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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된 사람들

역사 이래로 유신론과 무신론 논쟁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신의 존재 여부에 관계 없이, 나라마다 역사속 인물이나 통치자가 신격화 된 사람들도 무수합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누구나 다 유신론자인 것 같습니다. 위대한 인물이 약점도 있었기에 오히려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고, 그들은 신처럼 완벽했다고 억지를 부립니다. 없던 이야기 붙이기, 작은 것 크게 과장하기, 관점 비틀어서 재해석 하기 등등은 역사에서 너무 흔한 메뉴들인 것 같습니다. 지나간 위인들 중 자신의 신성을 주장한 사람들은 별로 없으니, 그 분들 잘못이 아닙니다. 그 분들을 위대하게 만들어서 현재의 자기 입지를 굳히거나 이윤을 불리려는 얄팍한 후손들의 아전인수와 곡학아세가 유죄일 뿐입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워싱턴이 벗나무를 도끼로 자르고 자기가 한 짓이라고 아버지에게 이실직고한 '정직성에 관한 보고서'를 초등학교 때 읽으셨죠? 어른이 된 후에, 이 이야기가 전기 작가의 창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정말 허망한 마음이 들더군요. 달나라에 방아 찍는 토끼가 없고, 굴뚝으로 들어오는 싼타 클로스가 가짜라는 사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충격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었지만, 위싱턴 이야기는 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현실감이 전혀 없는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영웅이 겨우 나무 하나를 베고 진실을 이야기한 것이 오히려 너무 소탈한 업적이었으니까요. 과학기술의 역사에서도 신이 된 사람들은 여럿 있습니다. 아니,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다신교에서 유일신 사상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 과학의 유일 신이라면 당연히 아인슈타인이겠죠? 아인슈타인 전에는 뉴톤이 신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등장하면서 뉴톤의 신성은 강등되고 아인슈타인만 절대적 신이 됩니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던 속도와 길이가 사실은 서로 엮여있는 변수라는 사실을 밝혀내었으니, 신이 될 만 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생물학의 안방 차지“라는 지난 글에서 제가 다이슨(Dyson)이라는 물리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국내에서 취재를 나온 기자가 이 분과의 인터뷰 통역을 부탁해와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다이슨은 아인슈타인과 같은 연구소에 근무한 후배연구원입니다. 아인슈타인 생전에 서로 같은 연구소에서 지냈으니, 누구보다 아인슈타인을 잘 아는 사람이죠. 인터뷰 통역을 다 끝내고는,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을 좀 물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가 질문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물리학 교과서 상대성 이론 부분을 보면 가장 먼저 Lorentz 변환이 나옵니다. 그 방정식은 빛의 속도에 가까와지면 물체의 길이가 줄어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식입니다. 그 수식은 속도가 빠른 물체 위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가는 것도 말해줍니다. 수식의 이름으로 보면 로렌츠가 처음 만들었다는 이야기인데, 이 수식은 상대성 이론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로렌츠는 길이와 속도의 상관 관계를 알고 있었나요?“ 그의 대답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에 앞서 로렌츠도 알고 있었고, 프랑스 수학자 Poincare도 알고 있었습니다.“ 저의 질문은 이어졌습니다. “그러면 상대성 이론의 업적은 당연히 로렌츠 것이지 않습니까?“ 돌아온 그의 답변은, “로렌츠나 뽀엥까레가 알고 있었지만, 상대성 이론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고 중력이나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재해석해 낸 사람은 아인슈타인입니다.“ 저는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반문했습니다. “만들어진 다음에 그것을 확대 해석하는 것보다는, 처음으로 그런 사실을 알아내는 것이 더 어렵고 의미있는 일이 아닌가요?“ 그 후 그의 답변은 더이상 분명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무슨 음모론의 한가운데 놓인 사람처럼 혼란스러웠고, 그 기자와 어떻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는지도 모르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이 사실이 진짜인지를 찾아 헤매다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장 인터넷 백과사전인 Wikipedia에서 Lorentz를 타이프 해봐도 다 나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로렌츠 말고도 아일랜드 태생의 물리학자 FitzGerald도 관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아인슈타인 폄하 궐기대회를 개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역사가와 언론들의 신화 만들기에 속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대로의 장삿속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높이 띄워야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 있습니다. 몸 값 나가 보이는 사람이면 스캔들도 성공을 위한 소품으로 바꿀 수 있는 전문가들이 언론입니다. 그러다가 가치가 없어지면 이번에는 철저하게 밟아버리는 것으로 한 번 더 이용해 먹습니다. 유명교수들의 엄청난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나면, 언제나 그가 역사적 필연을 거쳐 거기까지 이르렀다는 기사가 납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업적이 우연한 아이디어였거나, 한 대학원생의 피땀의 결과였기에 씁쓸하게 웃고 말아야 했던 일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던가요? 누구도 신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는 저들처럼 할 수 없다'고 좌절할 이유는 없습니다. 역사는 성실한 다수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역사적 업적을 누리고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만 소수일 뿐입니다. 질시의 눈으로 그들을 부러워하거나, 가려진 진실 때문에 원통해 하는 것보다는 열심히 노력할 때, '뜨는 소수'에 속할 확률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아래에서 열심히 하시는 여러분들을 위한 위안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손놓고 위만 바라보다 동공이 자주 멍해지는 저 자신을 위한 충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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