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전략
- 996
- 17
- 1
우리모두가 알듯이, 안정과 명예가 동시에 보장되는 직업으로 대학교수만한 자리가 없다. 하지만 세월이 조금 더 지나면 ‘없었다’라는 과거형으로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학령인구감소, 인터넷-유튜브 등의 비대면 배움의 수단들이 늘고 있고, 앞으로 AI의 쓰나미까지 덮치면 대학은 많은 위협을 받게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대학이 전부 문닫을 일은 없을 것이지만 과거에 누려오던 상아탑의 지위는 많이 축소될게다.
뉴욕타임스에 미국에서 대학진학자들이 꾸준히 줄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10년전에 74%의 젊은이들이 대학졸업장은 중요하다고 답변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41%만이 대학졸업장이 중요하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고교 졸업후 70%가 대학을 진학했던 것도 이제 62%로 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동일기간 비교에서 영국과 캐나다는 대학생 숫자가 미국과는 반대로 12~15% 늘었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당연하게도, 미국대학의 학비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자국민 기준으로, 연간 학비는 영국은 약 1만 파운드, 캐나다는 5천 달러정도지만, 미국의 아이비 리그는 6만달러에 육박한다. 주거비용을 포함한 4년 졸업까지 소요비용은 35만 달러... 만약 학부졸업 후 연간 학비만 7만달러인 4년 과정의 의과전문대학원을 선택하면, 그는 학부와 대학원 8년동안 1백만 달러를 교육비용에 지불하게 된다. 미국 의사들은 백만달러만큼 본전을 뽑아야 하니 미국의 의료비가 상상을 초월하는 고가인 것이다. 그래서 의료기술 최고 선진국이지만, 의료서비스 최악의 후진국이라고 한다. 대학들이 장학금을 많이 준다고 늘 선전하지만, 아주 가난하지 않으면 해당사항 없는 이야기다. 심지어 많은 대학들은 여러명에게 약간의 장학금을 주고는 전체 학생을 분모로 하고, 장학금 수여자들 숫자를 분자에 올려, 장학금 혜택자의 비율을 선전해둔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총학생 분의 장학생 비율을 30%라고 선전하지만, 실제로 전체 학생의 총학비를 분모에 두고 장학금 총액을 분자에 두면 30% 보다 훨씬 적다. 요즘 마켓팅 꼼수의 비법은 ‘부분적 진실’ 이라는 신공을 구사한다. 어쨌든 미국대학은 그럭저럭 잘 굴러갈 터이니, 염려 붙들어 매고 한국대학 이야기를 해보자.
얼마전 여러 개의 한국 대학교들 웹싸이트에 들어가본 적이 있다. 소위 명문대라는 대학이나, 그렇지 않은 대학이나 모두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는 간판용어는, ‘연구 중심대학, 세계를 품은 대학’이었다. 엄연하게 대학은 교육기관인데, 이제는 교육보다 연구에 더 치중하는 기관이 되고 싶어한다. 이유는 뭘까? 너무 저속하게 표현함에 먼저 양해를 부탁한다. 학비를 내는 학생들은 이미 잡아둔 물고기이니까 교육에 관심이 덜 하고, 연구를 충실하게 하면 학비 이외에 연구비를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받아올 수 있어서, 재단이 교수들을 쥐어짜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또 영구적으로 되풀이되는 질문도 있다. 일전에 중앙대학교 재단인 두산그룹이 좀 더 실용성 있는 학과를 늘리려고 했을 때,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지 취업준비 학원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과연 이 주장은 온당할까? 나는 학문의 전당인 대학은 일반대학원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벌써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취업준비학원이 되었다는 것이 대학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도 옳지 않다. 그들이 취업한 기업들이 수출하여 대한민국이 오늘날 현 위치까지 왔기 때문이다. 대학이 취업학원화 되는 것에 문제가 있다면 취업시험을 좀 더 수준 있게 만들어달라고 기업에 요구하면 된다.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라는 생각은 중세적 대학관이다. 당시에 학문은 수도원이 전담하다가 르네상스 운동으로 학문이 개방되어 대학으로 많이 넘어와, 대학은 지식창고와 개화역할을 담당했다. 그후 인쇄술의 발달로 지식의 보편화가 이루어지고난 후부터 대학은 취업을 위한 기관으로 탈바꿈해왔다. 오늘날 미국의 로스쿨이나 의과전문원들은 독일의 영향을 받아 생기기 시작한 것인데, 전형적인 전문직 취업준비과정이다. 프랑스에서도 과거에 이름을 떨치던 소르본느 대학은 (의대와 법대를 제외하면) 지금 교양을 가르치는 개방대학처럼 운영되며, 엘리트 학생들은 취업준비학교인 그랑제꼴로 진학한다. 대학이 취업준비를 시키는 것을 대학의 타락으로 볼 필요는 없다. 전문직 종사자가 되려는 그들에게 철학과 윤리까지 좀 더 가르쳐서 내보내려는 균형감각만 있다면 충분하다.
특별히 필자가 눈여겨보는 부분은 대학이 취업준비과정인지, 학문탐구의 장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연구중심대학의 기치 아래 교수들이 연구에 너무 많은 역량을 집중하기 때문에 대학학부교육의 부실화가 심각해보인다는 것이 주안점이다. 그래서 역량이 안되는 대학은 석-박사과정을 없애고 학부교육에만 충실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즉, 수도권의 10개 정도와 지방국립대학들만 박사과정까지 개설하고, 그 아래 대학들은 석사과정까지, 그리고 더 아래 대학들은 학사과정만 개설하는 것이다. 요즘 학생들을 구하기 어렵다는 비수도권 사립대학들은 아마도 “우리는 석박사과정 다 없애고 여러분 자녀들의 학부교육과 취업경쟁력에 교수진들의 역량을 모으겠습니다!” 라고 선전하면 학부모들이나 학생들에게 훨씬 설득력있는 멧시지로 전달되지 않을까 한다.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지식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학문의 전당’이라는 긴 담뱃대는 내려놓고, 학생 모두를 One-to-One으로 챙기는 대학으로 거듭나면 이 두려운 시대를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
매우 실용적인 제안입니다. 요즘 학생이 없어서 문닫게 생긴 대학들이 많거든요. 벚꽃피는 순서로 대학이 문을 닫을 거라는 웃픈 이야기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