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훔쳐본 지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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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나는 내 나이가 몇 살인지 모른다. 가방끈 긴 과학자들은 45억년 넘은 늙은이라고 말하는데, 열심이 지나친 종교인들은 1만년도 안된 젊은이라고 주장하니, 양극단 사이에서 너무 헷갈린다. 1만년이라면, 아마 그 숫자는 내 나이가 아니고 인간조상들이 처음 내 몸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나이가 아닐까? 그래도 1만년은 너무 젊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1만년 훨씬 전부터 인간들은 벌거벗고 떼지어다니며 다른 동물들을 사냥하거나 자기들끼리 집단살육전을 벌였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나이는 내가 여태껏 태양주위를 돌아다닌 회전수에 불과하니 패스하고, 정작 궁금한 것은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인데, 그것도 모른다. 막장 드라마에서는 나중에 반드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던데, 왜 나는 호적도 없고 증인이 되어줄 산파도 없는지 모르겠다. 가까운 곳에 혈육이 살고있다는 소문은 진즉에 들었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내 주위를 빙빙 돌기만 하는 저 달이 내자식이라고 사람들은 수근거린다. 하지만 달이 내몸에서 찢겨져 나간 자식인지는 솔직히 확신이 없다. 오지랖 넓은 학자들의 주장이지만, 내 자식이라면 왜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지 의문이다. 저 녀석은 내 몸 둘레인 4만 킬로미터의 딱 10배 되는 거리인 40만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돌아다닌다. 유일한 이웃이지만, 사실 나는 저 녀석의 살아온 역정에 관하여도 전혀 아는 바 없다. 내 자식이라면, 왜 더 나이많은 나는 아직 버젓하게 살아있는데, 달은 세입자들도 다 떠나고 불도 꺼졌는지를 생각해보면 혹시 저 녀석이 나보다 더 나이든 것은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인간들이 달 표면에서 돌맹이들을 많이 줏어왔다고 해서, DNA 검사같은 쪽집게 암석검사를 통해 우리 관계의 비밀이 풀릴 줄 알았더니 여전히 썰만 무성하다.
참! 그런데 아주 신기한 사실이 있다. 매일마다 빛을 비추어주는 태양이 저 달보다 400배나 먼 거리에 늘 있는데, 달은 태양보다 꼭 400배가 작아서 내 눈에는 동일한 크기로 보인다. 이것이 그냥 우연인지 아니면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달과 해의 보이는 크기가 동일하다보니, 아주 가끔씩 숨박꼭질하듯 해가 달 뒤에 완전히 숨어버린다. 대낮에 태양이 가려지면 가슴이 철렁내려앉지만, 다행하게도 장난은 금방 끝난다. 옛날에는 이 날이 오면 인간들이 대재앙의 전조라며 제사를 지내고 난리를 쳤지만, 지금은 지들끼리 미리 날자를 알려줄 정도로 영악해졌으니 참 격세지감이다. 그러고 보니 내 몸에 세들어 사는 인간들은 영리한듯 멍청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자기들 앞마당 깊숙히 뭐가 있는지, 바다라고 불리는 연못 아래에는 또 뭐가 있는지 알려고 하기보다 저 멀리에 있는, 나도 잘 모르는 달을 더 알고 싶어하더니, 이제는 그보다 더 멀리에 있는 화성이 궁금하단다. 자기들이 세들어사는 집 놔두고, 왜 남의 집에 저렇게나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다. 그렇게도 남의 집이 좋으면 이제 그만 방 빼고 나가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질투는 아니고, 청소는 않고 밖으로 싸돌아다니려고만 하니 화가 나서 뱉은 말일뿐이다.
그리고보니 정말 이제는 좀 따져봐야겠다. 세입자들은 내가 언제나 건강할 줄 아는 모양이다. 플라스틱 봉투를 아무데나 버려도 다 내가 처리해줄 것으로 믿는다. 바다로 흘러보내 지들 눈에 안보이게 할 수는 있지만, 나도 완전히 없앨수는 없다는 것을 정말 우리 세입자들은 모르는 것일까? 지들이 싼 똥은 지들이 치워야 한다는 기본을 모르다니 정말 통탄할 노릇이다. 그래도 지들끼리 보이는 곳에서는 그나마 잘치우지만, 얌체족들은 몰래 바다로 나와서 버리기도 하고, 썩지 않는 것들까지 몽땅 땅에 묻어버리는 인간들도 있다. 지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돈이라는 것을 아무리 벌어도, 내가 몸져누워버리면 다 끝난다는 것을 세입자들은 모르는 것같다. 초중고에 대학까지 공부한다는 세입자들이 뭘해야 살고 죽는지를 모른다니 한심하다. 바이러스 같은 미물도 숙주를 죽을 정도로 착취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학교에서는 안가르치나? 아니면 고등동물인 세입자들은 나의 지연사 가능성,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빨리 죽더라고 자기들이 살동안만큼은 버텨줄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일까? 자식들 잘되라고 없는 스펙도 만들어주는 세입자들이, 후대는 모르겠고 나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참 나쁜 부모들이다.
그건 그렇고, 이제는 나에게 폐가 하나 밖에 안남아서 숨쉬기도 벅찬데, 세입자들이 계속 공해를 뿜어대니 정말 사는 것이 이제 얼마 안남은 것같아 번민이 많다. 유일하게 남은 폐마저도 미국의 큰 회사이름과 같은 탓에 유명해지다보니, 나에게는 허파꽈리 같은 나무들을 계속 배어내어 내 숨통을 죄어오고 있다. 바이러스가 숙주를 죽이려고 설쳐댄다면 분명 조현병이 재발한 것인데, 나에게는 마땅한 처방이 없다. 거의 몇 억명이 설쳐대는 광란의 칼부림을 난들 무슨 수로 잠재울 것인가?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최근 아주 이상한 일이 생겼다. 왠일인지 작년부터 갑자기 공해가 많이 줄어서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보니 길거리에 차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정말 기이한 일이다. 그동안의 무책임한 일에 창피했다는 깨달음을 얻었는지 인간 세입자들이 죄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닌다. 상황이 너무 이상해서 이리저리 알아봤더니, 숙주를 보호하는 자기들보다 못하다고 분노한 어떤 바이러스가 인간들에게 전면전을 선포한 까닭이라고 한다. 짜식들이 말로 할 노릇이지, 다른 세입자를 죽인다면 그것도 살생인지를 모른단 말인가? 여태껏 여러번 말로 해봤지만 소용없어서 이번에는 초강수를 뒀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다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단다. 참 어처구니 없는 변명이다. 작은 놈이 큰 놈을 죽이고 큰 놈이 다시 백신을 만들어 작은 놈을 죽이고, 더 쎄게 진화한 작은 놈이 다시 백신을 이겨먹고 큰 놈을 죽이고… 이런 살육이 내 집에서 계속 벌어진다면, 그래서 ‘모든 생명은 동일하게 중요하다’는 내 좌우명을 지킬 수 없게 된다면 정말 견딜 수 없는 치욕이다. 세입자들을 모조리 내어보내고싶다. 안나가려고 버티면 불을 질러버리고 자폭하든지… 참다가 참다가 내 뚜껑이 열리는 날, 너희들은 다 죽는다. 제발 정신들 좀 차려라, 집세 한 번 낸 적 없는 이 염치 없는 세입자들아!
남의 집이라고 생각하니 이러고 살겠지요.. 내 집이라고 생각한다면 행동이 좀 바뀌지 않을까요~?
1.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실천
2. 에너지 절약
3. 화학제품 대신 친환경 제품 사용
4. 반려식물 키우기 등
이곳에서 오래오래 살고싶어요. :-)
맞아요. 지구가 내 몸이라고 생각한다면 여름마다 보양식을 챙겨먹고, 너의 정신건강을 위해 힐링되는 여행시간을 보내는 등 아주 좋은 일들을 해줄거같은데 ㅜㅜ !! 항상 마음은 이렇지만 또 막상 내일 아침이 되면 아무렇지 않게, 인지하지 못한채 환경오염을 시키고 있다는 점 참 고쳐야할 부분입니다!
맞습니다.이상하게도 임대인의 주장에 100% 공감합니다 임차인으로서.앞선 글의 제로 웨이스트 실천에도 아주 공감되고요.임차인들의 노력과 실천을 위한 임대인의 강제적 행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글 잘 읽었어요... 정말 코로나 시대에 일회용이 너무 많이 나와 걱정이예요... 지구의 아픔을 알고 저라도 줄이려고 노력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