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공학 전공이지만 언어에 관심이 많습니다.
유럽과 미국을 돌며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리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영어와 불어 어학책을 출판했고, 제가 낸 불어책은 아주 잘 팔리는 책입니다.
(제2외국어 시장이 좁아서 인세는 거의 없으니 질투하실 필요까지 없습니다. )
서두에 괜한 자랑은 저의 언어감각에 대한 권위를 세워보려는 수작이고,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혹시 어릴 때 “파란 불일 때 건너세요! “라는 말에 의심을 가져보신 적은 없으신가요?
유년시절부터 내 눈에는 신호등이 녹색으로 보이는데, 책에는 파란 불이래요.
그리고 또 시나 동화에서는 '파란 새싹'이랍니다. 아직 머리 털 나고 진짜 '파란 새싹'은
보지 못했습니다. 신호등도 새싹도 파란색이 아닌 녹색이죠.
사정이 이렇다보니 내 자신이 색맹인지 고민도 했었고, 색맹검사할 때면
다른 색으로 점 찍힌 숫자들을 바로 읽으려고 엄청 긴장도 했었습니다.
화가 고호는 사람들이 '붉은 태양'이라고 할 때마다 아주 괴로웠다죠?
자기 눈에는 노란 색인 태양을 자꾸 빨갛다고 하니까요.
실제로 태양은 시간과 각도에 따라 색깔이 바뀌니까,
고호가 맞고 다른 사람들이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녹색과 파란 색의 차이야, 두말할 필요 없이 너무 확실히 다른 색깔입니다.
하늘과 바다는 파랗지만, 우거진 녹음은 분명 파란 색깔이 아니잖아요?
라틴어나 불어를 많이 차용한 영어에서는 Green이라는 순수 영단어로 따로 있습니다.
요즈음 녹색정당이니, 녹색연합이니 해서 가장 많이 뜨는 색깔이 녹색입니다만,
정작 우리 고유어에 녹색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것이 정말 이상하죠?
사실 우리말은 색깔의 농도와 채도, 명암을 엄청 많이 구별해서 사용합니다.
불그스름한, 벌건, 새빨간, 붉은, 검붉은 등등 빨간 색 하나에도 굉장히 미묘한 표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빨강, 파랑, 흰색, 노랑, 보라, 연두, 검정 등 색깔을 나타내는 고유어가 많은데, 유독
녹색만 한자어를 사용하네요. 물론 회색, 분홍, 주황도 한자어지만 녹색만큼 흔하지 않죠.
주지하다시피 자연은 청색과 녹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초목의 색깔이죠.
아마 자연은 청색과 녹색으로 대표된다는 점을 인지하고 서정 시인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은
1946년에 발행한 그들의 시집을 '청록집'이라고 이름 붙였던 모양입니다.
자기들의 시집은 자연을 노래했다는 명확한 멧세지인 셈이고 '청록파'라는 말이 교과서에 오른 사건이죠.
요즘 한국정부는 녹색성장이라는 좋은 말을 만들어내었습니다.
말은 좋은데, 정말 환경도 보호하면서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것 같습니다. 시대마다 옷 입는데 유행이 있는데, 의상만이 아니라
연구에도 유행이 있습니다. 언제는 IT가 난리였고 지금은 생물과 환경 빼면 연구제목 내놓기도 어렵죠.
도인처럼 이런 트랜드를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라면, 이 참에 환경관련 분야를 방어가 아닌
공격기회로 바꾸어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요?
녹색이 우리 고유어에 없는 것처럼, 사실 그동안 우리가 환경은 많이 무시했었죠.
아직도 환경이 삶의 중요 지표라는 인색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에 나오는 한국인들은 선진국 도시의 좋은 공기와 조화된 환경은 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허술한 쇼핑가나 늦어터진 서비스만 보고 우리나라가 훨씬 살기 좋다는 이야기들을
하는 것을 보고 느낀 소감입니다. 짜장면 한그릇도 배달해주는 편리성만이 아니라,
환경 수준도 삶의 질에 중요한 요소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환경을 피해가야 할 불편한 규제가 아니라, 돈되는 키워드로 삼아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 대도시들이 서울의 공기정화 프로젝트를 밴치마킹하려고 방문할 정도로 말입?큼은 우리 고유의 노우하우로 만들어볼만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