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인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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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글을 준비하는 동안, 국내 인터넷 신문들은 한가지 이야기로 도배중입니다. 아마 황우석과 최순실 사태에 이은 랭킹 3위 정도의 사안은 되는 것 같습니다. 필자도 거들고 싶지만, 자제하고 준비해두었던 다른 이야기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따끈따끈하지 않은 주제여서 재미없을 지 모르지만, 책임은 안집니다.
요즘 나이먹는 것에 익숙해져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에서 정점을 찍고 내려가는 기분이 들어서 인터넷에서 인문학 강의들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인문학 강의나 설법, 설교들은 현실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강의 자체의 미학에 치중하거나 멋을 내기 위해서 자기도 모르는 이야기, 절실하게 느끼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을 환타지한 단어에 실어 설파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러 개를 듣다보면 결국 말투나 주제 그리고 결론이 전부 비슷합니다. 그래서 들을 때는 마음에 뭔가 소중한 것을 지니게 된 것 같지만, 변하지 않은 현실을 다시 마주하면 훨씬 더 공허해집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정치인이나 기업인 그리고 교육자들 할 것 없이 과장된 말을 하지만, 자기가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아무 말이나 듣기 좋게 말하는 것입니다. 청중들에게 위로를 준 것 자체로도 레토릭은 이미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문제는 현대인들이 이런 과장된 레토릭에 너무 익숙해져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 더 나아가서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들을 구별하는 능력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말쟁이들의 말장난이 많았겠지만, 결국 세월과 더불어 인생의 지혜를 주는 촌철살인 명언들만 살아남았습니다. 대부분 이면에 가려진 진실을 보라는 충고들입니다. 키케로가 한 말 두 개를 인용해보면, “오래 살기를 원한다면 중용의 길을 택하라”, “절제는 부당한 충동에 대한 올바른 이성의 지배다” 를 보면 인생을 낙관하지만 말고 현실을 보라는 이야기입니다. 셰익스피어는 헨리4세라는 사극에서 “과거와 미래는 좋게 보이고, 현재는 항상 최악으로 보이는 법”이라는 대사를 넣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열정페이’나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는 말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언어의 혼돈과 인플레이션 현상 속에서 가장 큰 피해자들은 상대적으로 정보력이 약한 서민들입니다. 전문화되어가니 약자도 엄청나게 쏟아지고, 질문하면 무식한 인간으로 찍힐까봐 눈을 내리깔고 고개만 끄덕입니다. 요즘 언론 기사 제목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지역 1위는 여기”라고 쓰면 될 제목을 “선호하는 지역 2위는 여기, 그런데 1위는?” 이라고 뽑는 것이죠. 기사인지 광고인지 알기 어려운 내용도 다수입니다. 광고 이야기가 나온 김에, 남들은 벌써 다 아는데 나만 늦게 발견한 사건 하나를 이야기해봅니다. 옛날 맥도날드 로고는 빨간 바탕에 노란 감자튀김 두개를 구부려 M 자를 넣어두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부터인가 – 마음만은 - 지구 환경운동에 동참한다며 바탕색깔을 녹색으로 살짝 바꾸어놓았습니다. 요즘처럼 환경문제가 이슈인 세상에서 녹색바탕만으로도 뭔가 개념있어보일 터이니까요.
‘아무 말 대잔치’는 대학에서도 만개합니다. 국내 대학들 홈페이지를 접속하면 “세계 속의 대학, 연구 중심 대학, 인간을 위한 대학” 등의 구호가 일색입니다. 정원을 못채워 운영이 어려울 것이라는 대학들인데도 말입니다. 기관이나 기업들 홈피는 자신들의 업적만 늘어두었지, 고객을 무시했던 실패로부터 배웠다는 사안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런 의사소통 방식은 ‘사회적 공해’라며 홍보 일을 하는 동료를 몰아세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반응이 놀라웠습니다. 자기는 사실 거짓말 하는 댓가로 월급을 받는다더군요. 너무 솔직하게 나오니 발언수위를 낮추라고 조언했던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은 언어가 나뉘어 불통이 되었다는데, 요즘은 내용 없고 책임 없는 말들이 불통을 만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귀는 듣고싶은 말을 들을 때 행복해지고 믿고싶어 합니다. 하긴 그러고 보니, 저도 굵직한 거짓말들을 했던 것 같습니다. 많은 남자들이 청혼하면서 하는 “호강시켜줄께!” 같은 말. 그 말을 벽에 붙여두고 열심히 돈을 모은 기억은 없으니까요. 요즘은 가게에서 연중 무휴로 쎄일이고, 50% 정도는 쎄일해야 제가격인 것처럼, 모든 것들이 부풀려진 세상입니다. 그래서 부풀리기 어려운 이공계 공부나 실험이 재미가 없습니다만, 어쨌든 누군가는 현실이라는 자리를 지켜야 최소한의 믿음과 안전망을 담보할 수 있겠죠? 그리고 그냥 우리가 그런 임무를 맡는 수밖에요. 괜히 우리만 착한 척 하는 위선이라구요? 약해지면 위선자가 되는 것이고 신념을 지키면 체면이라도 남습니다. ‘내 인생의 기적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생각과 일에서 만들어진다’는 각오로 이번 가을을 좀 더 비장하게(!) 맞이하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