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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위투!

지금 미투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마른 숲이 가득한 들판에 불이 붙었는데, 강풍이 동반되어 들불이 사정 없이 사방으로 번지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남자인 필자가 글을 쓰는 것이 좀 불편합니다만, 몇 자 적어봅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심하게 이중적인 성적 가치와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교국가였던 고려시대에는 연애가 자유로웠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조선이 유교를 받아들이면서 남녀관계가 엄격해지고 결혼은 중매로 맺어집니다. ‘남녀칠세 부동석’이라는 구호를 만들었지만, 양반들은 첩을 두었고 관청에는 국가가 인정하는 관기제도가 버젓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니 성은 겉으로만 윤리문제일뿐, 실제로는 신분문제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느 나라나 고대시대에 남녀가 평등했던 사회는 없었던 것같습니다. 전쟁이나 사냥처럼 완력이 필요했던 고대에는 남녀간의 물리적 힘의 차이가 곧 성의 불평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생산에 여성이 기여할 수 있었던 농경시대에 들어오면서 남녀간의 불평등은 두드러지게 해소되었지만, ‘바깥 일은 남자, 집안 일은 여자’ 라는 공식이 만들어지면서, 여성의 지위는 가정 안과 밖에서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농경문화가 일찍 정착되었던 중국 남부나 유럽 남부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여성의 지위가 높았습니다. 사회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현재까지도 아주 낮은 아랍권에서도 집안 내부에서의 여자들 권익은 우리 상식과 많이 달라서, 와이프가 사실상 남편을 지배하는 가정도 많습니다. 한국가정에서도 여성의 지위는 집집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엄마가 여왕으로 군림하는 가정이 태반이지만, 매맞는 아내들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요즈음 진행되고 있는 미투는 가정내 여성문제가 아니라 가정 밖 여성문제라는 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주제입니다.

중년 이상의 한국남자들은 여성을 사회나 학교에서 같은 동료로 생활해본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사춘기인 중-고 시절에는 남녀가 다른 학교에 다녔고, 대학시절에도 법-상경계 그리고 공대에서는 남학생이 절대다수였습니다. 반대로 사범대나 교대, 예술대학 쪽은 여성들이 너무 많아 남자들이 오히려 소수인 문화속에서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졸업후의 사회생활에서는 비서들을 제외하면, 동료라고 할만한 여성들은 전무한 분위기에서 일을 해온 사람들이 중년남자들입니다. 한국사회의 엘리트들은 자신의 젊은 인생을 고시공부나 업무에 다 소진하고, 결혼마저도 배경에 맞춘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유연애를 해본 사람들도 있겠지만, 긴 시간 지속되던 친구관계가 연인으로 발전한 경우보다 극적인 러브스토리가 많습니다. 그러니 여성을 인간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세월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합니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인간관계는 중립이 많아집니다. 서로가 감정적으로 크게 의존하지 않지만, 업무상 필요한 관계가 많아지는데 중년남성들은 이런 연습이 안되어있었던 것입니다. 적과 동지 중 너는 어느쪽이냐는 진영논리와, 누가 더 높냐는 수직구도의 단순무식화된 관계 속에서 살던 중년남자들 사이에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끼어들면서 도대체 어디에다 여성들을 위치시켜야 할 지에 대한 준비가 안된 것입니다.

당장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교육입니다. 성교육을 시작했지만, 성교육=피임교육이라는 등식에 갇혀 젠더문제(사회적 여성문제)에 대한 이해가 아주 낮습니다. 미투는 여성과 남성의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성원이나 동료로서 여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문제입니다.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상의점 뿐 아니라, 심리적 문제와 윤리적 문제 등 다양한 시각에서 이성을 이해시키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물론 학교가 만능은 아닙니다만, 교육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아버지를 만나서 남성혐오를 지닌 채 성장한 여성들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가정은 소중한 곳이지만, 샘플링 숫자가 너무 적은 주관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학교가 교육을 통해 더 넓고 객관적인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학교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하나도 가르치지 않는 곳이더군요. 연애, 결혼, 육아, 행복, 돈 버는 법, 돈 쓰는 법, 인간관계, 직업설계, 건강관리, 쿠킹 등등 가장 중요한 것들은 빼고, 국-영-수만 죽어라고 시키는 장소입니다. 인간보다는 수출경쟁력에 기여할 기계를 만들어야 했던 과거의 교육이 거의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정부를 탓하고 교육에 핑계대는 것도 큰 병입니다만, 현대사회에서 정부와 학교는 민중으로부터 신의 권한을 위탁받은 기관입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오히려 입지가 줄어들고 파워가 약해지는 개인이 누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민의를 따라 구성된 정부와, 양심과 양식을 가르치는 학교를 믿게 해주어야 합니다. 아니면 현대사회는 구조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붕괴하고 말 것입니다. 다른 한가지는 사회안전망입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결국은 인권의 보루로도 기능할 것입니다. 실직을 당하여도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누릴 경제수단이 보장되었더라면, 추행을 당하고도 참아야 했던 여성들의 숫자는 엄청 줄었을 것입니다. 사회안전망은 생계뿐아니라 최소한의 인권보호에도 꼭 필요한 장치입니다. 백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형법의 취지처럼, 몇 명의 얌체족 무임승차자들을 솎아내려고 사회안전망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재벌 손자에게까지 공짜 점심이 웬말이냐?”며 무상급식을 결사반대했던 충신들은, 그 돈의 몇 배가 엉뚱한 삽질과 외국산 경주 말 사는데 썼던 것을 이제는 알겠죠? 수직적 조직문화와 주관적 평가가 기능하는 분야에서, 사악한 권력에 의한 피해자는 여성에 국한되지 않을 것 입니다. 일상적인 폭력이나 폭언 그리고 조리돌림 때문에 좌절을 겪고있는 남자들도 넘쳐날 것입니다. 이 문제 해결에도 사회안전망이 기여할 수 있습니다. 상대의 기본적 인권을 무시한 자들을 색출해내는 동시에, 사회안전망으로 어둠 속에 갇힌 피해자들을 구조해낼 수 있게 미투운동이 확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미투 운동이 사회갈등을 부추기기 보다, 오히려 상호이해의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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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선(jsyoon) 2018-04-03

학교에서 연애, 결혼, 육아, 행복, 돈 버는 법, 돈 쓰는 법, 인간관계, 직업설계, 건강관리, 쿠킹을 가르쳐준다면 정말 생활에 도움이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