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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문맹과 한글창제 정신

나이를 말하기 부담스러운 시대인데, 필자는 작년에 환갑을 넘겼다. 겁도 없이 은퇴 전에 한 번 더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려다가, 덜컥 MIT 가 위치한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켐프릿지로 이사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일했던 프랑스의 국제기구를 떠나 새로 조인한 일자리는 MIT에서 나온 연구자들이 만든 벤처회사다. 그냥 MIT에서 일하면 되지 왜 나와서 회사를 차렸냐고 물어보았더니, 대학은 기부금만을 받을 수 있을 뿐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배당할 수 없으니 연구비를 모으기 어렵다고 한다. 반면 회사를 차리면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나누어주는 방식으로 이익을 공유할 수 있어 연구비 모집이 쉽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래서 필자도 약간의 주식을 받게 되었다. 이제는 주식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도록 열심히 일해서 노년을 편하게 지내야지라는 야무진 꿈도 가지게 되었다. 일장춘몽으로 그칠 지, 동상이몽일지 아직은 모른다.

이 글은 회사에서 준, 한글자판 표시가 없는 컴퓨터 자판으로 치는 내 생애 첫번 째 글이다. 속도가 늦지만, 이번의 어려움을 포기하면 평생 ‘자판 커닝’을 해야하는 신세를 바꿀 수 없을 것 같아, 신뢰하기 어려운 손가락의 기억과 싸워가며 천천히 타이핑 중이다. 그런데 최근 코센 싸이드에 ‘과학기술자와 디지털문맹’이라는 토론코너를 보게 되어 가슴이 철렁했다. “누가 내 비밀을 알고 비판하려는 것일까?” 하는 음모론이 순간 머리속에서 떠올랐다. 물론 나는 대중의 타겟이 될만큼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기에 금방 착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옮겨오면서 컴퓨터도 바뀌었고 휴대전화도 바뀌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개인 이메일을 열려고 시도했더니, “당신 컴퓨터가 바뀌었음으로 전화텍스트로 코드를 보냈으니 본인임을 인증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 휴대전화는 계약이 해지되어 SIM카드가 내 수중에 없어서 이메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자주 겪는 일이긴 하지만, 자동차 보험들려면 운전면허증 가져오라고 하고 면허증 발급받으러가면 보험증을 요구받는 무한루프에 빠지는 순간이다. 둘 중 하나가 있으면 쉽지만, 둘 다 없으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에는 모든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행정업무와 은행업무에 휴대전화를 도입하고 있다. 그래서 휴대전화가 없으면 주민등록증이 없는 것보다 더 불편한 사회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전 한 번 보지도 못한 공인인증서라는 것을 한국에서는 요구한다는 말도 자주 들었다. 코로나 시절에는 모든 백신 예약과 검증도 휴대전화가 없으면 불가할 정도다. 정부가 휴대전화를 다 사서 하나씩 나누어준 것도 아닌데, 무슨 권리로 휴대전화에게 그렇게 많은 권한을 주고 의존도를 높이는지 알 수가 없다. 좌우간 상황이 이러하니 나이든 사람들은 점점 사회에서 멀어지고, 같은 물건도 더 비싸게 사야 한다. 나이 먹는동안 돈을 잘 모아두었다면 형편이 괜찮겠지만, 가난하다면 디지털에서 소외된 영향을 더 크게 느낄 것이다. 은퇴후 갈 곳도 마땅히 없는데 전화기마저 편하게 사용할 수 없다면, 자기 삶이 송두리 채 무시당하는 기분마저 들 것이니까.

국가는 사회의 소통과 최소한의 계층간 갈등해소를 위해서 의무교육을 실시한다. 보통 중-고등학교 과정까지가 의무교육기간이며,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상으로 모국어 교육을 시켜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교육수준은 말을 못하거나 못알아들어서 자기 권리를 지킬 수 없거나 사회에 기본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인권의 바탕이 기본교육을 받을 권리인 것이다. 그런데 이제 기존의 문자와 문서를 상당부분 대체하는 디지털은, 개발자들에게는 기술의 영역이겠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한글 대신 침범한 새로운 언어다. 기존에 영어로 스트레스 받던 기성세대는 이제 디지털 언어를 몰라 스트레스가 한층 증폭되었다. 최소한의 디지털 기기 사용능력이 없는 것은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르는” 문맹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요즘은 유치원에 다니기도 전부터 휴대전화를 사용하는데 무슨문제냐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도시의 상황일 뿐이다. 국가는 도시로부터 발전동력을 얻지만, 사회의 생존은 농민과 어민 그리고 도시에서 배달이나 청소, 경비를 책임지는 계층에 심하게 의존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저변층이 디지털 기술에서 소외된다면 기본권에 대한 심각한 제한이다. 모든 국민들이 교육수준과 경제적 위치에 무관하게 한 표씩 행사한다는 보통선거제가 민주사회구성의 기본임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제 국가는 마치 의무교육을 수행하듯 소외된 계층에게 디지털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 젊은 계층 엘리트들이 디지털 개발을 이끌고, 장년-노년층 권력자들이 디지털 정책을 결정한다. 결과적으로 개발자들은 더 발전된 기술만 추구하고, 정책 담당자들은 디지털이 사회에 끼칠 파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외국과 경쟁한다니 기꺼이 허가해주는 싸이클을 반복한다. 유감스럽게도 어디를 봐도 경쟁력을 높이자는 슬로건 뿐이고 한글창제 정신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학교에서 마치 신앙처럼 배워왔던, ‘어린 백성’을 위해 보편적 언어의 보급을 염원했던 세종대왕의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사회는 보편적 행정이나 생활에 불필요하게 복잡한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는 것들을 경계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어떤 계층을 더 편하게 시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어떤 계층을 소외시키는 것은 민주사회가 아니다. (물론 특수하고 복잡한 프로페셔널들의 시장은 자기들 마음대로 복잡하게 만들어도 상관없다.) 그래서 향후 디지털 기술과 언어가 사회의 계층과 세대간의 분열을 심화시키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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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선(jsyoon) 2021-10-05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옮기셨군요. 앞으로 미국에서 전하는 르네상스공돌이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기대하겠습니다.^^
환갑이 넘으신 나이에 국경을 넘어 미국 회사에 취업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주식이 대박나서 풍요로운 노년 되시길 기원합니다.^^

손지훈(htlaz) 2021-10-06

전 회원님 의견에 백 번 공감합니다.얼마 전 코센에서 연구원들 간 Digital Literacy격차가 우려된다는 주제에서
본인이 연구원들 간 격차보다는 중 장년 분들이 당장 편의점에서 패스트푸드점에서 기차역에서 사용 할 수
있는 기초 교육이 시급하다 의견 올린 바 있습니다.
회원님 의견 말미에 디지탈 정책을 결정한다는 장년 노년 권력자 이 양반들도 비서가 하지 정작 이 양반들은 사용
못하는 분들 아주 많으실 겁니다.적절한 의견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