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충과 성충 그리고 사춘기와 MZ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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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과 성년의 모습이 확연하게 다른 곤충과 동물이 있다. 누에는 흰색 지렁이 모양에서 변화하여 갈색 번데기가 되었다가 종내에는 흰나방으로 환생한다. 물고기처럼 아가미 호흡을 하던 올챙이가 꼬리를 떼고 개구리가 되는 것도 대표적이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말처럼 자신의 현재 모습이 과거와 확연히 다르게 ‘떡상’한 경우, 누구도 과거를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어린 시절 ‘행배’ 담뱃불 붙여주던 김판호가 더 이상 과거의 김판호가 아니라고 주장하다가 행배에게 “오늘 좀 맞자!”라는 대사와 함께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장면은 언제나 기억이 새롭다. 조폭영화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기대사는 역시 “니, 마이 컷네!”다. 더 이상 뒤에 꼬리 달고 옹졸하게 헤엄치는 올챙이가 아니고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개구리라고 주장하는 옛날 똘만이에게, 옛날의 영광을 잃어버린 ‘행님’이 하는 말이다. 우리 말에서는 약간 지위가 격상되면 꼬리를 뗏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드디어 오늘부로 수습사원이라는 꼬리표를 뗏습니다!’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아마 수습사원이라고 적힌 이름표를 뗏다는 의미겠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꼬리가 떨어진 올챙이를 생각하게 된다.
가정에서 자식을 키우거나, 직장에서 신입사원들을 가르치거나 매 한가지로 벽을 마주하는 것 같은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모나 상급자가 모든 권한을 쥐고 마음대로 하는 것 같지만, 사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혼자서 속 썩는 일밖에 없다. 그러면 자녀나 신입이 다 악마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서로의 입장과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자녀나 신입들과 갈등이 있어서 대화를 시작하면 몇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 나는 이 규칙을 따르면서 아이들과 갈등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규칙이라야 대단한 것이 아니고, 일단 상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고, 드러내더라도 서서히 육하원칙에 의해 드러내는 것이 좋다. 이런 상태에서 대화를 시작해보자.
우선 첫번째 원칙은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갈등을 유발했는지 서로 확인하는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안에만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년부터 내가 쭉 참고 지켜봤는데…”라는 식으로 범위를 넓히게 되면, 합의점에 이르기 힘들다. 오늘 있었던 구체적인 일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좋다.
두번째 원칙은, 사안이 무엇인지를 서로 확인했으면 부모나 상급자가 먼저 말하지 말고 먼저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형식적으로 상대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까지 해가면서 적극적으로 경청해야 한다. 요즘 한국 국회에서 대정부 질문하는 것을 몇 번 볼 기회가 있었는데, 짜증나는 장면들을 매번 보게 되었다. 국회의원들이 질문을 해놓고는 상대에게 답변할 기회를 안주는 장면들이다. 그냥 당신이 잘못한 것이라고 호통만 치고 말든지, 왜 물어봐 놓고는 답변하려면 끊는지 모르겠다. 통상 질문은 짧고 답변이 길어야 정상적 대화인데, 대한민국 국회의 대정부 질문은 질문으로 시간을 거의 소진한다. 철학시간도 아닌데, 왜 질문만 있고 답변이 충분없는지 모를 일이다. 난해한 방정식을 푸는 행위가 정치인지라 선진국들도 무능하기는 다 비슷하지만, 토론만은 이렇게 안한다. 우리는 혹시 자녀나 부하직원을 혼쭐내주려고 할지라도 일단 변명권만큼은 반드시 보장해주자. 프랑스에 관용이라는 정신을 심어준 볼테르의 말을 한 번만 더 새기자. “나는 당신의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서는 목숨 바쳐 싸우겠소!”
세번째는 내 입장을 이야기한 다음, 조정하여 합의사항을 이끌어내고 Action Items(실천사항)을 정하는 것이다. 한 번의 합의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소박하게 잡아야 한다. 그래서 합의사항 자체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를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쉽게 말하면 ‘꼰대와도 솔직한 대화는 가능하구나…’하는 안도감을 상대에게 주는 것이다. 우리 세대에 한국사회가 너무 빠르게 발전했기 때문에 자녀들이나 MZ세대와의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의 올챙이 시절을 생각해보면 많은 도움이 된다. 나는 애들이 사춘기 시절에 볼을 비비거나 하는 등의 행동으로 몸에 손대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때는 당황하기도 했고 화도 났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역시도 “내 새끼!”하시면서 어머니가 엉덩이를 두드리는 것이 너무 싫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애들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내자식이라고 너무 무례하게 대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올챙이 시절만 기억해도, 조금 더 행복하고 조금 더 큰 공감능력을 가진 개구리가 될 수 있다.
젊은 세대와 소통 잘하는 법을 적어주셨네요. 꼭 젊은 세대 아니더라도 인간관계에 폭넓게 적용할 수 있을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