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대중화에 대한 독일과 한국의 견해 차이
2002-02-26
이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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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자들의 관심을 끄는 매력적인 구호 중 하나가 ’과학의 대중화’입니다. 여기서는 독일사람들이 생각하는 과학의 대중화와 한국에서 말하는 과학의 대중화를 비교해보고, 과학의 대중화는 과연 누구에 의해 그리고 무엇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 과학의 대중화’에 대해서는 과학기술자라는 특정 계층이 독점한 지식을 일반에게 공개하거나 전달하여 같이 나누고, 독점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과학기술의 오남용을 막자는 주장에서부터 미래의 국가발전에 필수적인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많은 과학기술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인들에게 홍보를 하자는 주장까지 여러 스펙트럼이 존재합니다.
독일 좌파연정의 중심축을 형성하는 사회민주당(SPD)의 과학부장관이 2001년 여름 베를린에서 ’생명과학의 해(the year of life science)’ 행사를 맞이하여 [베를린 모르겐 포스트]지와 인터뷰한 기사를 읽어보면, 왜 과학의 대중화가 필요한가에 대한 독일 정부의 시각을 두 가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과학에 대한 판단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둘째, 행사를 주관하면서 과학자들을 설득하여 연구결과를 발표하게 함으로써 과학자들이 뭔가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일반인들에게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장관은 나아가 연방과학부는 과학과 사회간의 심연을 메꾸는 일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 실험실과 생산업체, 백화점, 학교 사이의 가교역할을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과학 관련 직업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행사는 생명과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 특히 인간배아와 관련한 –을 고취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학이 필요하다는 취 에서 열렸고, 독일은 원료생산보다는 지식 가공에 중점을 두는 나라이기 때문에 과학의 대중화는 자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절대 필요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대중화와 관련한 논란은 연방과학부 장관의 말에서 핵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과학기술의 윤리적인 면은 그 사회의 가치관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과학기술 산물의 가치는 사회적인 가치관에 비추어 판단해야 할 일이며 과학기술자 스스로 내릴 결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도로 발달한 오늘 날과 같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과학기술자는 한 직업인으로서 존재할 뿐 과학기술자 혼자 모든 것을 고민할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둘째, 과학의 대중화는 한 사회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긴 하나 과학기술자가 직접 나설 일이 아니라 과학기술자와 사회를 연결하는 기구가 따로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예들 들어, 과학기술부나 학회, 과학단체 등이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자들 자신은 과학의 대중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독일이나 서구의 과학기술자들과 한국 과학기술자들간에는 견해 차이가 존재합니다. 당사자들에게 직접 확인하진 못했으나 대중매체를 통해 밝힌 말이나 발표된 글, 학회에서 주장한 내용 등을 자료로 간접 비교를 해보았습니다.
먼저, ’과학의 대중화’라는 검색어로 한국 검색엔진에서 찾아보면 2천-3천개 이상의 검색결과가 나옵니다. 한국도 선진국이라 자처하므로 과학의 대중화라는 단어가 수 천 번 나온다 하여 별반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베를린공대에서 찾아보면 전체 13개의 검색결과가 나오나 자연과학분야가 아니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입니다. 한국의 과학기술원(KAIST)에서 찾으면 무려 5,132건의 결과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주 놀랍습니다.
이번에는 독일물리학협회에서 찾으면 검색결과 0이고, 한국 물리학회는 ‘대중화’라는 단어로 18건, ‘과학의 대중화’로 6건의 결과가 나옵니다. 계속해서, 한국의 과학잡지인 과학동아에서 찾으면 ‘대중화’라는 단어로 17개가 나오나 독일의 과학잡지사에서 찾으면 검색결과가 0입니다. 또, 한국 과학기술부에서는 72개, 독일 연방과학부에서는 5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검색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뚜렷합니다. 한국에서 과학의 대중화는 요원의 불길처럼 과학기술계를 강타하는 화두이고 독일에서는 그렇지 않다라는 점입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검색결과입니다.
이 결과는 과학기술자가 전문직업인으로서 자신의 연구에만 전념하고 있는 상황인가, 아니면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여 자신의 연구에 전념하는 외에 다른 일을 하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느냐의 차이를 반영합니다. 과학기술자들이 자신의 영역 안에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잘 인식하고 있느냐, 또는 연구성과물을 생산, 분배 그리고 활용을 조정하는 분야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고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독일에서도 물론 과학의 대중화로 유명했던 훔볼트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그 당시는 1820년대로 과학자라는 용어도 없었고, 전문 직업인이 아니었으므로 대학교수를 중심으로 황제부터 시작하여 일반인들에게까지 공개 강연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전문 직업인들이기 때문에 과학자에게 대중화에 나서라 강요할 수도 없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요즈음 독일에서는 ‘과학이 사회로, 사회가 과학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science in dialog’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런 대화를 주관하는 주체는 현장의 과학기술자가 아닌 정부조직 나 학회, 민간단체 입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대한화학협회의 ‘21세기 화학을 바라보며’라는 특집 회보에는 몇몇 과학자와 언론 종사자들이 모여 토론한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전반적인 논조는 과학의 대중화는 ‘국력신장을 위해 필요하다’와 일반인들의 ‘과학적인 마인드를 위해 필요하다’ 입니다. 여기서 논리적인 연결이 별로 와닿지 않는 몇가지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국력과 직결된다는 첨단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과학의 대중화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현재 과학기술 인력 확보를 위해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가를 흐리게 하는 논점입니다. 첨단과학기술이 실제로 빛을 보기 위해서는 현재 과학기술계에 있는 인력에 투자를 하거나 연구환경을 개선시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우선 순위이지 첨단기술개발을 위해 확실치 않은 대상에 투자하여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또한 과학적인 마인드 형성을 위한 전반적인 환경 성숙과 과학교육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일상생활을 과학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서구사회와 같이 일단 자신과 환경을 합리적으로 분석하는 태도가 자리잡아야 가능한 것이지, 과학적인 지식이 아무리 머리 속에 쌓여 있다 해도 자신의 생활과 별로 상관이 없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또, 과학교육은 제도교육을 통해 특정한 학생들에게 특정한 커리큘럼으로 교육을 시켜 과학기술자로 키워내거나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불어 넣는 일로서, 이것은 교육과 관련된 일이지 과학의 대중화와는 별로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과학을 대중화시킬 목적으로 과학교육을, 또는 과학교육을 통해 과학의 대중화를 이룰 수 있다고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회보는 왜 과학자들이 나서서 과학의 대중화를 하지 않느 공박을 하고 있습니다. 학회 간부나 언론인들은 이렇게 말할지 몰라도 한국 실정으로 볼 때 근본적으로 잘못된 견해라고 봅니다. 현재 과학기술자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처우나 환경개선이 더 우선이지, 사회적인 처우도 열악하고 연구를 하고 싶어도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과학기술자에게 과학대중화에 앞장서라는 주문은 지나친 요구입니다.
독일 과학기술자들 역시 과학 대중화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나 자신들이 직접 나서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어진 연구과제를 잘 수행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정부의 입장은 과학기술자들에게 ‘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하라’입니다. 정부는 국민의 세금을 잘 활용해야 하고, 국민은 세금이 올바르게 사용되고 있는가를 확인하려 합니다. 따라서 정부는 연구소나 실험실에 갇혀있는 과학기술자들을 활용하기 위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촉구를 하나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독일의 과학기술자들은 정부가 과학과 사회를 조화시키는 역할(coordination)을 해야 한다는 믿음이 강하나, 검색엔진의 결과로 엿볼 수 있듯이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은 자신들이 직접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야 한다’는 관념을 강하게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학의 대중화가 중요하다는 인식은 독일이나 한국에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체와 대상을 명확히 하는 부분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과학의 대중화가 국가 발전에 중요하다는 막연한 인식 단계에서 벗어나 현대 사회에서 과연 '누가 그 역할을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역할을 제대로 실행하는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