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문맹과 세대간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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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 코로나를 완전히 뒤로 하고 다시 출발하는 세상이 될 것 같다. 몇 년을 다같이 쉬는 동안 과연 우리는 무엇을 배웠을까? 아마, 특별한 깨우침 없이 또 다시 무한경쟁을 시작할 것이다. 묻지 마 무한 경쟁도 무섭지만, 현 문명에서 정말 불안한 부분은 별로 필요하지 않은 곳에도 IT를 최대한 접목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IT 접목은 시니어 세대들을 계속 변방으로 밀어낸다. 권력 없는 시니어들은 도태되고, 아직 권력을 놓지 않은 시니어들은 주니어들에게 더 많이 의존하게 되어 결국 세대간 분열과 사고의 차이가 점점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 스타일도 날이 갈수록 깊게 적용되고 있다. 잡스가 휴대전화에서 키보드를 없애 버린 것처럼, 이제 모든 메뉴들은 가능한 안보이거나 작게 보이도록 설계된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버튼이어서 메뉴 상단 가운데 큼직하게 있어야 할 것 같은 버튼이 완전 구석에 조그맣게 있는 프로그램들이 늘고 있다. 사전에 사용법을 모르면 어디를 어떻게 클릭해야 할 지 알 수 없는 것들이다. 프로그램들은 왜 이리 친철하지 않을까? 그것은 아마도 프로그램의 평가와 구매가 전문가들에게 의존하기 때문이고, 그들의 시대정신이 “숨겨져야 아름답다”인 모양이다.
현재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앱이나 프로그램, 컴퓨터 셋팅 기술에 시니어들이 소외되는 이 현상은, 세종대왕 당시 평민들이 한자를 몰라 글을 읽고 쓸 수 없던 시절과 유사하다. 그런 백성들을 어여삐 여겨 한글을 창시했다고 하는데, 오늘날 프로그래머들의 철학 속에는 디지털 문맹인들을 최대한 포용하려는 세종 같은 자비심을 찾아볼 수가 없다. 세종대왕의 ‘어여삐 여김’ 대신 스티브 잡스의 신비주의를 추앙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IT가 지나치게 적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구체적인 사례들이 뭔지… 예를 들어보자. 자동차에서도 기본적인 엔진구동 자체를 제외하고는 전자식 그리고 IT 식으로 모든 것이 굴러간다. 그래서 반도체가 품귀현상을 보이자 컴퓨터가 아니라,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었다. 옛날에는 창문을 내리는 핸들이 수동이었는데, 지금 수동으로 창문을 조작하는 자동차는 찾아보기 어렵다. 차가 물에 빠질 경우, 옛날 수동 핸들로 창문을 여는 자동차는 핸들을 돌려 자동차에 물을 채운 후 문을 열고 탈출이 가능하지만, 이제는 물에 들어가는 동시에 전기선들이 합선되어 창문을 내릴 수 없으니, 엄청난 수압을 받는 문을 열 수 없어 꼼짝 없이 사망한 경우들이 보고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한술 더 떠서 팬시한 전기자동차들은 바깥에 아예 문고리가 보이지 않는다. 문고리 자리를 누르면 문이 열리는 방식이다. 그런데 최근에 전기자동차에 불이 났는데, 소방관들이 문고리를 못찾아 문을 열수 없었고, 결국 운전자가 화마 속에서 사망하는 사고가 보고되었다. 문 바깥이 불꽃에 거슬러지면, 매끈한 문에서 문고리 자리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디자인들은 법적으로 금지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고가 자주 있는 것은 아니니까, 세월호나 이태원 사고에 준하는 큰 희생을 치르기 전까지는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뿐 아니라, 일단 소비품에까지 잡스의 신비주의가 대거 유입되었다. 일전에는 샴푸를 사러 가서 여러 개를 살펴보는데, 도대체 샴푸인지, 부엌세제인지, 아니면 린스인지 명확하게 쓰여진 제품들이 거의 없었다. 설명을 읽어보려고 했지만, 글씨크기가 좁쌀만 하여 가능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좁쌀 크기의 무의미한 설명이 적힌 상품이 법적인 제재없이 가판에 버젓하게 깔리는지 참 의아했다.
IT는 편리한 도구이기 때문에 괜히 배제시키려고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IT 개발자들은 IT가 단순하게 편리한 도구가 아니라, 전체를 통합관리하는 종합 시스템화를 추구하며 고객을 유혹한다. 그래서 이 시스템 하나만 구축하면 모든 조직관리, 생산관리, 자재관리, 재무관리, 일정관리, 인사관리가 하나로 연결되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고 부추긴다. 맞는 말이다. 잘 돌아갈 때는 말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시스템은 최소한 몇 번은 오동작을 한다. 그런데 통합되지 않은 시스템들은 오동작을 하여도 그 범위가 제한적이며, 동시에 시스템이 다운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통합시스템은 한 번 다운되면 모든 것이 정지된다. 해킹을 당해 데이터가 누출된다면, 이 역시 모든 데이터가 누출될 것이다.
IT 데이터는 편리성이 큰 만큼 똑같은 크기의 위험성을 동시에 가진다. 일전에 카카오톡 데이터 센터 화재로 거의 전국이 아수라장을 경험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만약 전쟁 상황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집중과 통합이 보여준 엄청난 편리성은 그 똑같은 크기로 앞에 마이너스 부호가 붙는다. 그래서 경찰이 직접 사람들을 떼어내려고 해도 가능하지 않았던 이태원 사태 같은 엉킨 대형 사고는 IT에서도 언제나 가능하다. IT가 더 많이 적용될수록 꼭 필요한 철학은 정말 필요한 최소한만 적용한다는 생각이고, 최악의 사고는 반드시 발생된다는 약간 지나친 비관주의도 필요하다. 그리고 디지털 문맹인들을 한 명이라도 더 건지려는 인도주의적 시선 또한 필수적 덕목이라고 하겠다.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 요샌 휴대폰 전원 버튼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ㅎ 전원 버튼도 숨겨져야 아름다운가 봅니다.
수퍼마켓에서 깨알만한 글씨를 보면서 제 눈을 탓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네요. 유니버설 디자인이 많은 분야에 적극적으로 도입되어야 할거 같습니다. 앞으로는 실버세대가 절대다수가 될텐데, 이들을 소외시키면 안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