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온 초전도체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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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사이 상온 초전도체를 한국에서 개발한 것 같다는 뉴스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미국 국립연구소의 한 연구원이 계산해보니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긍정적 의견을 피력하여 불에 기름을 부은 지 며칠되었다. 나는 초전도체 연구자는 아니지만, 초전도체를 사용하는 분야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다. 그래서 극저온에서 사용되는 초전도체가 얼마나 복잡한 구조를 가지는지 잘 알고 있다. 만약 상온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발견하여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대체 에너지원을 따로 개발할 필요도 없고, 기후변화를 해결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먼저 짚어볼 것이 있다. 과학용어들이 과장되거나 잘못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핵융합 분야에서는 플라즈마의 중심 온도가 1억도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며 언론에도 그대로 나간다. 중심이 1억도라면, 플라즈마의 가장자리(진공용기 내벽)은 최소한 1만도는 될 것이다. 플라즈마 중심에서 진공용기 내벽까지의 거리는 대체로 1~5미터 정도에 불과하니까 당연한 추측이다. 그런데 플라즈마를 가두어 두는 금속용기는 텅스텐 등으로 내벽에 보호층을 붙이지만, 텅스텐의 녹는 온도는 섭씨3422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플라즈마가 스치기만 하여도 텅스텐은 다 증발해버려야 하지만, 비교적 멀쩡하게 잘 견딘다. 도대체 어찌된 영문일까? 그 이유는 용기 내부의 플라즈마 압력(밀도)가 대기압보다 현저하게 낮아서 실제로 저장하고 있는 열의 용량은 아주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라즈마를 가두는 용기의 이름이 플라즈마 용기가 아니라, ‘진공용기’다. 쉬운 이해를 위해 습식 사우나와 건식 사우나를 비교해보자. 습식 사우나는 내부 온도가 최대 70도 정도라고 하며, 100도까지 올라간다면 화상을 입거나 사망할 수도 있지만, 건식 사우나에서는 섭씨 120도까지 올라가도 견딜 수 있다. 수분이 잔뜩 함유된 수증기가 피부를 때리면 아주 큰 열이 전달되지만, 수분이 제거된 공기가 피부를 때리면 전달되는 열량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플라즈마가 1억도에 도달했다는 것은 내부의 아주 약한 압력의 수소 플라즈마 에너지가 1억도에 해당된다는 것이지, 대기압에 준하는 압력을 가진 플라즈마가 1억도의 에너지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건식 사우나 방식’의 1억도인 셈이다. 과학적으로 거짓말은 아니지만, 일반인들은 대기와 비슷한 밀도를 가진 환경에서 온도를 1억도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생각했을 것임으로 오해할 소지가 크다.
다른 하나가 오늘 주제와 관련 있는 ‘고온 초전도체’라는 말이다. 현재 상용화된 초전도체는 절대온도 20도 정도가 최고 온도다. 보통의 초전도체는 액체 헬륨으로 냉각해야 하는 절대온도 4도 정도에서 운용된다. 그래서 그보다 조금 더 높은, 절대온도 30도 이상에서 운용가능한 초전도체를 ‘고온 초전도체’라고 흔히들 부른다. 섭씨 마이너스243도 근처에서 사용되는 극강저온 초전도체에 ‘고온’이라는 단어를 붙였는데, 이제는 플러스 25도, (절대온도 300도) 정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을 ‘상온 초전도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니까 현재의 명명체계를 따르자면 ‘상온’이 ‘고온’보다 아주 훨씬 더 높은 온도가 되는 셈이다. 논리를 기본으로 의사소통해야 할 과학 커뮤니티가 이런 언어적 모순에 빠지게 된 이유는, 아마도 상온 초전도체는 존재할 수 없으며 그래서 상온 초전도체라는 말을 사용할 일도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던 것은 아닐까? 여하튼,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학술용어로 사용할 수는 있지만, 이미 사회에서 통용되는 용어를 학술용어로 채택할 경우, 정반대의 뜻을 가지거나 명백한 오해를 부를만한 의미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고온 초전도체’라는 용어에 심기가 불편하다.
용어정리하다가 흥분하여 서론이 길어졌는데,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초전도현상에서는 전기저항이 제로가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를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면, 전기저항을 기계적 마찰력으로 바꾸어 생각해볼 수 있다. 만약 고도차가 없는 평편한 마루를 마찰력이 없는 재료를 깔아 만들었다면, 그 마루 위에서는 엄청 무거운 것들도 손가락 하나로 살짝 밀기만 해도 다른 물체와 부딪히기 전까지 계속 미끄러지며 움직인다는 이야기다. 마루의 수평을 잘못 조정하여 약간만 경사가 있다고 하면 모든 물건이 미끄러져 내릴 것이어서 모든 물건들을 벽에 매어 두어야 할 것이다. 공항바닥을 이런 마루로 만들었다면 무거운 여행용 짐보따리들을 쉽게 끌고 다닐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런 마루바닥을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마루가 깔린 세상에 살 수 있을까? 아마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나는 상온 초전도체는 불가하다고 생각한다. 최선은 액체질소를 냉각제로 사용할 수 있는 절대온도 80도 정도에서의 초전도체다. 물론 이마저도 실용화까지는 아직 요원하다.
우리가 IT 기술을 개발하여 이메일이나 동영상을 수초안에 지구 반대편까지 전송하는 기술을 누리다 보니 들게 된 착각이 상온 초전도체 아닐까? 질량이 없는, 사용 에너지가 극히 적은 신호는 그렇게 쉽게 보내고 받을 수 있지만, 질량체나 에너지는 다르다. 인간이 생활하는 보통 환경에서 저항 없는 (마찰저항이든 전기저항이든) 질량체나 에너지를 (극소량이 아닌 다량으로) 보내고 받는 것은 불가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IT신호를 통해 피자나 양념치킨을 주문하는 것은 마법처럼 손가락 하나로 가능하지만, 그 (질량체) 음식들 배달은 손가락 마법으로만 절대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최첨단 기술 시대에도 여전히 (에너지를 사용하여 질량체인 자기 몸을 움직이는) 배달원을 우리는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것이다. 마찰이나 저항은 불필요한 손실이 아니라 “수고가 있어야만 어떤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자연법칙의 대표적 성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저항 없는 초전도체를 이미 만든 지 오래되었고 이제 더 높은 온도에서 작동하는 것만 찾으면 되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생각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초전도체를 알고 보면, 그 낮은 온도를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에너지가 커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꼴이다. 즉, 극저온을 만드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서라도 초전도가 꼭 필요한 곳에만 사용되는 것이 현재의 초전도체다. 마치 한쪽을 잃어야 한쪽을 얻게 되는 에너지 보존법칙과 유사하다. 이와 비슷하게, 과학이 폭발적으로 발전한 20세기를 지나오면서 기술이 우리 삶을 편하게 해 준 것들이 셀 수 없이 많지만, 아마도 셀 수 없이 많은 또 다른 어떤 것을 우리는 잃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고 싶어서, 이 첨단시대에도 여전히 종교시설에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새해가 되면 점집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문전성시인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