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와 샘플 그리고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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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에 친구나 가족들과 어디로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계신지요? 요즘 이 곳에서도 한국인 관광객들을 종종 마주치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후에는 현지정보를 인터넷에 올리면 그대로 전수받아 다음 사람들이 온다고 하더군요. 여행에서의 관심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남이 전해준 정보가 딱히 자기에게 맞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써바이벌에 관한 정보는 취향에 관계없이 공유가능하겠죠. 치안이나 현지 물가 안내 같은 것 말입니다. 그리고 취향이 달라도 처음 올 경우는 누구나 다녀가는 ‘포토 라인’ 같은 지역은 일단 한 번 방문해보는 것이 좋겠죠. 그렇게 단체로 찍고가는 여행을 몇 번 하고나야 비로소 자기만의 여행 스타일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각설하고, 가끔 현지 여행정보를 올린 글들을 읽으면서 이상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너무 오래 바깥에서 살다보니 저의 관심사가 바뀐 탓이지 않나 합니다. 하지만 사실과 다른 정보들이 계속 인용되는 것을 볼때면 좀 난감해집니다. 통계학 이야기로 잠시 넘어가면, 통계에서는 샘플링이 중요하다고합니다. 집단 전체를 알 수 있다면 그냥 액셀만 사용하여 충분히 모든 통계를 분석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전체 데이터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얼마만큼의 샘플 데이터가 있어야 그리고 어떻게 샘플을 채집해야 최소한의 오차로 공정하게 모집단을 대체할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그런데 많은 여행후기는 턱없이 부족한 샘플에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자기가 직접 겪은 일이라고 해도 딱 한번 한 경험이라면, 담당자의 실수였거나 아니면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전체를 다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그냥 넘어간 경우일 수 있습니다. 다민족국가에서는 비록 그나라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도 각 개인이 가진 기본정보의 수준이 너무 다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마다의 사안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도가 천차만별이라는 것이죠. 단일민족국가는 사람들의 정보수준이 평균에 많이 몰려 있지만, 다민족국가에서는 가우스 벨곡선이 많이 눌러진, 다양성이 더 넓게 퍼진 형태를 가질 것입니다. 그래서 다민족 국가에서는 모두가 다 아는 정보나 상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다민족 국가인 북미와 유럽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관점입니다.
그 다음은, 같은 서구국가지만 남부유럽은 북미나 북유럽과 현저하게 다른 문화를 가집니다. 남유럽은 카톨릭 문화를 가진 국가들이고 북유럽과 미국은 개신교 문화를 축으로 합니다. 북유럽은 자본주의가 태동한 곳이지만, 남유럽에서는 자본주의가 무언의 약속처럼 통용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소매치기를 당했다고 신고해도 경찰이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범인을 체포할 의사는 전혀 없어보이고, 몸이 다치지는 않았는지만 물어보고는 그냥 형식적인 조사로 종료합니다. 현지인이 동일한 피해를 입어도 비슷합니다. 가진 것은 서로 나눠도 문제가 없다는 의식이 저변에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돈을 내고 받는 것으로 형성되는 갑을관계의 메카니즘도 한국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매끄럽게 작동되지 않습니다. 남유럽에서는 서비스를 받는 사람의 입장만이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 입장도 고려됩니다. 그래서 돈을 냈다고 일이 신속하게 처리되지도 않고, ‘손님은 왕’이라기보다는 싫지않은 친구 정도의 위치까지만 가능합니다. 일본처럼 종업원들이 아주 공손하게 고개 숙여 손님에게 인사하는 기대를 했다가는, 유럽에 갔더니 돈쓰고도 인종차별 당했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영국이나 독일만 가도 손님이면 잘 대접받는다는 느낌이 들 것이지만 남부유럽에서는 종업원들의 태도가 너무 캐주얼하거나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종업원들의 태도가 자연스럽고 솔직하다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보았습니다만, 대부분은 무례하거나 너무 격식이 없어보인다고 불쾌하게 생각하더군요.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하면, 관광객들이 붐비는 거리는 항상 정해져 있고 그와 별 차이 없거나 오히려 더 매력적인, 한블럭 건너의 길에는 관광객들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모두 비슷한 정보를 가지고 쫓기는 시간 때문에 추천된 거리만 다니니까요. 관광객이 많은 거리는 큰 볼거리가 많다는 장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식당들은 음식값이 비싸거나 질이 떨어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으슥한 장소까지 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분위기를 잘 봐서 현지인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를 찾아가면 그곳에는 가성비 좋은 식당과 가게들이 많습니다. 그런 거리들을 찾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옷차림새만 봐도 그 지역주민인지 쉽게 알 수 있으니까, 뒤를 자연스럽게 따라다녀보면 됩니다. 아니면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면 되겠죠. 요즘 여기에서 가장 핫한 거리가 어디냐구요. 그런데 물어볼 때는 관상을 잘 봐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관심사 외에는 잘 몰라요. 그러니 오지랖이 좀 넓어보이는 사람을 골라야죠. 요즘은 GPS가 있어서 그럴 일이 줄었지만, 옛날 지도여행을 하던 시절에 왕왕 경험한 일이 있습니다. 길을 물었는데, 본인도 모르면서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길을 같이 찾아주려는 사람들을 만난 경우입니다. 고맙기는 합니다만, 도움이 되기는 커녕 사람 발을 묶어놓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행을 가면 “인생은 정말 우연이다”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떠오릅니다. 그렇게 우연을 통해서 필연을 찾아가는 시도가 좋은 여행이지 않을까요? 이번 여름, 해외로 나가시는 분들은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드는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여행은 못가고 땀흘리며 일해야 하는 분들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시고, 옆에 많은 빈 자리 덕분에 여유롭고도 효율적인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