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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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끝나고 나니 금단현상이 생겼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무슨 이벤트가 없나?’라는 생각으로 기웃거리게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축구공은 진짜 둥글다는 증명을 완성한 월드컵이었습니다. 영국의 리네커라는 유명한 선수가 “축구는 22명의 사내들이 공몰고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독일이 이기는 경기”라고 했다는데, 이번에 독일은 최하위팀으로 분류되던 대한민국에게 0대2로 패하면서 스타일이 망가졌고, 신통찮아 보이던 프랑스가 결국은 우승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프랑스 국가대표 선수 90% 이상이 이민자들이라는 것 들어보셨죠? 일전에 프랑스 극우당 당수가 “까무잡잡한 저 팀이 무슨 프랑스 국가대표팀이냐?” 고 이미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한바 있습니다. 국대팀 거의 전부가 이민자인 것도 놀랍고, 저런 극우발언도 서슴없이 할 수 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세계화라는 패러다임 안에서 우리가 살아온 지도 시간이 한참 되었습니다. 세계화를 쉽게 말하면 물자이동에는 관세가 최소화되고, 사람이동에는 비자가 최소화되는 것입니다. 장벽만 낮추면 교류는 저절로 되니까요. 재미있는 현상은, 값싼 노동력도 얻고 노조도 장악하기 쉬워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정부는 은근히 인력수입을 찬성합니다. 하지만 특별한 기술이 없는 일반 노동자들은 외국으로부터의 인력수입에 결사반대합니다. 사무직은 어떨까요? 특별한 기술이 없는 사무직이어도 업무에서 언어비중이 크기 때문에 인력수입에 직격탄을 맞지는 않습니다. 고급인력은 수입되어도 언어와 문화가 혼재된 매니저 업무를 할 수가 없으니, 국내경쟁자들이 인재수입에 큰 거부감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미국에서 일할 때 들은 이야기인데, 아시아인 한 명 이민자가 10년 동안 하는 일은 미국인 한명이 평생하는 일보다 많을 것이라고 합니다. 영어가 짧아 불평은 못하고, 영주권까지 받으려면 최소한 5년 이상 열심히 일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고급인력에도 예외가 있습니다. 의사와 변호사 집단은 철저하게 인재수입을 반대합니다. 아마도 대를 잇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좀 더 길게 보는 것 같습니다. 한 세대가 지나면 이민자들이 자기들 시장을 장악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영어나 불어로는 Immigration 인데, 우리는 이민(移民)이라고 합니다. 영어는 받아들인다는 뜻이고, 한자는 떠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이민이란 아시아권 나라를 떠나서 서양으로 들어가는 것이 됩니다. 옛날에는 정치적 탄압을 피해서 이민 갔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합니다. 교육이민도 결국은 잘먹고 잘사는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이니 장기투자형 경제이민이라고 봐야죠. 이민의 한자가 아주 재미있습니다. 위의 ‘떠날 이’라는 한자를 보시죠. 왼쪽이 ‘벼 화’ 이고, 오른쪽이 ‘많을 다’입니다. 그러니까 먹을 거리가 많은 곳을 찾아가는 것이 이민입니다.
영국에서는 여전히 브렉시트가 오리무중입니다. 유럽연합과의 완전한 결별을 선언했다가 큰 회사들의 염려를 듣고 적당하게 타협했는데, 이제는 보수당 내부에서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애초에 가장 큰 이슈는 폴란드 사람들이 영국에 너무 많이 들어왔고, 취직이 안되는 사람들이 실업수당을 비롯한 복지혜택까지 누리는 것을 밉게 본 영국 중하층 사람들의 분노가 투표에 반영된 것이라고 합니다. 보수당이 장기집권을 위해 제시했던 찬반투표가 엉뚱한 결론에 이르렀는데, 지금 여론은 오히려 유럽잔류 찬성쪽이 높게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국민투표를 한 번 더하자는 쪽도 있고, (일사 부제의 원칙에 따라) 절대 하면 안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지속되어오던 연합을 끝내는데, 어떻게 정족수가 과반수였는지는 의문입니다. 헌법처럼 계속되던 것을 바꾸는 것은 보통 2/3 찬성인데 말입니다. 어쨌든 지금 영국은 전진도 후퇴도 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진퇴양란입니다. 의회는 제2차 대전 이래 최고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누구도 시원한 답을 내어놓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염려가 커지고 있는 것을 자주 봅니다. 당연한 여론입니다만, 우리만 물건을 팔고 남의 것을 안사줄 수도 없고, 우리나라 사람들만 이민 나가고 남들은 못들어오게 할 수도 없습니다. 패쇄적인 경제는 단기이익에는 유리하겠지만, 장기이익에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좁은 국가에 외국인들 계속 들어오면 당장 사회가 폭발하지 않겠냐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금방 통일이 되면 모를까… 그래서 우리 국민을 바깥으로 보내는 이민정책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노년층이 늘어나게 되기 때문에 위험하지만, 전 가족이 다 이민을 가는 것은 인구의 나이 구조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잘살아지면서 이제는 이민이 현저히 줄고 있을뿐 아니라, 나갔던 사람들도 돌아옵니다. 한국이 여러가지로 편리하니까 헬조선이라면서도 어떻게든 안나갈려고 합니다. 과거에는 ‘해외이주공사’라는 정부기관도 있었는데, 지금은 사설단체들만 즐비해보입니다. 더이상 포화되기 전에 외국으로 이민을 장려해야 합니다. 이민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공신력 있는 기관의 도움이 필요하고 현지에서의 정착안내도 필요합니다. 영리단체에게만 맡겨둘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복수국적 인정문제입니다. 국내에서 군에 안가려는 고관대작 자녀들의 이중국적이 문제였는데, 해외에 사는 한국인들에게까지 영향이 큽니다. 복수국적 인정이 안되므로 현지에서 한국인들은 외국국적 취득을 꺼립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현지정부에 대한 한국인들의 발언권이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외교에 도움이 안됩니다. 저의 의견은 해외한인들의 외국국적 취득을 오히려 한국정부가 장려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려면 복수국적도 허용해야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박쥐같은 기회주의자들을 양산하자는 이야기냐?’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를 보면 명시적으로 복수국적을 인정한다고 되어있고, 덧붙여 프랑스 영토 내에서는 프랑스 국적만 인지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대로 한국에 적용하여 국내에서는 한국국적만 인지하면 됩니다. 그리고 수입되는 외국인들은 좀 더 고급인력으로 상향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급인력을 동남아에서 수입해야 나중에 그들이 한국정부의 외교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동남아가 전부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갈 터인데, 지금부터 고급인력들을 영입해서 키운 다음 돌려보내든지 우리 문화안으로 흡수하는 것이 시장과 외교를 방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