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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비행기

    요즘 매달 미국에서 비행기 타고 유럽으로 출장 가고 있습니다. 가끔 타는 비행기는 기분을 약간 부풀게 하지만, 너무 자주 타는 비행기는 그야말로 고역입니다. 닭장같이 좁은 자리에 사람을 가두어 놓고 계속 먹여대는 꼴을 당하면서, 인간의 삶이 환경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창밖을 봅니다. 이 큰 새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또 그들이 들고 온 저 무지막지한 보따리와 가방들을 다 싣고 수 천 km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날아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신기합니다. 저는 비행기 부품을 제작하는 공장에서 몇 년간 일한 적도 있어서 비행기 제작공정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만, 머리에 든 지식과 마음에 담긴 믿음 간의 거리는 아주 멉니다. 날개 중간에 흔들리는 부분은 일부로 너풀거리게 만든 부분인데도 꼭 누가 실수로 나사를 조여두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미국작가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라는 소설로 더욱 유명해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간도 새처럼 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열심히 연구했지만, 결국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인간은 분명 새를 보고 날아보고 싶은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새 때문에 날지 못했습니다. 날개짓을 해야만 날 수 있을 것으로 알고 날개짓 하는 기구에 너무 집착했었기 때문입니다. 다빈치 역시 날개를 젓는 기구를 고안했으나 실현하기에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러다가 수 백년이 지난 20세기 초에나 겨우 라이트 형제의 고정된 날개가 인간을 날게 해줬습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아주 잘 나는 새들은 날개짓을 자주 하지 않습니다. '물 찬 제비'의 주인공 제비도 한 번 날개짓을 하고 나서 한참을 날고, 창공에서 6.0의 시력으로 지상의 먹이를 살핀다는 독수리도 날개짓을 많이 하지 않고 글라이딩을 주로 합니다. 긴 거리를 날기보다 걸핏하면 나뭇가지에 앉아서 시간을 죽이는 참새나, 몸이 뚱뚱해서 공중부양이 어려운 기러기들만이 날개짓을 많이 합니다. 꿀을 빨아먹는 동안 제자리에 떠 있기 위해 엄청나게 날개짓을 해대는 벌새도 있습니다만, 속도가 빠르게 나는 새들은 날개짓을 자주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인간은 새가 되고 싶은 욕망으로 날게 되었지만, 새의 날개짓에 너무 집착해서 정작 비행이 늦어졌습니다. 새를 카피하되 꼭 그대로 할 필요가 없었거나, 새의 날개짓을 좀 더 자세히, 종류별로 관찰해 봤더라면 비행기의 발명은 훨씬 빨라졌을 것입니다. 위의 예처럼 우리에게 힌트를 준 어떤 표준이 사실은 우리가 더 발전하지 못하게 하는 문턱이나 덫이 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일종의 강박관념이나 고정관념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사실 항상 애먹이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 아니라 아주 비슷한 것들입니다. 연구를 하면서도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이런 고정관념들을 깨지 못해서 결국은 과거의 답습이나 남의 수준까지만 가고 멈추어 버린 것들은 없는지요? '분명히 여기까지는 이렇게 가야 해!'라는 전제조건에는 문제가 없는지요? 앞에서 힌트를 얻은 방법은 이제 접고 다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요? 연구하는 사람의 자세에서 중요한 것은 Why? 뿐만 아니라, Why not? 이라는 반골기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새에서 힌트를 얻었지만, 새가 결국에는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비슷한 것, 어중간한 것이 생각의 점프를 막는 가장 큰 적이었던 경험이 다 한번쯤은 있으시죠? 여태까지는 이렇게 왔지만, 이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백지상태에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날개는 필요하지만, 날개짓 없이 날 수 있는 길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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