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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 쉽 없는 하이텍은 자녀 없는 결혼!

우선, 제목 때문에 불임부부들에게 상처를 줄까 봐 걱정스럽습니다. 거꾸로 이 글이 건강한 자녀를 낳게 해주는 부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저는 8월말 독일 하이델베르그에 있었던 한인과학기술자 회의에 참석했었습니다. 오랜만에 한국에서 오신 분들을 대거 만나고 토론할 기회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회의에서 어떤 분이 요즈음 한국에는 사업만 있고 산업은 없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무슨 말인고 하니, 무슨 무슨 프로젝트라고 외국에서 시설 사다가 설치해두고 사용만 할 뿐, 그것이 우리 산업에 녹아 들어가서 경제를 돌리는 역할을 못한다는 것이죠. 옛날, 앞마당 우물 위에 있던 펌프를 기억하시죠? 처음에 펌핑을 하면 물이 안 올라와요. 그래서 이미 확보된 물을 한바가지 떠와서 붓고 펌프질을 한참 하면 비로소 아래의 물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처음 부웠던 물이 사업이라면, 나중에 연속적으로 펌핑되는 물이 산업이죠. 사업이라는 촉매를 사용해서 산업이라는 반응이 생기게 한다고도 말할 수 있겠죠? 좌우간 사업은 일회적이라면 산업은 연쇄적 힘을 가진 경제동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신문기사를 잘 생각해보면 사업은 있고 산업은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거대 기술을 들여온 이후, 우리 식으로 바꾸어서 더 좋은 성능으로 만들었으니 프로젝트 대성공이라는 자화자찬의 기사가 실립니다만, 몇 년 지나면 그때 자랑하던 시설이나 장비는 들여 온 그대로 쓰이고 있거나, 심한 경우는 먼지 앉은 전시물로 남아 있을 때가 많습니다. 창조는 카피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기에 거액을 투자했는데, 다 카피해두고도 재창조가 안되는 것이죠. 왜 그럴까요? 아니, 우선 사업은 있고 산업은 없다는 말 자체가 맞는 말인가요? 뭐 이런 논제로 시비할 필요 없이 문제의 본질을 본다면 언제나 해답은 하나로 수렴합니다. 20년전부터 지겹도록 말해오던 것인데, 우리에게 기본기술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면, 세계를 휩쓴 삼성전자가 정작 독자적으로 시장에 내어놓은 상품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죠. 중국은 바짝 따라오고, 일본은 더 멀어지는 느낌이 드는데, 우리는 어디로 뛰어야 하느냐는 말입니다. 저는 우리가 기본 기술을 못 가진 이유를 실력보다는 문화적 문제라고 봅니다. 우리 대학이 경쟁력이 없다는 이야기도,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우리 학생들의 자질이나 그곳에서 수석졸업하고 외국에서 학위 받은 우리 교수님들의 실력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문화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인들에서는 스킨십이 모자랍니다. 기계나 장비, 회로기판 만지는 것을 싫어해요. 그래서 고상한 기술을 쫓습니다. 이론논문 쓰거나 컴퓨터 만지는 일을 우선합니다. '실사구시'라는 말은 갈수록 '실사구식'으로 바뀌는 느낌이 듭니다. 실질로부터 진리를 추구한다는 원뜻이 실질은 구식이라고 말을 바꾸어서 새긴다는 것이죠. 지금 우리 처지는 이제 걸음마를 배우는 기술적 맹아 단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데, 마지막 2%가 모자라서 고급기술을 구사하지 못하는 단계입니다. 우리나라 자동차도 잘 굴러갑니다. 하지만 독일 고급 자동차와 비교하면 아직 많이 초라합니다. 그런데, 둘 사이에 많은 차이가 있나요? 갈 때 가고, 설 때 서고, 겨우 2% 차이 밖에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고객들의 선호도나 가격은 두 배 이상이죠. 2%의 기술 차이가 200%의 가격 차이를 만듭니다. 그리고 상위 2%의 기술은 형이상학적 연구로 따라 잡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2%는 논문에 안 나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 마지막 2%까지 모두 논문에 담겠습니까? 스킨십으로만 가능합니다. 만져보고, 두드려 보고, 조여보고, 풀어보며 수십 번 고민과 의심을 반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것이?? 가능한 것이 아니고,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스스로 힘들게 기어 올라가야만 얹어놓을 수 있는 것이죠. 상대방이 자기보다 더 높게 쌓으려 하는데, 누가 가르쳐주려고 하겠습니까? 높은 수준의 박사급 이상 연구자들이 손에 기름 묻히기를 마다 않는 풍토가 중요합니다. 최첨단 하이텍 기술은 스킨십 없이 논문 쓰기만으로는 불가합니다. 스킨십 없는 논문은 마치 군대 간 남자가 애인 잡아두려고 매일 편지 쓰는 것에 불과합니다. 스킨십 없는 사랑은 연인들을 지루하게 만들고 생산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드웨어에 익숙하지 않고, 만지기를 거부하는 기술자들은 명품을 생산할 수 없습니다. 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이야기는 도대체 앞으로도 얼마 동안이나 반복되어야 할까요? (군대 간 남친은 곧 돌아올 터이니, 이 글을 빌미로 변심을 선언하는 여성들이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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