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처럼 ‘녹색성장호’도 인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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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해야 할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서 최근 몇 년간 나름 열심히 노력중이었습니다. 토끼처럼 정신 없이 뛰었다가 다시 낮잠을 자느라, 거북이보다 느린 진보에 짜증을 내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복병을 만나 반년을 고스란히 허송했습니다. 모국에서 ‘경제공동체’ 사건이 터진 것이었습니다. 동어반복으로 이어지는 인터넷에 거의 코를 파묻다시피 하고 살았습니다. 아마도 천만 해외 동포들과 국내 오천만 국민들이 저와 비슷하게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정치적 무능이었는지,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질병이었는지, 어떻게든 설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염병하네!”라고 한 말씀하신 비슷한 연세의 청소부 아주머님에게 국가를 맡겼어도 당연히 이보다는 더 잘하셨을 것입니다. “한국은 이미 엄청 발전해서 당신이 떠나올 때와는 확연히 다릅니다.”라는 이야기를 습관처럼 들어오던 차에 발생한 세월호 사고 때는, 가슴아파하면서도 사고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며 굳이 이해하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뭐 하나 제대로 설명되는 것은 없었습니다. 설사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다른 짓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아래, 아래, 아래, 어디에도 위기상황에 책임지고 신속히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수 있는 것인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아재 개그'라는 코너에 제가 정을 많이 붙였던 웃찾사라는 개그 프로그램은 종방을 했다고 합니다. 현실이 더 개그 같은 시대를 지나왔으니 개그맨들이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경제 공동체 주인공들의 창의성을 따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현대에도 장희빈, 한명회 같은 수백년 전 사람들이 등장하는 사극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이 경제공동체는 몇 백년에 걸쳐 드라마에 회자되며 '불멸의 이순신'보다 생명이 긴 '불멸의 공동체'로 윤회할 것 같습니다.
이런 와중에 전전 정권은 ‘녹조 라테’라는 고가의 음료 이름만 남기고 점차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것 같습니다. 거시적으로 보면 직전 정권은 특별한 일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앞 정권에서는 아주 선명한 정책들이 있었습니다. 녹생성장-자원외교-4대강이라는 국가프로젝트 이름이 한국사정에 밝지못한 저에게도 선명히 기억됩니다. 747이라는 숫자 때문에 이 모두가 허망한 말장난이 되었지만, 저는 녹색성장만큼은 좋은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에 녹색성장 위원회라는 힘있는 기구도 만들고, 관련한 국제기구도 만들어서 제대로 하려는 것 같았습니다만, 정권말기에 흐지부지해졌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임기 중에 성취가 어렵다고 판단되어, 4대강으로 집중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녹색과 성장은 현재의 상식으로는 상반관계에 있습니다. 녹색을 견인하려면 성장을 유보해야 하고, 성장을 채근하려면 녹색을 포기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과학기술은 상식을 바꾸는 인식의 전환을 불러왔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상식적이던 천동설을 지동설로 바꾼 것처럼 말입니다. 녹색이 성장을 동반할 수 있는 사례들은 조금씩 보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덴마크는 풍력으로 전기 생산의 거의 50%까지 달성했고, 많은 풍력단지 해외수주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들의 경험과 성과가 다른 나라들의 위험부담을 줄여주기에 수주에서도 높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여러가지 잡음과 부작용들이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 탈핵으로 가기 위한 첫번째 시도로, 고리 1호기 원전을 가동중단했다는 기사를 접하고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가동중단이 아니라, 선중단-후조치로 진행된 수순이 아쉽습니다. 이미 10년전에 시작했던 녹색성장을 정권을 지나오면서 계속 발전해왔더라면 핵발전 중단이 아니라, 핵발전이 대체 에너지로 인계인수 될 수도 있었을 터인데 말입니다. 이렇게 되었다면 대안이 포함된 선조치-후중단이 되는 것입니다. 정권이 바뀌면서 그때그때 적패 청산을 하고, 잘못된 것들은 뒤집어야 합니다. 하지만 일관성을 유지해야 할 일들은 계속가야 합니다. 상식적인 정권이 들어선 것은 너무 다행한 일이며, 한국 민주주의가 성숙한 것을 세계에 보여준 쾌거입니다. 하지만 바꾼 것은 다시 시작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부터는 산정상으로 돌을 굴려 올렸다가 다시 굴러 내려간 돌을 또 밀어올리는 시지프스 신화 속의 무한루프를 빠져나와야 합니다.
너무 글이 길어지는 것 같아서, 성급하게 결론을 지어야겠습니다. 다음 정권 선거 때부터는 공약을 두가지로 나누어보면 어떨까요? 1) 무엇을 바꿀 것인가? 2) 무엇을 계승할 것인가? 바꾸는 것을 결정하기보다 이어갈 것을 결정하는 것이 국가발전에 더 중요한 영향을 줄 것입니다. 기억해두었다가 다음 선거에서 꼭 두가지로 나누어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유권자들은 똑똑함을 넘어 점점 더 현명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정권이 국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나라를 바꾸는 것이니까요.
(추신: 직전 정권에 계승할 것이 있었는지는 '과문한 탓'에 추천드릴만한 것을 기억해낼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비꼬는 말같아 송구스럽지만, 찾아보면 계승할만한 정책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