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세니아 이우근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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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원님에 대한 소개와 학창시절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한민족과학기술자 network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국토면적이 협소하다보니 농사지을 땅도 좁고, 세계무역기구(WTO) 체제하에서 1:1 협상을 해야하는 자유무역협정(FTA)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 농업과 농촌을 과학기술로써 뒷받침하는 농촌진흥청에서 근무하는 이우근입니다.
5년 동안 원예학을 전공(당시 학제 중에는 고등학교 과정과 대학 전공과정까지 연계한 5년제가 있었음)한 덕분에 일선 농촌진흥기관에 근무할 때에도 아무 어려움 없이 일했다 싶습니다. 학생시절에 아버지를 여의었으니 어려운 가정형편에 옆 돌아볼 겨를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군입대 전 약 4개월 동안 취직시험에 응시하였으나 낙방의 쓴맛을 보고 말없이 군에 갔지요. 중동발 오일쇼크가 있던 시절 취직이 어려우니까 응시율은 요즘처럼 엄청 높았답니다.
4형제의 맏이다보니 앞에서 조언받을 형도 없이 평범하게 학창생활을 하다가 학교 도서관에서 취직시험공부하는 선배들을 본 것이 한 학기 정도였으니 시험준비도 거의 못했어요.
Kosenia 여러분께서는 자녀나 어린 친척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드리시겠지요?
군 제대후 무위도식하는 듯하여 하루하루가 괴로워 안절부절 못하다가 이웃사촌의 소개로 약 9개월간 산업체(농업 아닌) 근로자로 일하기도 했답니다. 많지 않은 월급이었지만 당시 혼자서 4형제(딸도 없이 아들만)를 기르시며 학업까지 돌보시던 어머니에게 적잖이 도움이 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출퇴근하던 자전거를 이용하여 점심시간을 쪼개어 직장 근처의 서점에 가서 틈틈이 보던 책은 어찌나 머리에 쏙쏙 들어오든지요... 6과목 중 책 구입은 2과목만 하고 나머지는 한 번씩 훑어보았습니다. 학창시절에 배운 기억이 되살아난 덕분에 다행히 1977년 3월과 12월에 당시 공무원 5급을류와 4급을류 공채시험에 연거푸 합격하여 일선의 농촌지도사업에 투신한 이후 일하면서 공부도 계속하였습니다.
물론 줄곧 농학 한우물을 판 거지요.
Kosenia 회원님들께서는 자녀들에게 권유할 때에 분야를 비교해보고 전망있어 보인다면 전공을 바꿔서라도 택하도록 하시겠죠? 저의 경우는 한우물을 파왔어요.
2. 회원님의 연구분야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세요. 그간 이루어 놓은 연구실적과 앞으로의 연구 방향 및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던 당시에는 종전후 20여 년이 지난 때라 쌀이 부족하여 굶주리던 우리 국가적 사명이던 주곡자급과 농가소득증대를 위하여 벼와 경제작물들도 수확량이 많은 품종을 연구하고 그 새로운 품종의 특성에 맞는 재배기술을 농민에게 찾아가서 교육하고 시범을 보여가면서 실패율을 줄여나갔습니다. 벼농사 기술을 현장에 적용시키는 일은 모든 공직자의 필수과목이었고요, 그 위에서 각 전공별로 또 다른 분야를 가졌는데 저는 원예분야 기술을 연구, 보급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시범포 운영에 땀흘려 일해 왔으며, 병충해 적기방제를 위해서는 농업인보다 일찍 일어나 마을마다 다니면서 시기시기별로 실천해야 할 기술과제를 앰프방송을 통하여 전달하였지요. 물론 시간외 근무수당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답니다.
2년간 중앙단위 기관에 파견근무 하면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1992년 농촌생활연구소에 발령을 받고는 농촌생활 관련 연구와 교육훈련을 담당하였습니다.
"단체급식장의 농산물수급조절 기능성 연구"에서 우리나라 주요 양념채소인 고추, 마늘 및 양파가 풍흉에 따라 수급이 불안정할 경우 단체급식장에서 이들의 조절기능이 있을지를 조사연구하여 양파의 경우 풍흉에 따른 수급불안정 문제를 약 12%까지 완화할 수 있음을 구명하였습니다(1993년).
"농촌여성의 농외취업에 관한 연구"에서는 농가소득의 양대 축인 농업소득과 농외소득 중 선진농업국의 추세를 분석하여 농외소득 신장의 한 방편인 농촌여성이 참여할 수 있는 취업가능성을 조사분석하고 전국 농촌에 소재한 대표적인 취업가능업체 38개소를 제시하고(1994년), "농촌생활정보의 전산화 연구"에서는 이 분야의 연구나 지도자료로 이용될 수 있는 문헌 8,020여건을 PC용 데이터베이스로 작성함으로써 추가입력과 활용상 편이성을 제고하면서 (1995년) 박사학위 논문에도 영향을 준 컴퓨터 및 정보시스템이용 연구의 바탕을 삼기도 하였습니다.
그 외에 1998년도에는 공동연구인 “농촌주거환경 실태 연구”에 참여하는 등 흔하지 않은 연구에 참여하였습니다.
3. 이 직업 또는 연구분야를 정말 잘 선택했구나 싶었던 때는 언제인지?
앞에서도 약간 소개드린 바 있듯이 당시에 경제개발에 피치를 올리던 이 나라에는 토목과 건설, 기계 등의 분야가 소위 돈벌이가 되는 직업분야이었습니다만 저는 그저 한우물을 판 것과 학원 공부 한번 안하고도 자력으로 어학시험에 합격하여 국제미작연구소(IRRI)의 기금에 의한 약 4~5개월간의 해외연수를 나갔을 때에 좋은 나라에 태어나 좋은 기회를 제공받았다는 것에 이 분야에서 즐기는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4. 인생에 영향을 준 사람이나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계기가 있다면?
공무원생활 초창기, 당시 저는 국가직이다보니 공무원교육을 중앙기관인 농촌진흥청에서 받게 되었는데 강사 중 한 분이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외국에 파견할 자리는 더러 있는데 어학시험을 통과하는 공무원이 적어서 못 보냅니다.”
한 마디로 영어공부를 하면 국비로 외국에도 파견될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저는 그 말씀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았습니다. 당시 외국어라면 영어를 일컬었습니다.
당시 소도시에 흑백 TV가 보급되던 초창기여서 저는 아침 6시 5분경부터 5분간 진행되는 KBS 제1라디오의 영어 회화 프로그램을 이용하였습니다.
노트를 한권 마련하고서는 녹음하여 반복청취하면서 받아쓰기를 하는 것이었지요. 교재도 없이 방송을 녹음한 것이었으므로 생소한 단어는 귀에 잘 와닿지 않았는데도 끈질긴 도전이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대화가 조금씩 떠오를 정도이니까요.
Watchout for mosquitos that transfer encephalitis. 뇌염을 옮기는 모기를 조심하라는 내용으로서 모기장 안에서 잠자도록 하라는 내용이 계속 된 것으로 기억됩니다.
당시에는 일반인들이 외국에 여행하기가 정말 어려운 형편이었기에 저에게는 당시의 목표였던 것입니다.
소도시에서 직장까지 버스통근하면서는 직장에 배달되던 지방신문에 난 영어한마디 부분을 오려서 포켓에 넣고 다니면서 공부하는 것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취미생활 중에 우표수집을 하고 있어요(약 40년간 계속중). 그냥 우표만 모은게 아니랍니다. 새 우표가 발행될 때마다 우체국마다 약간씩의 우표 안내카드(국영문 설명서)도 배정되었는데 발행된지 며칠 지나면 구하기 어려웠지요. 점심시간에 줄을 서서라도 구하여 국영문으로 설명된 그 우표의 발행 배경과 관련 상식을 또 내것으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학생시절 친구들 중에는 당시의 대한민국 남자들의 대다수가 음주나 흡연을 즐기고(?) 있었는데 용돈이라도 조금 생기면 술이나 담배 대신 우표를 수집했지요. 요즘 학생들은 컴퓨터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통에 우표수집을 취미로 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하니 아쉽습니다.“우표수집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식견을 넓혀주는 멋진 취미라고 이 연사 여러 Kosenia님들께 강력히 주장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어학공부 욕심은 직장생활중에도 석사 과정과 박사과정 시험을 통과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고마우신 그 선배님은 지금은 자그만한 농업 관계 신문사 사장으로 계십니다.
5. KOSEN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현재 KOSEN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요?
코센과의 첫 만남은 당시 과학기술부의 전문가 풀에 회원으로 등록하고 있었는데 그곳과의 인연으로 KOSEN에도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회원으로 가입한 후 많은 회원님들이 올려주신 각종 포럼이나 행사정보를 보고 나의 직장과 관련된 농업관계 세미나 같은 행사에 참여하여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가입한 후 처음에는 포닭 블루스 연재만화를 보는 재미에 홈페이지에 드나들었지요.만화 대화 속에서는 우리 시대의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한 미국 현지언어를 우리말로 표현한 것에 크게 흥미를 느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던 중, 직장에서 지난해에 플라즈마(Plasma)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본질을 알지 못하던 상태에서 미국, 독일 등에서 앞서 나가고 있는 ‘해외의 핵융합 및 플라즈마 응용분야 연구동향 조사’ 등 플라즈마에 관련된 고급 자료를 많이 제공받았답니다.
그때까지는 평소에 여기저기서 접하는 각종 정보를 한번 읽어보고는 버리던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plasma 정보를 활용하게 된 후부터 저도 kosen21 홈페이지에 정보들을 열심히 올리고 마일리지도 쌓으면서 정보왕으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상으로 받는 도서상품권은 우리 자녀들과 이웃과도 나누게 되었고, 요즘은 다른 회원님들과 선의의 경쟁도 해 가면서 열심히 보람있게 회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정보의 우믈인 kosen을 동료들에게도 알려서 회원으로 가입도 권하면서 제법 활발한 회원활동을 하고 있답니다.
6. KOSEN 회원과의 교류와 관련해서 개인적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국내 과학기술자로서 KOSEN회원과 전 세계의 한민족 과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와 관련하여 KOSEN에 바라는 점 혹은 KOSEN에 거는 기대나 발전 방향을 제시해주세요.
한국인, 한민족은 우수한 문화와 교육열로 세계 어느 분야에서도 명성을 드높이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과학의 힘이 절대적으로 밑받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과학을 가까이하도록 하고 과학하는 자세를 가까이는 부모자녀간에서부터 직장 동료들, 그리고 정책입안자들깨서도 과학에 많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이 나라의 앞날이 희망으로 채워질 것이라 믿습니다.
과학자를 최우선으로 하는 나라를 만들어 가자구요!
7. 마지막으로 이공계 종사자 혹은 과학도에게, 또는 이 길로 접어들고자 하는 후학에게 힘이 담긴 격려를 해 주신다면.
자신의 분야가 일시적으로는 나약해 보일지라도 우리가 그 곳을 뒷받침해야만 우리 자녀와 후손들이 더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자부심을 항상 견지할 수 있도록 하시며, 또한 후진 양성이 나의 사명이라 생각하면서 선의의 경쟁이 필요하지만 동료의 잘됨을 격려해 주어야하며 우리 민족간에 협력하여야 세계 속에 뛰어난 민족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협력하고 경쟁하는 과학자를 양성해 나갔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