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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위조의 두 얼굴

요즘 한국사회에서 워낙 뜨겁게 불고 있는 바람이 졸업장 진위 공방이죠? 우리 과학기술계도 그 잘난 '학위증' 한 장으로 누구는 평생 박사님으로 불리우고, 누구는 “~씨“ 아니면 선생님으로 불리우죠. 서양에서는 박사님도 목사님도, 심지어 장차관도 직위보다는 이름을 불러요. 그래서 우선 겉으로 보기에는 학벌이나 신분 문제가 별로 없습니다. 좌우간 이번 호에서는 저도 학력위조 문제에 간섭을 좀 해보려구요. 우리 사회가 가짜 졸업장을 앞에 두고 '거짓말은 무조건 나쁘다!'는 공격파와 '학력 만능사회가 만든 당연한 현상이다!'라는 방어파의 전투가 요란합니다. 둘 다 맞는 말이죠. 거짓말도 안되고 '학위가 만사'인 사회도 저급합니다. 한편, 저도 얼마 전까지 교육이라는 '제도'를 잘 정립해야 국가가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하게 들리시죠? 하지만 요즈음 제 생각은 아주 약간 달라졌습니다. 교육이라는 '문화'가 잘 정립되어야 나라가 제대로 간다고 말입니다. 즉, 교육은 제도로 고쳐지기에는 한계가 있고, 그 사회의 문화 또는 가치를 반영한다고 본 것이죠. 대학입시를 백 번 뜯어 고친다고 교육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사실, 고칠만큼 고쳐봤고 보완할 만큼 보완했었잖아요? 공정성을 위해 입시성적을 소숫점 두 자리까지 내서 당락을 결정해왔고, 선 지원 후 시험, 수시, 특기 입학, “한가지만 잘 해도...“ 등등 세상에 있는 입시 메뉴는 다 가져다 먹어 봤지만, 여전히 허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교육부가 멍청해서 교육이 이 모양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사람들이 얼마나 학벌에 관심이 많은 지는 사실 상상을 초월합니다. 20세 이상 어른들의 가장 중요한 ID는 '어느 대학 출신'이니까요. 자기의 정체성이자 한계를 다 포함하는 단어가 출신대학입니다. 재미있는 현상은, 학력 차별 타파를 외치는 지성인들이 권위 있는 언론에 글줄이나 쓸 수 있는 자격은 바로 그들의 학력 때문에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학벌 타파를 외치기 위해서도 학벌이 필요한 것입니다. 참 심한 아이러니죠? 그렇다고 그렇게 오랫토록 내려오는 한국인의 '유전자'를 하루 아침에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제넘게도 유전자 조작 없이 학력 문제를 좀 누그러뜨리는 방법을 제시하려구요. 저는 고시제도를 찬성합니다. 그러나 고시만으로 고급 공무원을 선발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고시출신으로 올라 온 사람들 반, 외부 전문가들 반으로 고급공무원 사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요즈음 외부임용제니, 개방임용제니 하는 제도가 있습니다만, 제대로 화끈하게 하는 것 같진 않죠. 공무원만 아니라,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20대 젊은 친구들로 기자를 구성하고나면 그만입니다. 중간에 길을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학력과 경력 두가지가 고려됩니다. 젊을 때는 학력 밖에 없잖아요? 그러니 학력 위주 사회로 가는 것이죠. 우리 과학기술계도 기업체나 연구소 경력자들이 교수들의 1/3 정도를 채우고, 교수들도 40대 이후에 학교를 좀 바꾸어서 다른 대학으로도 가는 풍토가 시급합니다. 한 번 교수가 되면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지만, 한 번 교수가 될 때를 놓치면 영원히 대학으로 들어오지도 못합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마라톤적인 자기개발보다 일찍부터 줄서기에만 신경 쓰게 되죠. 교육문제의 해답은 입시변화가 아니라, 바깥 사회에서부터 시작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변화가 무지 더딜 것 같은 마음이 늦 여름 더위를 더욱 덥게 느끼게 하는군요. 비정상적인 더위가 빨리 물러가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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