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라는 책이 나온지도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정책자나 기업가들은 이 책을 마치 우리나라 산업정책의 성경책인 양 옆구리에 끼고 다녔습니다. 덕분에 정보화 시대를 잘 따라 잡았고,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책에는 교육과 산업의 관계 등, 상당한 혜안을 보여주는 주옥 같은 내용이 들어있습니다만, 결정적인 오류도 있다는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1984년에 책을 내면서 저자는 정보화 시대에는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원을 사용할 것으로 예측했었습니다. 그 날로부터 4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정보화 시대는 도래했지만 에너지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정보통신이라는 장사로 쏠쏠한 재미를 보는 동안 강대국들은 에너지 문제로 전쟁까지 불사하며 큰 돈을 챙겼습니다. 일반 시장만 봐도 여전히 에너지 시장 규모는 막대합니다. 기름값은 계속 올랐고, 별 것 아닌 것 같은 배터리 시장만 해도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포항에 유전이 있다는 허위사실 유포, 그릇된 꿈을 심어주었던 JU그룹의 유전탐사, 기름이기도 하며 아니기도 했던 세녹스 사태, 당장에 산유국이라도 된 것 같은 동해 고체연료 발견 등등 엄청난 에너지 관련 해프닝들이 일간신문에 올려지고 내려지기를 반복하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소식은 기름값 인상 뉴스입니다만, 이 것 역시도 이제 큰 자극이 못되고 있죠. 한국사회에서 에너지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뭔가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 인간처럼 보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받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면서도, 어떤 분들이 “소재가 궁하셨어요?“하며 측은지심의 눈빛으로 저를 볼까 봐 무안합니다. 그래도 누군가가 '소 귀에 경 읽기'를 계속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번 호에서는 다소 딱딱한 에너지 문제를 소재로 골라봤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에너지 문제 해결을 '한 방 정신'으로 추진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아파트나 증권, 복권은 일확천금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에너지 문제는 이 글의 제목처럼 가랑비 전략만이 실질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생각입니다. 행복한 가정이지만, 석유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대체 에너지가 갑자기 출현했다고 합시다.
지금 자동차를 가진 사람들, 제조회사들은 어떻게 될까요? 보일러 회사들은? 정유회사들은 또 어떡하나요? 국가 전체가 살게 되었는데, 그들이 좀 희생하는 것이 어떻냐고 반문하시겠지만, 그들도 다 우리 사회의 성실한 일원입니다. IT에 올인했다가 돈 좀 벌고나니 실업문제도 자동해결되던가요? 아니죠? 마찬가지입니다. 석유가 필요없는 시대가 당장 오지도 않겠지만, 와도 문제인 구석이 많습니다. 그러니 모든 변화는 점진적인 것이 좋습니다. 석유의존도를 서서히 줄여나가는 것이 방법입니다. 풍력이니, 태양열, 조력발전 같은 자연적 대체 에너지가 참 우스워보이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작은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덴마크는 풍력발전으로 전체 전기생산량의 20%를 충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대단합니다만, 중요한 것은 풍력발전 설비 자체를 덴마크가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전기는 전기대로 사용하고 장비는 장비대로 팔아먹는, 꿩먹고 알먹는 장사를 하는 것이죠. 미국에서는 Applied Materials라는 반도체 생산장비 업체가 최근 태양열 발전판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는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US News and World Report, June 25, 2007) 현재는 1Watt 당 $4 정도인 태양열 전지를 2년 내에 $1 정도로 낮춘다는 계획이랍니다. CEO인 Mike Splinter씨의 설명에 의하면 태양열 전지 기술은 반도체 기술과 아주 흡사하여 영역을 늘리기 쉬웠다고 합니다.
반도체 강국인 우리에게도 뭔가 꽂히는 '필'이 있죠? 매출총액이 100억불인 회사에서 현재 태양열 전지 매출액은 4억불. 겨우 4%이지만, 작년에 제로였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성장이라는군요. 제주도에 풍력발전 장치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지역마다 풍력발전 설비를 더 늘리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나라는 겨울에 강풍이 많이 부니까, 에너지 사용이 높은 겨울에 바로 풍력을 이용하는 전략이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요즈음 날씨가 더워져 여름에 에어콘을 많이 사용하는데, 오뉴월 뙤약볕을 태양열 발전에 이용한다면, 정전 부담도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해안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하니, 이 곳에 조력발전을 실험적으로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렇게 3박자로 난리를 쳐봐도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10%나 채울 수 있겠냐고 비판하시렵니까? 우선 10%가 되어야 20%, 50%로 올릴 수 있습니다. 한 방에 해결하려고 언제까지 기다리실려구요? 가랑비도 오래 맞으면 소낙비처럼 속옷까지 젖습니다. 에너지 문제도 이렇게 작은 것부터 지속적으로 가지 않으면 해결책이 없을 것 같습니다. 속옷 이야기까지 나와서 좀 민망합니다만, 점잖빼다가 민망을
넘어 황당해지면 안되지 않습니까? 관계자들이 이런 문제에 좀 더 집요하게 매달리시면 에너지 수급에 강한 내성을 갖춘 사회가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나이키 신발은 안좋아합니다만, 나이키 선전용 카피는 아주 좋아합니다. 카피는 간단합니다.
Just do it!
수소전지 기다리느라 세월만 보내지 말고 위의 3가지 에너지원을 토대로 그냥 한 번 왕창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전창훈님의 글을 항상 잘 보고 있고 마니아 수준입니다. 이 글에 대해서도 전번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제주도의 풍력에너지는 문제가 좀 많은것 같습니다. 풍력발전기가 세워진 곳은 환경적으로 초토화되어버리고, 더구나 풍력발전기로 만들어진 전기는 한전의 전기와 함께는 사용할 수 있어도 대체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아마 기술적인 문제들이 많이 개선되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