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새해 아침에
2005-01-04
남궁규철
- 2021
- 0
2005년 새해가 밝았다. 새로 맞이하는 닭의 해에는 어떤 일이 있을까? 그저 좋은 일만 더 일어나길 바라는 것은 모든 이의 마음일 것이다. 특히나 최근에 좋지 않은 일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2004년의 마지막은 동남아시아의 지진과 해일 사건으로 인해 온통 세상이 혼란스럽고 뒤숭숭하였다. 피해가 엄청나게 컸던 것은 피해 당사국들이 개발도상국들로서 이러한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응책이 취약했다는 사실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이 사건에서 운명을 달리한 모든 분들은 어쩌면 그럴 필연적인 운명을 타고 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단지 운이 없어서라고 믿고 싶어 한다. 같은 현장에 있으면서도 살아남은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사건을 보면서 문득 한국 이공계의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런 비약도 있을까 하고 생각하겠지만, 따지고 보면 세상의 어느 일도 서로 연관되지 않은 경우가 있으랴? 사실 지진이나 해일과 같은 사건은 천재지변으로서 우리의 주관적 의지가 개입됨이 없이 일어나는 사건이고, 이공계 위기는 부지불식간에 사회 구성원들의 의도와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점에서 둘은 서로 근본적으로 다르게 보인다. 하지만, 천재지변이 불러 일으키는 사회적 파장을 보는 순간 바로 이공계위기라는 현상은 이와 아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공계의 위기’로 운위되는 사회적 현상은 기실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우리 사회 대중의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매우 일천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것임을 알수 있다. 오늘날의 현대 문명이 과학기술없이 과연 어떻게 가능하랴. 매일 매일의 일상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너무나 분명히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구태여 슈퍼 컴퓨터나 태아를 살피는 초음파 진단장치 등의 예를 들 필요도 없다. 당신이 인구 1000만명이 사는 도시에 살면서 매일 아침 20층 아파트에서 잠이 깨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마시고 기분좋게 배설을 하는 것, 그리고 전동차나 승용차를 타고 출근을 해서 30층 빌딩에서 일을 한 후 집에 돌아와 새벽까지 대낮처럼 환하게 집안을 불밝히고 생활할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과학기술의 힘없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럼에도, 대다수 대중들에게는 우주선을 띄워서 먼 행성의 비밀을 밝히는 것 같은 최첨단의 일들만이 무릇 과학기술의 중심 주제요 힘인양 인식되고 있는데, 필자는 바로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가로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대규모 해일이나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마치 마취에서 풀린듯 지진학자나 지질학자 혹은 해양학자가 어떤 연구를 하는지 정신을 차리고 살펴본다. 그들이 어떤 장비를 사용하고 있고, 또 지진이나 해일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대비책이 필요한지 등 그들이 제시한 제안들을 살핀다. 그리고 (오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인기없는 이공계 분야의 하나가 되어버린, 하지만 현대 도시 문명의 주춧돌의 하나인) 토목공학관련 종사자들이 무엇을 하는지 정신차리고 살펴 본다. 신문과 방송이라는 대중 매체는 이러한 대중들의 마취와 일시적인 해독에 큰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의 상업성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그들이 오락 프로그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반면에 훨씬 적은 시간만을 과학기술 교양 프로그램에 할당하는 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 조직을 경영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현대 문명에서 과학기술이 갖는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이공계 위기와 관련해서, 우리 사회에서 과학기술자들에 대한 대우가 좋으냐 나쁘냐의 문제 또한 단지 현상적인 것일 뿐이다. 과학기술자들을 잘 대우해 주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정부의 처방이 나간다면 그것은 문제의 본질에서 비켜서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중들은 늘 곧 다시 쉬이 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런 처방은 일시적인 효과밖에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 과연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 구태여 한마디로 말하자면, 늘 대중이 깨어 있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지속적으로 진지하게 찾아 실천하는 것이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취해 나가는 것이 사실은 궁극적인 해결책이다. 올해에도 내년에도 그리고 내후년에도 계속… 그러나 지금의 우리 사회의 정치가들이나 행정가들, 그리고 경제 및 경영 분야를 좌지우지 하는 사람들의 발언과 글들을 보면 이런 해결책과는 거리가 먼 생각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그 책임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너무 많은 듯 하다. 그들에게서 올바른 해결책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기우일까. 그럼 도대체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은 오늘의 이공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디서 어떻게 희망을 찾을 것인가? 지난 연말 지진-해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에 속하는 스리랑카의 경우, 긴급상황에 대한 대응방안을 미처 준비해 두지 못한 행정당국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는 피해복구와 관련된 정치와 행정의 공백이 재난의 정도를 훨씬 심각하게 함을 깨닫게 해준다. 다시말해 낙후된 과학기술력이 문제를 키우고 피해를 확대할 수 있지만, 어쩌면 더욱 중요하게 정치나 행정, 경제 및 경영의 낙후함이 그 문제를 훨씬 크게 확대재생산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무릇 이공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은 정치나 행정, 경제 및 경영 분야의 일이 한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스스로 잘 인식해야 한다. ‘이공계 없이는 실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목소리만 커서 이 사회에서 힘쓰고 있다’는 식의 자조섞인 혼잣말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이웃한 중국의 지도자들이 대부분 이공계 출신이라는 등의 부러움 섞인 설명을 할 필요도 없다. 스스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잘 안다고 생각하면, 과학기술자들 스스로 적극적으로 정치에 행정에, 그리고 경제 및 경영의 영역에 나설 일이다. 이게 아니라면 과학기술에 문외한인 정치가나 행정가, 경제 및 경영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계몽하기라도 할 일이다. 과학기술 및 과학기술자들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 사회 전 부문에서 빛을 내고 지도력을 발휘할 때, 이공계 위기가 진짜 해결될 희망이 보이는 것이 아닐까? 과학기술자의 길을 선택한 것은 행운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곧 올 수 있을까? 바로 우리 자신을 향한, 우리 자신을 위한, 우리 자신의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