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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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도발적이죠? 몇 해 전 프랑스 바칼로레아 시험의 철학과목 글쓰기 제목이었다고 합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반공체제에서 살아온 우리에게는 교과서적인 대답을 요구합니다. 보통사람들은 감히 물으면 안되는 불경스런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국가란 그냥 따라야 할 무한대 또는 신과 같은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개념은 어쩌면 국가를 등에 엎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어떤 무리들의 잘 짜여진 각본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국가와 정부도 잘 구분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살아왔습니다. 사회계약설은 역사시간에 한 번 슬쩍 나오는 그리스-로마 신화보다 더 전설 같은 것이고, 국가는 오랜세월동안 억압과 착취를 행사하면서도 충성을 강요해온 폭군이었습니다.
미국은 독립전쟁을 통해 외부의 적과 싸워이긴 후 공화국을 구성했고, 다시 남북전쟁을 거치며 내부의 다른 의견을 가진 자들끼리 싸우고 달래서 연방을 결성했습니다. 프랑스는 전제군주를 민중의 힘으로 갈아엎고 왕의 목을 친 후 엎지락뒤지락하다가 공화정을 안정시켰습니다. 영국은 군주와 민중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해서 피를 덜 흘리고 공화정으로 나아간 역사를 가졌습니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왕정은 일본에 의해 무너졌고 공화정은 미국에 의해 통제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창칼이 아닌 촛불의 힘으로 늦게나마 진정한 공화정과 사회계약론을 실천하는 중입니다. 그렇게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진, 사람을 우선하는 정부의 수뇌부가, 주적이었던 북한의 지도자들을 만나는 과정을 보면서 저는 엉뚱하게도 ‘국가는 개인의 적인가?’하는 질문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현정부가 무엇을 잘못한다고 비판하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반세기 넘는 세월동안 반공체제를 유지하면서 얼마나 남과 북의 지배층이 이심전심으로 ‘북풍’과 ‘총풍’ 같은 사건으로 상호간에 병풍노릇을 해주었을 것인지 상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든 생각이었습니다.
주적이라던 북한은 사실 독재나 보수정부의 가장 든든한 방패였을 것입니다. 북한이라는 존재가 표현과 행동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는 초헌법적인 명분을 제공해주었으니까요. 진보정권이 들어선 지금은, 적대를 청산하고 평화를 건설한다는 과거와는 반대되는 명분이 유효합니다. 즉, 냉전이 존재하는 동안은 언제나 북한은 정권창출과 정권안정의 가장 효과적인 만병통치약이라는 것입니다. 남북한은 거리가 멀면 가까와지려는, 소위 ‘통일정서’로 정치 장사를 했고, 너무 가까워지면 ‘우리만이 정통단일정부’ 라며 득표장사를 해왔습니다. 아마 북한의 정치사정도 많이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가까와질 때면 ‘우리민족끼리’라는 슬로건을 걸고, 너무 다가와서 불편할 때는 ‘외세와 자본주의로 오염된 체제’라며 남한을 밀쳤습니다. 그리고 민간차원의 비지니스는 너무 많이 정치의 영향을 받습니다. 개성공단이 그렇게 허망하게 문을 닫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2016년 통일부의 개성공단중단 성명자료 사진을 보니, 배경에는 엄청 크게 ‘통일은 우리의 미래, 우리의 희망’이라고 써두었더군요. 이런 부조화와 비정직함을 우리는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 당장 실현에 시간이 많이드는 비핵화니 평화협정은 차치하고라도, 연로하신 실향민들 만남은 왜 추첨을 해야하고 또 기다려야 할까요? 사실 그동안 이산가족 만남은 양측 정부가 민중들에게 가끔씩 풀어놓는 정치선물 보따리로 활용되어왔습니다.
이전정부에서도 정상회담을 했고 그때마다 마치 금방 통일이 되거나 최소한 자유왕래나 자유무역은 곧이루어질 것처럼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여태껏 보여준 여정으로 판단해보면 그것은 바위를 산으로 밀어올리고 다시 굴러떨어진 바위를 반대편에서 밀어올리는 ‘무한루프’ 였습니다.
이제 남북화해나 교류는 정치적 당위성에서 한 발 더 나가 좀 더 구체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이 간섭할 여지가 적은 인도주의적 지원이나 학술행사 같은 것부터 활성화하면서 시지프스의 신화가 반복되는 일을 막아야 합니다. 통일을 원한다고 하면서 준비없이 막연히 기다리는 그 숙명적 통일관을 이제는 바꿔야죠. 북한을 전체로 보지 말고 부분적으로, 분야별로 만나고 느끼고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이 정치적 터부를 피하면서 통일을 준비하는 기초작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북한 엘리트층을 자극하지 않으려면 북한이 경제적으로 일정수준에 이르기까지 통일이라는 단어를 아예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할 지도 모릅니다. 당장 과학기술계가 환경-기상연구, 한의학 교류 같은 구체적 의제로 공동 학술대회 같은 것을 제안해보면 어떨까요? 아직 포닥으로 북한대학에 갈 수는 없겠죠? 정치인들의 성대한 파티가 끝나면, 우리 젊은 과학자들이 김책공대 캠퍼스에서 대동강 맥주를 마시는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는 때는 금방 오겠죠?
2년이 넘어 이글을 봅니다. 정권 초의 그 장미빛 희망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네요. 강대국들의 이해, 남북한 기득권들의 이해가 다 맞아 떨어지는 그 지점이 과연 있을까 싶네요. 본문에 혁명을 언급하셔서 말인데 혁명적인 그 무엇이 필요한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혁명도 준비가 필요하고 그 준비가 혁명이 아닌 충격이 적은 통일로 연결되어 모두가 행복한 결과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