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를 예술처럼
2007-11-02
전창훈 : cjun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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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소중한 주말 저녁에 DVD를 같이 보겠느냐고 권했습니다. 내용이 뭐냐고 했더니, 그래피티 예술가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라고 했습니다. 벽에 알 수 없는 형태로 크게 낙서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부모를 피하고 싶어할 10대 아들이 영화를 같이 보자는데 감히 거절할 수 없어서 TV를 마주 하고 앉았습니다. 그 '예술가'들 중에는 흑인들이 많았는데, 흑인들 영어는 좀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녀석의 도움을 받아가며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했습니다.간단히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쉽게 이야기하면 대강 이렇습니다. 낮에는 자본주의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그들은 아무 것도 없는 약자입니다. 하지만 밤에 그들은 거대한 빌딩을 소유할 수도 있고,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는 기차도 혼자 전세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빌딩이나 기차 벽을 자신들의 도화지로 이용하면서 그들이 누리는, 자기 만족을 표현한 말입니다. 이런 그들의 주장을 이해해보려고 해도 왜 그들이 자기 돈 들여가면서 그리고 경찰과 숨바꼭질을 하면서 '예술'에 심취하는 지 그 내면을 깊이 이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마치 등산가들에게 등산의 동기를 물어보면, '산이 거기에 있기에 오르노라!'는 대답을 듣는 기분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낙서해 둔 도시의 벽은 거만했던 자본가의 얼굴로부터 모두를 알아보고 말을 건네는 다정한 이웃의 얼굴로 바뀐 것들도 많았습니다. 돈으로 할 수 없는 어떤 기여를 사회에 하는 것이죠. 비록 소유자의 동의 없이 타인 재산의 외관을 변경하는 현행법 위반범들이지만 말입니다.
직장에서 열심히 정해진 연구나 하고 꼭 존재해야만 하는 해답만 찾아다니는, 그리고 보상 없이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으려는, 나 같은 이기적인 범생이들의 시각과는 확연히 다른 가치를 그들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영화 후에는 애들과 독일 쾰른을 방문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미국에서 거액을 들여 감행했던 유럽여행이었습니다. 그래서 네덜란드를 거쳐 쾰른까지 가서 대성당을 보여주려고 애들의 손을 끌었습니다만, 애들의 눈은 벌써 거리의 마술사와 판토마임 하는 사람들에게 다 빼았겨버렸습니다. 성당의 고딕 구조가 가지는 문화-종교적 의미를 침 튀기며 설명해도, '그런 철 지난 문화는 아빠만 이해하면 되겠네요!'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순간 세속화된 성당 앞마당을 잠시 안타까워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거리의 예술가들이 높은 성당의 위압감을 덜어내고, 쾰른의 거리를 훨씬 따뜻하고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성당 안에서는 아직도 하늘을 찌를듯한 교권의 권위가 남아있다면, 성당 밖에서는 아직도 르네상스 운동이 살아 움직이는 풍경 정도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한국사회는 유독 수직 사회인 것을 많이 느낍니다. 다양성보다는 높은 것이 더 존중되는 사회라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왜 그리 잠시 떴다가 가라앉는 것들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수직으로 내려앉든지, 올라가든지 하는 사안은 최고의 뉴스니까요. 우리는 그 틀 속에서 추락한 것들을 너무 쉽게 밟아버리고 위의 것들을 너무 아름답게만 봅니다. 올려다 보느라 목에 디스크가 생길 지경인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권위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수준 있는 전문가는 부족합니다. 그 소문난 프로필에 비하면 전문성이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이지요. 아마 그 분들은 유명해진 후 너무 사회와 접촉이 많아져서 자신을 재충전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양성을 기준으로 한다면, 전문가는 더욱 엷어집니다. 선호하는 직업도 교수, 의사, 변호사로 한정되고 사람들의 관심도 제한됩니다. 매체들에 의해 강요된 뉴스만 접하다보니, 외모 번질해서 돈 잘 버는 연예인, 전지전능해 뵈는 CEO, 그리고 청산유수처럼 말 잘하는 정치인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호응하느라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골고루 우리의 관심을 나누어 주고, 그리고 그들의 공로를 공평하게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한국 인터넷 신문을 보면 언제나 처럼 대선철이라고, 장안에 잘나가는 언론인부터 필남필부까지 온통 나서서 새판짜기 시나리오에 바쁜 것을 봅니다. 왜 그리도 정치 전문가들이 많은 것일까요? 저는 이 대선철에 한 가지 큰 결심을 했습니다. 정치계와 연예계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이제 그만 끄겠다고 말입니다. 지난 세월동안 국내에 있을 때나 외국에 있을 때, 정치와 연예계 이야기에서 너무 뒤쳐지면 마치 한국문화의 흐름을 놓칠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을 읽고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답답한 외국 생활의 숨통을 틔여주는 휴식이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고 그릇된 습관이었던 것 같습니다. 상식과 가쉽을 착각하고, 유희와 정보를 뒤섞어버렸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습관은 아무런 위기의식 없이 그냥 흘러온 것입니다. 이제는 좀 더 다양하고 질적인 지식과 정보를 위해서 시간을 쓰려고 합니다. 과학기술계를 포함하여, 다양한 사람들이 하는 여러 가지 일에 색다른 시각과 관심도 가지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다행하게도 시각을 좀 바꾸어보니 지루해보이던 일들도 재미있어지고 있습니다.
수직적 관심에서 수평적 관심으로의 이동에 혹시 여러분도 동참하시렵니까?
직장에서 열심히 정해진 연구나 하고 꼭 존재해야만 하는 해답만 찾아다니는, 그리고 보상 없이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으려는, 나 같은 이기적인 범생이들의 시각과는 확연히 다른 가치를 그들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영화 후에는 애들과 독일 쾰른을 방문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미국에서 거액을 들여 감행했던 유럽여행이었습니다. 그래서 네덜란드를 거쳐 쾰른까지 가서 대성당을 보여주려고 애들의 손을 끌었습니다만, 애들의 눈은 벌써 거리의 마술사와 판토마임 하는 사람들에게 다 빼았겨버렸습니다. 성당의 고딕 구조가 가지는 문화-종교적 의미를 침 튀기며 설명해도, '그런 철 지난 문화는 아빠만 이해하면 되겠네요!'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순간 세속화된 성당 앞마당을 잠시 안타까워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거리의 예술가들이 높은 성당의 위압감을 덜어내고, 쾰른의 거리를 훨씬 따뜻하고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성당 안에서는 아직도 하늘을 찌를듯한 교권의 권위가 남아있다면, 성당 밖에서는 아직도 르네상스 운동이 살아 움직이는 풍경 정도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한국사회는 유독 수직 사회인 것을 많이 느낍니다. 다양성보다는 높은 것이 더 존중되는 사회라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왜 그리 잠시 떴다가 가라앉는 것들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수직으로 내려앉든지, 올라가든지 하는 사안은 최고의 뉴스니까요. 우리는 그 틀 속에서 추락한 것들을 너무 쉽게 밟아버리고 위의 것들을 너무 아름답게만 봅니다. 올려다 보느라 목에 디스크가 생길 지경인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권위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수준 있는 전문가는 부족합니다. 그 소문난 프로필에 비하면 전문성이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이지요. 아마 그 분들은 유명해진 후 너무 사회와 접촉이 많아져서 자신을 재충전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양성을 기준으로 한다면, 전문가는 더욱 엷어집니다. 선호하는 직업도 교수, 의사, 변호사로 한정되고 사람들의 관심도 제한됩니다. 매체들에 의해 강요된 뉴스만 접하다보니, 외모 번질해서 돈 잘 버는 연예인, 전지전능해 뵈는 CEO, 그리고 청산유수처럼 말 잘하는 정치인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호응하느라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골고루 우리의 관심을 나누어 주고, 그리고 그들의 공로를 공평하게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한국 인터넷 신문을 보면 언제나 처럼 대선철이라고, 장안에 잘나가는 언론인부터 필남필부까지 온통 나서서 새판짜기 시나리오에 바쁜 것을 봅니다. 왜 그리도 정치 전문가들이 많은 것일까요? 저는 이 대선철에 한 가지 큰 결심을 했습니다. 정치계와 연예계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이제 그만 끄겠다고 말입니다. 지난 세월동안 국내에 있을 때나 외국에 있을 때, 정치와 연예계 이야기에서 너무 뒤쳐지면 마치 한국문화의 흐름을 놓칠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을 읽고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답답한 외국 생활의 숨통을 틔여주는 휴식이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고 그릇된 습관이었던 것 같습니다. 상식과 가쉽을 착각하고, 유희와 정보를 뒤섞어버렸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습관은 아무런 위기의식 없이 그냥 흘러온 것입니다. 이제는 좀 더 다양하고 질적인 지식과 정보를 위해서 시간을 쓰려고 합니다. 과학기술계를 포함하여, 다양한 사람들이 하는 여러 가지 일에 색다른 시각과 관심도 가지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다행하게도 시각을 좀 바꾸어보니 지루해보이던 일들도 재미있어지고 있습니다.
수직적 관심에서 수평적 관심으로의 이동에 혹시 여러분도 동참하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