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적 페미니즘, 실천적 페미니즘
202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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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cjun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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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대에 들어와서 한국사회는 여러가지 근본 변화에 직면하면서 그 변화에 잘 대응해왔다. 민주화 이후 최대 고비인 IMF를 무사히 넘겨 이제는 거의 모든 방면에서 선진국 대접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외부적인 변화에 대응하느라 내부적으로는 전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여전히 떠안고 있다. 주택문제와 교육문제가 가장 대표적인데, 이제는 인구감소문제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모두가 알듯이 인구문제도 결국 주택문제와 교육문제가 초래한 당연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배경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면 또다른 두 개의 문제가 인구감소라는 국가적 재앙에 계속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데, 하나는 수도권 집중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준비 안된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전통 유교사회인 한국에서 여성의 사회적 기회를 남성과 평등하게 보장하자는 페미니즘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정신이라는 것에 필자도 동의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식에서는 오히려 여성들의 권리보다는 의무만 더 가중시킨 방향으로 진행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IMF 전까지 한국은 계속 고도성장을 유지해왔다. 70년대와 80년대에는 두차례의 오일쇼크와 군사정변 시기를 제외하면, 해마다 10~15%까지의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하지만 90년대 들어서면서 성장률은 계속 내리막을 걸어 지금은 3% 정도다. 언론은 별다른 설명없이 낮아진 성장률을 큰 문제인 것처럼 주장하지만, 사실 너무 당연한 현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참 성장하는 사춘기 때 일년에 10센티 이상 키가 자랄 때가 있지만, 20대말에 이르면 많아야 1센티 정도 자라고 더 나이가 들어 50대를 넘기면 오히려 키가 줄어든다. 경제도 비슷하다. 후진국을 벗어나는 개발초기에는 10%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보이지만, 점점 잘 살아지면 성장률은 감소하기 마련이다. 북미 또는 서유럽 선진국들은 그래서 5%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보일 때가 거의 없다. 이미 키가 다 크고 나면 많이 먹어도 배만 살찌울 뿐, 키로 가지 않는 것처럼 경제도 비슷하다. 그런데 경제상태가 좋은 것 (현재 잘 사는 것)과 경제 성장률이 좋은 것(가난하다가 잘 살아지고 있는 중인 것)은 사회적으로 아주 다른 현상을 만들어낸다. 가난한 시기를 지나면서 잘살아지는 시기로 접어들 때에는 외국에서 주문이 밀려와 일감은 많은데, 다행하게도 아직은 임금이 많이 오르지 않은 상태여서 일자리가 많다. 기술은 선진국 수준보다 모자라지만, 임금이나 물류비용 등 생산단가는 선진국에 비해 엄청 낮은, 즉 바이어의 입장에서 보면 가성비가 아주 좋은 상태다. 그러다가 선진국에 접어들면 임금이 오르고 물류비용도 오르고 인권향상으로 노동법도 엄격해지면서, 점점 경쟁력을 잃어가면서 일자리도 줄어든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일자리가 줄어드는 저성장 시기에 접어들었는데, 마침 이 시기에 여성들도 대학을 졸업하면 모두가 직장을 구하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시어머니될 사람들이 직업 없는 예비 며느리를 싫어한다는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외국에 사는 필자의 귀에도 자주 들려왔다. 일자리는 고성장 시대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어든 저성장 시대인데, 노동시장에는 여성들이 대거 뛰어들어 취업희망자는 두 배가 된 것이다. 대충 어림짐작으로 계산해보면 양질의 일자리는 두배로 줄어든 반면, 양질의 취업을 원하는 인구는 두배로 늘어나 80~90년대에 비해 경쟁이 네 배로 치열해진 것이다. 이러니 취업이 힘들 수밖에 없다.
여성이 취업의 문을 뚫었다면, 그리고 결혼을 했다면 그녀들은 우리 사회가 독려하는 바에 따라, 유리천장을 부수는 꿈을 꿀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모두가 꿈을 이룰수는 없다. 모 아니면 도, 즉 대기업에서 살아남아서 올라가든지 아니면 실업자가 되어 경력단절 후 젊은 날의 회한을 품고 살든지 선택은 두가지의 극단만 가능하다. 파트타임이나, 승진과는 무관한 전문가나 조력자로 남거나, 주 2~3일 재택근무 또는 자녀출산 및 양육 후 다시 돌아오는 것은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일자리가 많은 수도권에 살려고 하니 주거비용이 너무 비싸서 사교육비까지 감당할 엄두가 안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출산을 늦추다가 출산시기를 놓치고 무자녀 부부가 되기 쉬울 것이다. 필자가 자녀를 키우던 90년대에도 경제적으로나 긴 근무시간 때문에 육아가 힘들었는데, 그때는 외벌이로도 생활이 가능해서 그나마 자녀양육이 가능했었다. 지금의 상황처럼 맞벌이를 해야 하고 과도한 주거비용을 감당하려면 출산과 교육문제를 쉽게 결정하기 어려울 것같다.
이런 상황까지 이르러 과거와 비교해보면, 여성들이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은 페미니즘의 긍정적 측면이지만, 전통적 가정을 꾸리고 두 명 이상의 자녀양육을 바라는 여성에게는 정말 가혹한 시스템이다. 정치권에서는 멋있게 유리천장을 뚫었다는 여성들을 전면배치하여 장차관이나 대기업 임원들에 다수를 앉혔지만, 그런 행동은 퍼포먼스 이상의 효과를 내지 못한 것이다. 그동안 한국사회의 페미니즘은 구호는 화려했지만, 실행에 있어 촘촘하지 못했다. 오히려 구호를 외치는 목소리를 좀 줄여 보수적 남성들의 반발이나 역차별이라는 논란을 잠재우고 좀더 치밀하게 출산-양육과 함께 커리어를 병행할 수 있는 장치들에 주목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미 여성들의 사회활동증가로 출산율이 낮아진 것을 경험해본 유럽 선진국들은 실효성 있는 제도들을 운영중이다. 필자가 15년동안 일했던 프랑스에서는 출산휴가를 회사로부터 유급, 국가로부터 유급 그리고 무급으로 나누어 아주 장기간 사용가능하다. 특히 국가로부터의 유급이 중요해 보이는데, 자신소속 회사가 아닌 국가가 임금의 대부분을 지급하기 때문에 회사의 압박에서 상당히 자유로울 수 있다. 또한 출산이나 육아휴가를 회사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등기우편으로 통보만 하면 되는 방식으로 근로자들의 권익을 높여두었다. 문화와 역사가 다르니까 다른 나라의 경우를 그대로 카피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참고할 만하다.
페미니즘은 결국 여성들의 사회적 평등을 달성하는 것이겠지만, 각 성의 사회적 역할과 신체적 차이를 고려하여 일괄평균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평등으로 맞추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남자 아니면 여자이기에 이 문제에 엄격한 중립적 위치에 놓인 사람은 없다. 그래서 페미니즘에 관한 토의는 득보다 실이 많은 주제이고, 대부분의 학자들도 피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남자 전문가들의 경우 자칫 잘못 말하면 마초로 낙인 찍힐 것이고, 여성이 페미니즘을 세게 말하면 ‘드센 여자’로 낙인 찍힐 위험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구호는 요란하지만 극단적이지 않은 차분한 토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 그리고 다른 더 큰 문제는 수천년동안 사회는 남성들에 의해 지배되어 이미 운동장이 아주 많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격한 여성운동가들은 이 기울어진 운동장의 각도를 한 번에 돌려놓으려고 하니 무리가 따르고, 남성들은 익숙한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는 것이라고 인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하간에, 개인이나 사회나 남성과 여성은 서로의 적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좋은 반려자이거나 동료라는 점을 늘 확인해보아야 할 것이다.
(혹시 필자를 마초근성을 교묘하게 숨긴 ‘꼰대’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변명하고 싶은 일화가 있다: 거의 20년전쯤에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초청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일본을 이길만한 우수한 로봇 만들거나 좋은 논문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카이스트 기계공학과의 프로젝트는 학생 1/3이상을 여성으로 채우는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카이스트 기계공학과에 여학생이 1/3이 되었을까요? 20년이 지났지만 아직 아닐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