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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레닌그라드

러시아 상트 페트르스부르그에 출장갈 일이 있었습니다. 전혀 경험 없는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은 호기심은 있었지만, 추운 겨울이라 망설이다가 결국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공항 약자는 과거 레닌그라드였던 이름대로 LED를 사용하고 있더군요. 함박눈이 내리는 공항을 빠져나오면서 구소련 군복을 입은 안전요원들과 마추칠 때는 기분이 좀 묘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냉전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에게 소련은 지옥이나 악의 축의 다른 이름이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을 묘사한 황석영의 책 제목처럼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가 한참 오래 전인데, 철 지난 이야기로 이제야 호들갑을 떠니 좀 썰렁하시죠?

하지만 저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거리의 조형물, 조각, 건물들의 수준이 빠리와 비교해서도 도저히 밀릴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유물론을 주장하는 공산주의자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것 중 하나가 종교인데, 수많은 러시아 정교 교회 건물들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과격한 혁명가들에게도 일말의 관용이 있었다는 생각이 드니 만사가 혼동스러웠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좀 정신이 든 다음날, 회의 중간 휴식시간에 동료가 어깨를 툭 칩니다. “오늘 퇴근 후 오페라 갈려고 하는데, 동참할 마음 있어?“ 안 그래도 퇴근 후 뭘 해야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습니다. 발레나 교향악단 연주면 더 좋겠지만, 낯선 곳에서 찬 밥 더운 밥 가릴 것 없어 그냥 따라 나서게 되었습니다. 거의 지하 갱도 수준의 깊은 전철역으로 들어가서 우아한 지하철을 타고, 다시 70년대 우리네 버스 같은 심란한 버스를 타고 극장에 도착했습니다. 거리는 출중한 문화유산과 빈약한 소비재 산업이 모순적으로 엉켜 있어 보였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재잘거리는 아이들, 끌어 앉다시피 자세를 틀고 걷는 연인들의 모습은 여느 유럽 도시와 달라보이지 않았습니다. 습기를 잔뜩 머금고 음산하게 파고 드는 11월의 러시아 추위는 그런대로 견딜만 했습니다. 그렇게 동서남북 구별이 안되는 도시에서 어쨌든 극장에 도착했고, 표를 사는데도 성공했습니다.

오페라 극장에 들어서서는 더더욱 놀랐습니다. 극장은 아주 화려했고 무대장치며 배우들의 수준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관광시즌이 아니라 외국인 관객은 거의 없었는데, 관객들은 아주 조용하고 진지하게 오페라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뒷자리여서 배우들의 표정이 잘보이지 않으니 금방 지루해졌습니다. 거금을 들여서 낯선 도시의 오페라 극장까지 왔는데 금방 주리가 틀리다가 졸음이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배우들은 이태리어로 노래하고 자막은 러시아어로 나오고 있으니 어디 정붙일 데가 있어야죠? 저와는 상대적으로 옆자리 여자는 연신 쌍안경을 눈으로 가져다대며 재미를 보는 듯 했습니다. “옆구리를 한 번 툭 치고 웃으면서 손을 내밀면 한 번 빌려줄려나?“ 하는 마음이 생겨 실행에 옮기려 했지만, 그 정도까지 뻔뻔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제1막이 끊나고 휴식시간이 되었을 때 극장 내의 가게로 달려가서 쌍안경을 하나 충동구매했죠. 그랬더니 제2막부터는 한결 덜 지겹더군요. 배우들의 표정과 구석구석 액스트라들의 인상을 살피느라 아주 바빴으니까요.

극장을 빠져나와 다시 복잡한 여정을 거쳐 호텔로 돌아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테일이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최고의 성악가들이 몇 달간 연습을 거쳐 무대에 올리는 오페라이지만, 조금만 멀리에서 보면 정말 싱거운 짓입니다. 그리고 정말 아주 멀리에서 본다면 그냥 한 점일 뿐이겠죠. 그러나 거리를 당겨서 보니 신경을 많이 쓴 의상이며 코믹한 액스트라들의 표정이 재미있고, 복수에 불타는 주인공의 절규를 내 마음처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여행에서도 멋진 문화재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잠깐 만났던 사람들과의 기억, 호텔에서의 작은 배려들이 모여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여행지에서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바가지를 쓴 후에 두고두고 기억이 안좋은 장소들이 있으시죠? 사소한 느낌이 전체 인상을 좌우하는 것처럼 디테일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우리가 하는 연구분야에서도 나이가 조금만 들면 각론에서는 손 떼고 총론만 들고 다니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자기는 나뭇가지가 아니라 숲을 보는 사람이라며 떠드는 사람들 말입니다. 저도 입만 들고 다니며 먹고 사는 이런 그룹에 들어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만, 이내 포기했습니다. 그들이 보는 숲이라는 것이 별 다른 시야도 없을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실체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과학기술자들이 다 정치인이나 관리자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정치꾼들만 많고 전문가가 없어서 탈이죠. 아주 늙어서도 직접 손으로 방정식을 풀 수 있고, 복잡한 프로그램을 돌려서 답을 낼 수 있는 과학기술자들만이 진짜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유명 무술도장 사범이라면 입으로 제자들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건달들이 찾아와서 시비걸 때 나서서 자신의 손발로 직접 해치우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고수라는 이야기입니다. 혹시, “나이는 들어가는데, 언제까지 이런 일을 내가 직접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시는 분들 있으시면, 자신은 전투력을 상실하지 않은 무술관 사범이라고 오히려 자긍심을 느끼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혹시 왕년에 날라다녔지만 지금은 입으로만 9단이신 분들은 손발이 너무 무뎌지지 않도록 시간날 때마다 샌드백이라고 치는 훈련 잊지 마시라고 조언드리고 싶습니다. 따뜻하고 결실 많은 연말되시길 바라면서, 새해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이 코너를 아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한 해동안 수고하신 코센 본부 여러분들에게도 안부인사 여쭙니다.

- 남프랑스에서 전창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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