사님께 존경스러움을 표합니다.
네 IT에 중독되어 있는 한국이지만 IT 강국이라는 명성을 잘 유지해 나가기 위해 다른 분야에도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다음번 기고문도 기대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