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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정국과 정치과학

대선의 계절입니다. 한국만이 아니라, 프랑스도 대선이고 영국은 브렉시트로 논란이 많은 국론을 추스리려고 6월 8일날 조기총선을 실시한다고 합니다. 미국발 트럼프 선출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정신없이 다른 선거들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세계화의 시대인지라 큰 나라들 그리고 주변나라들의 선거는 자국의 앞날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역설적이게도 선거의 딜레마는 우리가 그렇게 신봉해 마지 않는 ‘다수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겨우 2% 때문에 영국은 수십년간 같이 해오던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하고, 한국도 지난 대선에서 과반수에서 겨우 2% 못미치게 넘긴 득표로 국정을 분탕질한 권력이 들어섰습니다. 더욱이 미국에서 트럼프는 전체 득표수에서 졌지만, 주마다 독식하는 방식으로 계산하는 미국의 특수한 선거법에 의해 권력을 쥐었습니다. 선거권자 모두가 참여한 결과라면 그래도 좀 더 쉽게 다수결을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어느 나라든지 투표참여자들은 많아야 선거권자들의 80%에 불과합니다. 기권한 나머지 20% 유권자의 10분의 1 만으로도 정치지각이 완전히 바뀐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개인들의 인생이 그렇듯이 사회나 국가도 그저 운명이나 운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우리가 마치 고3때 담임선생님의 가벼운 충고나 친구의 조언, 아니면 한 번의 시험결과에 따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현재의 직업이나 위치에 와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 정치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자주 해보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전혀 관계없어 보이던 외국의 국민투표와 대선이 이곳에서 자란 우리 아이들 진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 대선이 나 자신과 주변에 직접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얻은 결론 중 하나는 이렇습니다. 정치는 언제나 이상을 말하지만 실제는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좋은 공약은 공허한 약속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후보라도 여러가지 약점과 과오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절대 ‘50보 100보 이론’을 끌어들이면 안됩니다. 50보 100보 이론은 도덕의 기준에 머물러야지, 법이나 정치의 기준이 되면 안됩니다. 그래서 영어의 Compromise라는 단어가 새롭게 느껴집니다. 타협한다는 뜻과 품질을 떨어뜨린다는 뜻이 동시에 들어 있습니다. 즉 최선의 품질이 불가하다면 절충하여 최악을 피하고 차선을 택한다는 말입니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를 마치 혼자만 득도한 것처럼 호들갑이라구요? 그래서 다른 것도 준비했습니다.

만약 당선되어서 취임한다면 39세에 대통령이 될 마크롱 후보를 보면서 프랑스 대선 제도를 좀 찾아봤습니다. 몇 가지 배울만한 제도들이 있더군요. 1차 선거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으면, 1-2등만 선별하여 결선투표를 하는 제도가 있다는 것은 다 아시죠? 이 제도가 도입되면 지금 한국대선처럼 지지율 낮은 후보들의 사퇴를 종용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1차 투표 후 탈락된 후보는 낙선 수락 연설을 하면서 자신에게 준 표를 누구에게 몰아줄 것을 요청합니다. 물론 지지자들이 순순히 다 옮겨가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다음 특징은 2차 투표 후 10일 이내에 정권을 이양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찾아봤더니 불과 4일만에 엘리제궁을 비워준 사례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경우는 ‘인수위’라는 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난 다음, 한 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개국공신’들을 자주 봤습니다. 이번에는 인수위가 없이 바로 직행해야 할 터이니 한 번 실험이 되겠군요. 대선에는 대통령 선출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차기 내각 구성이 오리무중이기에 권력이양이 늦어집니다. 아마 후보자들도 선거에 집중하느라 사전 내각구성은 ‘김칫국’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습니다. 프랑스는 당선 다음 날 곧바로 언론에 내각예상명단이 발표됩니다. 놀라운 것은 실제 내각 구성과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통치 할 시스템을 미리 갖추어 두고 대선에 임하는 것입니다. 실세 장관으로 내각이 구성되어야, 밀실정치의 온실인 비서실이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놀라운 사실은 입후보자 자격은 당연하게도 프랑스 국적자이어야 하지만, 나이는 겨우 18세 이상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투표권자 나이와 혼동된 것인줄 알고 여러 자료들과 프랑스 헌법까지 들춰보며 재확인해보았지만 오류가 아닌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18세 나이에 대통령에 당선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만, 아마도 상징성을 둔 것 같습니다. 한국은 대통령 나이를 40세 이상으로 두고 있습니다. 이 기준이면 프랑스 마크롱 후보는 이번에 출마가 불가했습니다. 실제로 현지에서도 그의 나이를 염려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토론에서도 자주, 경험이 일천하고 나이가 너무 어린 당신이 잘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나옵니다. 대통령 후보자 자격을 18세까지 낮출 필요는 없지만, 투표권 연령만큼은 조속히 18세로 낮추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배경에 대한 이해와 우리 내의 환경이 준비안되었는데 다른 나라의 제도를 쉽게 말하고 배끼려는 자세는 곤란합니다만,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미처 몰랐거나 특정집단의 이익 때문에 미루어지고 있는 것들은 빨리 수정해야 합니다.

대선정국인 지금은 한 명만 잘 뽑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난리지만, 사실 좋은 대통령 선출은 정치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에 미치지는 못합니다. 정치도 과학처럼 앞뒤가 잘 맞춰지는 방정식 같으면 사회가 너무 무미건조해질런지요? 정치가 과학일 필요는 없겠지만, 최소한 상식의 울타리 안에는 들어오면 좋겠군요. 하지만 국민이 상식적일 때만 비로소 정치가 상식 안으로 들어오겠죠. 그러니 정치인들만 너무 탓하는 분위기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 모습의 대표적 현신일 뿐이니까요. 너무 맥빠지는 소리 같지만, 세상만사가 그렇듯 정치발전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야 있겠습니까? 국정농단 사태를 비폭력적이고도 합법적으로 처리-단죄한 것만으로도 사실 엄청난 진전을 이룬 것이니 우리 자신에게도 너무 인색할 필요 없습니다. 이제 다시 상식 실현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는 장미향기 가득한 대선을 기원합니다. (‘정치 과학’이라는 제목의 일부가 겨우 ‘정치 상식’으로 끝맺음되어 송구합니다. 과학과 상식은 결국 같은 것이어서, 종국적으로 동일 값으로 수렴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변명으로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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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상식적일 때만 비로소 정치가 상식 안으로' 공감합니다~
박사님 글은 읽을 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