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진실이 승리하는 사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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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원님에 대한 소개와 학창시절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분석과에 근무하고 있는 연구직 공무원입니다. 1987년 고려대학교 생물학과 입학해 1994년 석사학위(미생물), 2001년 박사학위(미생물)를 받았습니다. ㈜종근당 중앙연구소 연구원, KIST 환경연구센터 학생연구원을 거쳐 1997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입사하였습니다.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니 새삼 감회가 새롭습니다. 순수한 마음에 민주주의를 위해 밤새 토론하고 거리에서 데모하던 때도 있었고, 노벨상을 꿈꾸며 밤을 밝혀 연구하던 때도 생각납니다. 지금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당시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살고 싶습니다. 항상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그래도 후회는 남는 것 같습니다.
2. 회원님의 연구분야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세요. 그간 이루어 놓은 연구실적과 앞으로의 연구 방향 및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몇 년 전부터 시작해 아직까지도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 덕분(?)에 많은 일반 대중들이 과학수사(Scientific Investigation)와 법과학(Forensic Science)에 대해 친숙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은“유전자감식(Forensic DNA Typing)”이라는 분야인데, 분자생물학, 생화학, 유전학, 통계학 등 폭넓은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합니다. 유전자감식이 이용되는 분야는 각종 범죄사건이나 대형 사고에서의 신원확인 및 개인식별뿐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친자검사는 물론이고, 미아나 실종자, 이산가족이나 해외 입양아,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신원확인에도 유전자감식은 가장 확실하며 막강한 방법입니다. 6.25 전사자 유골 발굴사업이나 미국 National Geographic에서 주관하는 “Genographic Project”와 같은 뿌리 찾기 사업에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만이 유전자감식의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만의 고유한 DNA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유전자감식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식물학 분야(Forensic Botany)는 물론이고 동물학 분야(Animal Forensics), 그리고 더 나아가 미생물 분야(Forensic Microbiology)까지 그 대상은 무궁무진합니다. 가짜 한우를 판별하고, 밀렵과 밀수의 증거를 찾는 일도 유전자감식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유전자감식은 거의 모든 생명과학 분야에서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미세유체역학(microfluidics)와 관련된 랩온어칩(Lab-on-a-chip), 많은 시료를 신속하게 분석하기 위한 로보틱 시스템의 개발 등 공학분야와의 공동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인 집단을 대상으로 STR, Y-STR, 미토콘드리아 DNA 유전자 분석에 관한 감정과 연구를 수행해왔으며, 최근에는 새로운 Y-STR 마커의 법과학적 이용과 이를 이용한 인류유전학적 및 진화학적 연구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유전자감식 분야는 생명과학과 공학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어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참 많습니다. 보다 많은 과학 기술자들의 관심이 필요하며, 국가 차원의 획기적인 지원이 절실한 분야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법과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유전자감식은 각종 사건사고의 해결에 정말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수행한 유전자감식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범인의 검거와 범행 입증에 결정적인 물증을 제공했을 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을 느끼고 이 직업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1997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입사한 후 참 많은 사건 사고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입사 직후에 발생한 KAL기 괌 추락사고, 1999년 씨랜드화재사고, 2002년 김해 중국민항기 추락사고,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그리고 2008년 이천냉동창고 화재사고까지 많은 희생자를 낸 끔찍했던 대량재난사고가 있었습니다. 한여름의 미스터리였던 서래마을 프랑스인 영아살해사건, 그리고 올 초의 경기 서남부 부녀자 연쇄살인사건까지 수많은 사건과 사고의 현장 증거물로부터 피해자나 범인의 유전자형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사건이 해결될 때는 이 직업이 천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인생에 영향을 준 사람은 가장 가까이서 함께 있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부모님을 비롯해 아내와 아들, 그리고 형제자매들까지. 한 사람의 인격체가 형성될 때까지 가장 많은 영향을 주신 분들 아닐까요? ?우리 사회가 물질만능과 정글과 같은 치열한 경쟁이 지배하고 있지만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정의와 진리에 대한 열정의 소중함을 잊지 않게 해주시는 부모님과 아내는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 입니다. 또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함을 몸으로 보여주시는 은사님들은 저에게 영원한 멘토의 역할을 하실 것 입니다.
3. 이 직업 또는 연구분야를 정말 잘 선택 했구나 싶었던 때는 언제인지?
4. 인생에 영향을 준 사람이나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계기가 있다면?
5. KOSEN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현재 KOSEN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요?
KOSEN 회원 등록일을 찾아 보니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인 2001년 9월이더군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여러모로 KOSEN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 KOSEN에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제가 받았던 도움보다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법과학과 유전자감식”이라는 블로그 운영을 통해 더 많은 과학기술자들께 법과학과 유전자감식에 대해 알리고 관련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6. KOSEN 회원과의 교류와 관련해서 개인적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국내 과학기술자로서 KOSEN회원과 전 세계의 한민족 과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와 관련하여 KOSEN에 바라는 점 혹은 KOSEN에 거는 기대나 발전 방향을 제시해주세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많은 활약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자들을 서로서로 연결시켜주는 KOSEN의 역할은 앞으로도 더욱 중요해지리라 생각됩니다. 2004년에 6개월간 영국 케임브리지 생어연구소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생활한 적이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많은 선후배님들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거나 연구 환경이 바뀔 때 같은 한민족 동료들의 도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마운 것입니다. KOSEN이 앞장서 전세계 한민족 과학기술자들을 더욱 밀접하게 네트워크화 한다면 눈으로는 보이지 않겠지만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7. 마지막으로 이공계 종사자 혹은 과학도에게, 또는 이 길로 접어들고자 하는 후학에게 힘이 담긴 격려를 해 주신다면.
자부심과 애국심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서구 선진국들로부터 과학기술의 성과들을 받기만 했지만, 이제는 우리도 전 인류의 행복한 삶에 기여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져야겠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이공계, 특히 순수과학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제가 대학교에 진학할 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이공계 기피현상은 없었습니다. 아니 매년 학력고사 수석자가 이공계로 진학해 우리나라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가난을 벗고 지금의 자리에 올라올 때까지 과학기술인의 노고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진정한 선진 과학입국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 볼 때입니다. 언제까지 받기만 할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우리나라의 젊은 과학도들이 이제부터는 더 큰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