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버블, 그리고 과학기술과의 인과관계
- 1412
- 11
- 0
다사다난한 해가 마지막 달을 남겨두고 있다. 코로나 말기에 일상으로 복귀하면서 그동안의 민민했던 생활이 사실은 얼마나 값진 것인지 깨달았다. 일전에 프랑스에서 코로나 록다운을 맞이하여 꼼짝 없이 집에 갇혀지내던 때를 잊을 수 없다. 잠시 외출하려면 통행증을 지참했고, 거리에는 차량통행이 전무하여 우리가족만 버려진 것같았다. 저녁 8시가 되면 비로소 이웃들이 베란다에 모습을 나타냈고 냄비를 두드리며 아직 살아있음을 주변에 알렸다. 다행스럽게도 이제 코로나가 우리 시대를 퇴장하고 있다. 하지만 살인적인 물가상승은 또 다른 불안을 낳았는데, 한국에서는 이제 부동산 버블이 막 터지려고 한다.
우리가 학창시절에 거의 악마의 우두머리처럼 배웠던, 공산주의 창시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물론 그의 예언이 실현되기 전에 공산주의부터 먼저 망했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는 계속 건재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가 자본주의 멸망이유로 꼽은 것은 생산기술보다 분배기술의 더딘 발전이다. 생산은 계속 늘어날 것이지만, 그 생산은 결국 돈많은 사람들만 더 배부르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을 떠올리면 마치 한 편의 다큐를 보는듯한 기시감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천만원이 넘는 고가 핸드백을 사려고 새벽부터 줄을 서지만, 어떤 사람들은 최소한의 생계비를 벌려고 아침 일찍 출근 버스에 몸을 싣는 풍경 같은 것이다.
나는 종교가 있지만, 과학이 우리시대의 많은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줄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속도를 경계하면서도 신기술에 오픈마인드를 가지려 노력한다. 실제로 과학은 휴매니티 향상에 여러가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어왔다. 가장 대표적인 지표가 평균인간수명의 현격한 연장이다. 물론 행복이라는 주관적 가치에 가중치를 둔다면 과학 무용론을 제기할 수 있다. 과학이 없었다면 짧지만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논리같은 것이다. 하지만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지적 호기심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삶의 방향일 것이다.
급하게 개발된 코로나 백신은 확실하고도 장기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코로나를 어느 정도 제압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백신은 사기극이라는 극단적 평가도 있지만, 없는 것보다는 확실히 나았을 것이다. 앞으로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대체 에너지나 지구온난화 문제에도 과학은 객관적 시각을 제공할 것이다. 그래서 지구온난화 문제가 바로 현대 과학기술이 불러온 재앙이라는 결론이 나더라도 숨김없이 알려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과학을 의심함과 동시에 신봉하고 더 나은 과학적 안목과 지식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불행하게도 이렇게 유용하고도 객관적인 과학이 주택문제에 있어서는 아직 어떤 해답도 주지 못하고 있다. 분명히 건축분야의 신기술들이 고층빌딩을 더 신속하고 더 안전하게 건설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그것이 우리 시대의 주택문제를 온전히 해소해주지는 못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생산기술의 발전속도는 빠르지만, 분배기술은 답보상태라는 현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AI가 우리 연구실과 일상에 엄청 도입된다고 해도 이런 사회환경은 전혀 바뀔 것같지 않다. 즉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것이 직접적으로 분배기술의 발전을 견인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주택문제가 모든 과학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거칠게 말하면, 대부분의 과학기술자들이 (겨우) 더 좋은 곳에 위치한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살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본적 꿈이 실현불가한 젊은 과학자들은 결혼도 출산도 미루고 힘들어한다. 그런데 이런 딜레머가 단 한 번이라도 어느 과학기술자 커뮤니티 학회의 주제였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모두가 현재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거나, 그 진실을 넘어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포기했거나 둘 중 하나다. 이제는 이 가장 중요한 문제를 과학의 영역으로 끌고들어올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분명히 주택문제는 정치나 행정이 다루어야 할 주제지만, 그 결정에 앞서서 고려해볼 수 있는 과학적 펙트들은 충분히 많다. 그러니까 선거용 표심이나 국정수행능력 지지도를 완전히 떠나, 어떻게 하면 주택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과학적으로 논증하는 브레인 스토밍이 필요하다. 그러면 주택을 배급형으로 할 지, 유럽처럼 월세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는 정책으로 갈 지, 아니면 둘을 적절하게 결합할 지 등의 해답이 보일 것이다. 경제학이 과학의 영역안으로 들어오려고 노력한 지 벌써 반세기 이상 지났다. 심리적 공포나 기대치에 의해 흔들리는 것이 경제인지라 과학적 인과관계가 명료하지 않거나 오히려 정반대인 경우가 자주 있었지만, 경제학은 더 안정된 사회를 만드는데 엄청난 기여를 했다. 하지만 경제학은 주택문제에는 직접 관여해오지 않았다. 주택문제 사안들은 행정부와 국회에서 결정하는데, 그들은 모두 수명이 4~5년에 불과한 (비과학적) 시한부 정치권력이다.
각집단이나 계층의 이해득실을 떠나 정확한 현상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런 기본적인 논의가 아직 분명하지 않다. 예를 들어보자. 높은 전세비로 인해 갭투자라는 것이 만연한데, 갭투자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부동산 시장의 토종악성코드다. 그러면 갭투자를 없애는 방법, 더 나아가 전세자들이 주택을 구입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만들어볼 수 있다. 이 칼럼의 목적은 구체적인 부동산 정책을 논하려는 것이 아닌지라 더 이상의 논의는 삼가한다. 부동산 버블 팽창과 폭발이 여전히 10~20년 주기로 반복된다면 한국사회는 인구절감 해결과 과학기술 경쟁력 향상에 실패할 것이다. 안정된 사회에서만 과학기술이 꽃을 피우게 될 것이며, 그 연구결과가 국가의 부와 파워 그리고 국민들의 행복을 보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동산과 과학기술이 아주 먼 문제인 것같지만, 결국 인과관계로 묶여있는 종속변수다. 한국사회는 이번에 시작될 부동산 버블을 잘 관리하여, 그 땅 위와 아래에 깔린 모든 악성 코드를 다 청소하고 재부팅해야 한다. 그래야 과학이 살고 기술이 살고 모두가 안정된 사회속에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